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파타고니아 W트렉
W 트렉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은 파이네 산군을 완전히 한바퀴 도는 O 트렉(O-Trek)과 남쪽의 주요 전망대를 거쳐가는 W 트렉(W-Trek)이 있다. 써킷이라고도 하는 O 트렉의 전체 거리는 약 110km로서 최소 6일 정도 소요되며, W 트렉은 60km로서 보통 4일 정도 소요된다. 트레킹을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 방향으로 진행한다면 지도의 1번 라스 토레스 호텔에서 출발하며, 반대로 서쪽에서 시작한다면 페호 호수(Lago Pehoe) 옆에 있는 4번 파이네 그란데(Refugio Paine Grande) 산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W 트렉을 걷기로 했고, 1번에서 출발하여 2번 라스 토레 전망대, 3번 쿠에르노스 산장, 4번 파이네 그란데 방향으로 진행한 후 보트를 타고 5번 푸데토(Pudeto) 선착장으로 빠져나왔다. 서쪽에서부터 출발한다면 5번의 푸데토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파이네 그란데 산장으로 들어가서 트레킹을 시작하면 된다. 보트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세 차례 왕복 운행한다. 트레킹 코스의 해발 고도는 200m에서 400m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지만 주요 전망대는 700~800미터에 위치하여 약간은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한다.
Ruta 40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위해서는 칠레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의 관문 도시인 칠레 나탈레스까지는 약 360km로 약 5시간이 소요된다. 나탈레스에서 파이네 국립공원 관리소이자 트레킹의 출발점인 라구나 아마르가(Laguna Amarga)까지는 다시 120km정도를 가야한다. 이 길은 중간에 비포장도로가 있어서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칠레로 들어가기 위해서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리오 투르비오(Rio Turbio)로 향했다. 칼라파테에서 조금 벗어나면 그 유명한 루타 40(Ruta 40, 또는 RN 40) 국도를 만난다. 루타 40은 서부 아르헨티나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총길이 5,244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도로다. 볼리비아 국경 근처인 라키아카(La Quiaca)[1]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는 루타 40은 20개의 국립공원과 18개의 큰 강, 그리고 27개의 안데스 산맥의 고개를 넘어서 남쪽 끝 리오가예고스(Rio Gallegos)에 이르게 된다. 청년 시절 체 게바라가 모터싸이클로 달렸던 길의 일부이기도 한데 안데스 산맥과 나란히 간다. 풋내기 청년 의사였던 에르네스토[2]는 1951년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루타 40 국도를 따라 모터싸이클 여행을 다녀온 후 혁명가 체 게바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자전거나 모터사이클로 루타 40을 따라 여행하는 사람이 많으며, 라이더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광활한 초원지대를 가로질러 파타고니아 산맥과 나란히 뻗은 이 길이 나의 버킷 리스트에 있음은 물론이다.
드넓은 들판에는 도대체 주인이 있을까 싶은 양떼들이 떼지어 있고, 레아[3] 라는 큰 새가 성큼성큼 뛰어다닌다. 그 반대편으로는 안데스 산맥이 힘껏 솟구쳐 파타고니아의 준봉 (峻峯)을 일으켜 세운다. 누구나 여기에 서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누대에 걸쳐 파타고니아를 찬양했던 것인지, 더글라스 톰킨스가 왜 그토록 파타고니아를 사랑했으며 토지를 매입하여 더이상 개발할 수 없도록 만들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칠레 국경 근처에 오자 멀리 토레스 델 파이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가슴이 뛰었다.
국경을 넘다.
우리가 칠레로 넘어가기로 한 출입국 사무소는 리오 투르비오는 오래된 광산 마을이었다. 칠레 출신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4]의 소설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에서 석탄을 실은 기차가 출발하는 곳이 바로 리오 투르비오역이다. 국경 지역이라 그런지 아르헨티나에서 빌린 차량 네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겨우 출입국 사무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대단히 친절했지만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했고, 나는 에스파냐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온갖 손짓과 표정, 그리고 ‘칠레’라는 단어만으로 출입국 사무소를 찾아갔다.
아르헨티나의 국경을 넘는 곳에는 한 국가의 출입국 사무소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건물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 출국 심사를 하는데 그 절차는 매우 간단했지만 우리는 차량을 가져왔으므로 별도로 차량 출국 신고절차를 거쳐야 했다. 리오 투르비오 국경은 여행객들을 태운 버스는 보이지 않았고, 화물 운송, 직장 출퇴근 등 일상적 이유로 칠례와 아르헨티나를 넘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단골 가게 주인과 손님들처럼 사무소 직원들과 친근한 인사를 주고 받기도 하였다. 그들은 국적보다는 그저 다 같은 파타고니안(Patagonian)이라는 국적을 가진 것 처럼 보였다.
간단한 출국 심사 절차를 거치고 다시 차를 몰아 고개를 넘어가자 이번에는 칠레 쪽 출입국 사무소가 나왔다. 이곳에서 다시 입국 심사를 하게 되는데 차 안의 짐을 모두 내려 엑스레이 스캔을 하였다. 알파미와 건조김치 등이 있었지만 가공된 식품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고 스캔도 다소 형식적으로 통과하였다.
국경을 넘고 30분 정도 더 가자 마침내 나탈레스에 들어섰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관문인 작은 도시 나탈레스도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처럼 트레커들로 붐볐다. 원래 계획은 이날 토레스 델 파이네로 들어가 야영을 할 계획이었지만 나탈레스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오후 7시가 넘었고, 저녁도 거른 상태라서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출입국 심사 때문에 가져오지 못한 식량도 현지에서 조달해야 했으므로 우선 대형 마트인 우니막(Unimarc)에 들렸다. 이곳에서 과일을 비롯하여 육류, 해산물 등 다양한 먹거리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칠레는 특히 와인이 유명한데, 싸면서도 맛이 아주 훌륭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관문, 나탈레스
칠레 파타고니아의 일정을 시작하는 첫날, 나탈레스의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텐트를 설치하고 하룻밤을 보냈다. 7시쯤 일어나 텐트를 철수하며 한편으로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다. 장비를 챙기는데 아뿔싸 칼라