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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Feb 22. 2021

파타고니아 그 장엄함, 엘찰텐-피츠로이

우리는 늘 길 위에 있다.

나는 암벽 등반을 시작하면서 항상 파타고니아[1] 의 피츠로이를 꿈꾸었다. 그러나 언감생심 내 등반 실력은 형편없었고, 용기는 더더욱 부족했다. 피츠로이는 곰삭은 꿈이 되어 늘 내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고, 피츠로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는 화들짝 가슴이 뛰었다.


"종착점에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내가 가슴 벅차게 끊어야 할 피니쉬 라인 테잎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소박한 이정표가 서있을 뿐이고, 나는 잠시 멈추었으나 다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을 뿐이다. 355km 트레일은 끝났으나 길은 끝나지 않았다.

엘 찰텐으로 향하는 길. 가운데 송곳같은 봉우리가 세로토레, 우측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피츠로이

그랬다. 길이 끊어진다면 어디 그게 길이랴. 걸음을 멈춘다면 그게 어디 살아있다 할 수 있으랴. 피츠로이, 세로토레, 파이네...그 이름만으로 가슴이 벅차고도 남을 파타고니아를 가겠다고 다짐한 것은, 적어도 출발하기 한달 전 쯤까지는 일종의 허장성세였다. 일단 주변에 그렇게 떠벌려 놓고 나를 다그치는, 일종의 '자기최면'이었던 셈이다.


지도 위를 먼저 걷다.

4인 가족이 함께 걷는 길이므로 준비해야할 게 더 많았다. 그러나 몇가지 개괄적인 정보들은 준비과정에서 마음을 가볍게 해주기도 하였다. 적어도 10km 구간별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산장이 있거나 물을 구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었다. 한달전쯤 실제 운행에서 사용할 지도와 가이드북을 구입하고 틈 나는대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사회과부도책에 익숙하지만 지구 반대편 남미 땅의 전체적인 지도가  머리 속에 쉽게 그려지지는 않았다. 주요 거점도시들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칼라파테, 엘 찰텐, 나탈레스의 동서남북 구분과 도시간의 거리, 이동소요 시간 등을 파악하기에도 쉽지 않았다. 길게는 비행기로 서너시간, 짧게는 차량으로 두세시간을 이동해야 하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남부 파타고니아 거점 도시인 칼라파테까지의 거리는 다시 한국에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정도를 이동해야하는 셈이었다.

출발 전 지도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파타고니아 여행에서는 두 개의 트레일을 걷을 예정이었다. 엘 찰텐에서 피츠로이를 거쳐 세로토레를 둘러보고 다시 엘 찰텐으로 돌아오는 트레일과 흔히 W-트렉(W-Trek)으로 알려진 델 파이네 국립공원 트레일이 그것이다. 흔한 여행상품에 섞여서 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전 준비가 중요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지도와 가이드북을 반복해서 보았다. 나는 지도 위를 먼저 걷기 시작한 것이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Patagonia Infomap in English, Patagonia (Footprint Focus), Lonely Planet Trekking in the Patagonian Andes, Torres del Paine Waterproof Trekking Map이다.


파타고니아 여행에서는 두 개의 트레일을 걷을 예정이었다. 엘 찰텐에서 피츠로이를 거쳐 세로토레를 둘러보고 다시 엘 찰텐으로 돌아오는 트레일과 흔히 W-트렉(W-Trek)으로 알려진 델 파이네 국립공원 트레일이 그것이다. 흔한 여행상품에 섞여서 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전 준비가 중요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지도와 가이드북을 반복해서 보았다. 나는 지도 위를 먼저 걷기 시작한 것이다.


장비과 식량

4인 가족의 풀 패킹 배낭

식량과 배낭을 포함한 총무게가 약 41kg으로서 내가 17kg을 부담한다면 나머지 24kg은 세사람이 8kg씩 나누어 패킹해야 하는 셈이었다. 4인 가족이 4박 5일간의 트레킹에서 이 정도 무게라면 충분히 경량화시킨 셈이었다. 장비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만 챙겼다. 아이들은 트레킹 폴을 이용한 보행법에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낭 무게를 많이 줄여서 굳이 필요 없을 듯 했고, 1월의 남반구는 여름에 해당되어 밤 10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까지 야간 산행을 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헤드랜턴도 2개만 챙기는 식으로 짐을 줄였다.


식량은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보다 통관 자체가 가능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많은 고민을 하였다. 특히 칠레는 농축산물의 반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알파미와 건조김치, 젓갈류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는 정보가 많았다. 그러나 입국심사에서 걸리면 2차 가공된 제품이라고 세관원들에게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알파미와 건조김치, 볶음 고추장, 젓갈류 약간을 가져갔다. 운이 좋았던지, 혹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통관에 큰 문제는 없었다.


식단은 특별한 메뉴라고 할 것도 없이 알파미에 건조김치, 현지에서 구입한 살라미나 베이컨을 함께 끓인 국밥을 자주 먹었고, 알파미로 별도의 밥은 짓고 건조김치와 베이컨을 넣어 고추장으로 양념을 한 일종의 '김치 두루치기'가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좋았다. 라면은 빨리 끓일 수 있는 컵라면을 가져갔고, 포장을 모두 해체하여 큰 지퍼백에 담아갔다. 이는 장거리 트레일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말 대신 차를 몰다.

차창 밖 파타고니아 팜파스 풍경

일정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교통편이었다. 엘 찰텐으로 가기 위해서는 공항이 있는 칼라파테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할 수 있지만 칼라파테에서 피츠로이의 관문인 엘 찰텐이나 토레스 델 파이네의 관문인 나탈레스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수백 km에 이르는 황량한 팜파스 구간을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대중교통수단은 없었으며, 몇개의 현지 여행사에서 계절과 요일에 따라 운행하는 버스들이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하루 2-3차례 운행하는 버스를 놓치게 되면 전체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었다. 빠르게 야영지를 구축하고, 다시 짐을 꾸리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과 동행하므로 교통수단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결국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칼라파테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한 후 칼라파테에서부터는  렌트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비용이 조금 더 들고 운전 때문에 몸도 더 피곤하겠지만 일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취향에 맞는 여행 스타일이었다.


구름과 바람이 아무렇지 않게 떠다니는 파타고니아의 광활한 평야에서 말을 달리지 못할 바에야 관광버스보다는 내가 운전하는 게 나았다. 여차하여 날이 저물면 회색여우나 퓨마를 걱정하면서 평야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흥미로울 터이니 말이다.


바람이 먼저 맞이한 라파테

아르헨티나에서의 첫번째 일정은 국내선을 이용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칼라파테로 가는 것이었다. 시차 적응이 안된 상태라서 비행기 안에서 자려고 노력하였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예사롭지 않았고, 무엇보다 곧 파타고니아의 턱밑에 다가간다는 사실에 설레였기 때문이다. BBC 다큐에서나 봄직한 풍경들이 창밖으로 스친다. 넋을 잃고 창밖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마치 오래전부터 먼길을 마중 나와있었다는 듯이 거대한 산맥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 피츠로이와 세로토레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칼라파테 공항은 우리나라의 지방소도시 버스터미널 수준이었으나 깔끔했다. 배낭을 찾기도 전에 공항 청사으로 나가 보았다. 파타고니아의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역시나 파타고니아의 바람과 구름이었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찾아온 파타고니아...왜 왔을까? 혹은 왜 이제 왔을까?


파타고니아 코스모폴리타니즘, 칼라파테

공항에서 칼라파테 시내까지는 약 24km 떨어져 있다. 공항에서 미리 예약해둔 렌트카 업체 직원을 만나 차를 받았다. 차는 다 낡은 쉐보레의 4인승 경차였다. 수동 미션 자동차 운전이 미숙한 탓에 시내의 경사구간에서 시동을 꺼트리기도 했는데 다시 출발을 하지 못해 경찰이 무슨 일이냐며 우리 차로 다가오는 당혹스러운 일도 있었다.


칼라파테는 남부 파타고니아의 중심지답게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넘쳐났다. 오직 파타고니아를 보고 느끼기 위해 수만 km를 날아왔을 그들에게서 일종의 코스모폴리탄같은 연대감이 느껴졌다. 가게의 상호나 식당, 심지어 은행 이름마저도 파타고니아 은행(Banco Patagonia)이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여행객이나 이곳 사람들이나 모두 파타고니아 시민이 된 느낌이었다. 하물며 개들도 자기만의 세상이 있다는 듯이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고 사람이 지나는 길에서 아무렇지 않게 드러누워 평화롭게 낮잠을 즐겼다.


칼라파테의 서점. 책장 하나가 온통 체 게바라 서적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특히 작은 도시를 갈 때는 서점에는 꼭 가보는 편이다. 현지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칼라파테에서도 서점을 둘러보았다. 책장 하나는 체 게바라 관련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맞다, 여기는 아르헨티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책장 가득한 체 게바라 관련 서적들에서 체 게바라에 대한 아르헨티나인들의 자긍심이 느껴졌다.


천식을 앓고 있던 아르헨티나의 청년 의사 게바라는 친구와 낡은 오토바이로 남미 여행을 한 후 혁명가로 다시 태어났었다. 이제는 문화 아이콘이 되어버렸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등불일 것이다.






트레킹의 중심, 엘 찰텐

칼라파테에서 엘 찰텐(El Chalten)까지 거리는 약 210km로서 차로 약 3시간 정도 걸렸다. 피츠로이와 세로토레 등반의 관문 역할을 하는 엘 찰텐은 작은 산악 마을로서 등반가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 트레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투박한 환영 간판이 서있었고, 거기에는 'CAPITAL NATIONAL del TREKKING'이라고 적혀 있었다.

엘 찰텐 입구. 트레킹의 수도(CAPITAL NACIONAL del TREKKING)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공항은 없으며, 성수기인 11월과 4월 사이에만 칼라파테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하루 두세 번 운행한다. 엘 찰텐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칼라파테를 거쳐야 한다. 엘 찰텐에는 작은 가게가 있지만 칼라파테보다 가격이 비싸며 품목도 많지 않으므로 장비나 식량 등은 칼라파테에서 미리 구입하는 게 좋다. 버스는 마을 입구의 공용 터미널에서 타고 내린다. 밤 10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는 생경한 경험을 하면서 엘 찰텐에서의 첫날은 작은 호텔에서 머물렀다.


다음날 새벽부터 흩뿌리던 비가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어느새 마을 뒤편으로 선명한 무지개를 펼쳐 보였다. 트레킹을 시작하는 첫날치고는 아주 근사한 환영 인사인 셈이었다. 우리가 트레킹에 나설 곳은 정확하게는 아르헨티나의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Los Glaciares National Park)에 속한 피츠로이 트레일(Around Monte Fitz Roy)과 라구나 토레(Laguna Torre) 트레일이었다. 피츠로이 트레일은 피츠로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 걷는 트레일이고, 라구나 토레 트레일은 세로토레를 조망할 수 있는 트레일이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따로 트레킹을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피츠로이로 향하는 트레일로 들어가서 피츠로이 앞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날 이어서 세로토레로 향하는 트레일을 걷기로 하였다.  


엘 찰텐-피츠로이와 세로토레 트레킹 개념도


엘 찰텐은 '트레킹 수도'라는 별명만큼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지도의 1번 코스는 마을의 북쪽 끝에서 시작되는 어라운드 피츠로이(Around Monte Fitz Roy)로서 피츠로이를 조망할 있는 코스이다. 마을에서부터 포인세노트(Poincenot) 야영장까지는 약 10km이며, 3시간 정도 소요된다. 2번 코스는 세로토레를 조망할 수 있는 라구나 토레(Laguna Torre)로 이어지는 길이다. 약 7km이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3번 코스는 엘 찰텐과 라구나 토레를 연결하는 코스이다. 약 10.5km로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을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피츠로이 가는 길은 낮게 내린 먹구름마저도 경이로웠다.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을 알리는 안내 간판에는 목적지인 포인세노트 야영장까지 8km라고 적혀있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하였으며, 숲 속을 벗어난 능선에서는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때때로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수고와 노력 없이 피츠로이를 볼 수는 없는 터 걸음을 서둘렀다.


엘 찰텐을 출발한지 4시간만인 오후 2시 30분경 피츠로이가 바라다 보이는 포인세노트 야영장에 도착하였다. 시차 적응이 채 안된 첫날 일정이라서 포인세노트 야영장까지만 운행하기로 하고 텐트를 설치하였다. 날씨가 안 좋은 탓인지 야영장에는 해가 질려면 7시간 이상이나 남았음에도 여러 동의 텐트가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피츠로이 방향으로 짐작되는 곳을 바라보았으나 구름에 싸여 보이지 않고 봉우리 밑둥만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남반구인 이곳은 밤 10시가 지나서야 해가 저물기 때문에 길을 재촉하면 세로토레를 볼 수 있는 라구나 토레까지도 갈 수 있었지만 우리도 다음날 피츠로이를 보기 위해서 이곳에서 하루 머물기로 하였다.


아, 피츠로이[2] 

식사를 마치고 까뭇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해가 질 무렵 다시 텐트 밖을 나와 보니 피츠로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짙은 구름만이 사위를 감싸고 있다.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피츠로이를 볼 수 있길 기도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후득후득 바람과 함께 비가 텐트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파타고니아 품 안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아침 햇살에 천천히 빛나고 있는 피츠로이. 구름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간밤의 간절한 기도를 들었을까...희미한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느끼고 텐트 밖으로 기어나갔다. 그리고 거기 피츠로이가 붉은 태양 아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으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피츠로이가 우리 앞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꿈같기도 하고 그저 잘 찍은 또 하나의 사진 한 장을 보는 듯 한 느낌이었지만 그 위용은 실로 대단하여 저절로 경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봉우리를 최초로 등정한 리오넬 테레이(Lionel Terray)[3] 를 비롯하여  이본 취나드 등 수많은 모험적인 클라이머들이 시간을 거슬러 거대한 암벽에 붙어있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넋을 잃고 바라보기를 한 시간...피츠로이는 휘몰아치는 구름을 거느리고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꾸짖는 것 같기도 하며, 인자하게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구름은 사납지만 근엄한 피츠로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로토레[4]를 향하여

이틑날의 일정은 세로토레를 보기 위한 라구나 토레까지의 트레킹이었다. 포인세노트 야영장에서 엘 찰텐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 나오다가 약 1km 지점에 라구나 토레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전날과는 달리 날씨는 화창했다. 멀어져가는 피츠로이가 못내 아쉬웠지만 적당한 기온과 바람, 그리고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옥빛 호수가 펼쳐놓은 풍경은 걷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이런 길을 걷다보면 나의 존재는 완전히 객체화되어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또다른 존재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라구나 토레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내려갈 뿐 아니라 야생화가 흐드러진 길은 호수를 끼고 이어져 천상의 산책길 같았다. 언제 다시 볼까 싶은 피츠로이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라구나 히자(Laguna Hija)를 지나는 길은 특히나 아름다웠다.  

만년설과 고요한 호수, 어디선가 떠내려와 하얗게 말라버린 나뭇가지들마저 이 잘 짜여진 미장센을 위한 훌륭한 소품들이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컨디션은 햇살에 잘 말린 빨래같았다. 전날 10km에 이어 20km를 걸어야 했지만 바람과 구름과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뿐사뿐 걸어나갔다. 갈림길의 고도가 약 730m이며, 세로토레로 이어지는 길목이 약 560m로서 오르막은 거의 없이 평지이거나 약간의 내리막길이었다.

라구나 토레로 이어지는 갈림김

2시간 정도를 걷자 엘 찰텐에서 라구나 토레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났다. GPS를 확인해보니 갈림길에서부터 거리는 약 7km정도였다. 여기서 세로토레를 조망할 수 있는 라구나 토레까지는 다시 3.5km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간단한 행동식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배낭을 벗어둔 채 다시 길을 나섰다. 변화무쌍한 날씨는 오전과는 달리 다시 비를 뿌렸다. 이런 기후 변화는 하루에도 몇번씩 반복되곤 했다. 1시간을 걸어 라구나 토레에 도착하였으나 역시 세로토레는 먹구름에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라구나 토레는 엘 찰텐으로부터 약 10.5km 떨어진 곳으로 세로토레 전망대이기도 하다.


호수 건너편 마에스트리 전망대 방향으로 빙하가 보였다. 그 뒤로 세로토레가 있을 것이다. 마에스트리 전망대는 세로토레 초등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논쟁을 일으켰던 이탈리아 등반가 마에스트리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세로토레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우리는 세로토레가 흘려내린 빙하에서 떨어져나와 호수에 떠다니는 수정같은 유빙을 건져 세로토레의 체취를 느끼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하였다.


다시 엘 찰텐

이제 다시 엘 찰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오후 3시 라구나 토레를 출발하였다. 엘 찰텐까지는 약 6km. 2시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빙하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협곡은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하늘로 솟구친 첨봉 사이에 쌓인 눈은 바람을 만나 빙하를 만들어내고, 그 빙하는 침식 작용으로 땅을 파내 협곡을 만들어냈다. 신비로운 자연의 힘이다.


한줄로 이어진 가느다란 길을 오래 걷다보면 두뇌의 사고와 육체의 운동은 점차 분리된다. 터벅터벅 걷는 것이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셈이다. 경쟁과 결과, 격정과 공포도 없이 걷는 길, 평화이다. 뭉쳐진 다리 근육과 뜨거워진 발바닥, 갈라진 입술과 거칠어진 피부, 심지어 손톱에 낀 까만 때마저도 평화에 견주자면 하찮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다음 길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엘 찰텐으로 내려서는 길. 아담한 엘 찰텐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1] 남북으로 뻗은 남미 안데스 산맥의 남부 지역을 통털어 파타고니아라고 한다. 따라서 특정 봉우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영토에 겹쳐져 있다.

영문명은 Cerro Chalten, 또는 Cerro Fitz Roy라고도 하지만 보통은 Mount Fitz Roy로 표기하며, 높이는 [2] 3,405m이다. 남부 파타고니아의 대표적인 알파인 등반 대상지로서 1952년 프랑스의 Lionel Terray가 초등하였다. 1968년 이본 취나드는 남서벽에 'Californianos'라는 신 루트를 개척하면서 세 번째로 등정한 바 있다.

[3] 리오넬 테래이(1921-1965). 히말라야 마칼루와 자누, 피츠로이 등을 초등한 프랑스 등반가.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의 산악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자서전 ‘무상의 정복자’가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4] Cerro Torre. 피츠로이의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높이는 3,102m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봉우리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아직까지도 전세계 산악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이런 만큼 초등에 얽힌 사연도 많아서 이탈리아의 체사레 마에스트리(Cesare Maestri)가 1959년 초등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등정을 확인할만한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해 시비가 일었다. 이후 1970년 마에스트리는 에어콤프레서를 동원한 과다한 볼트 사용으로 등정하였으나 오히려 비난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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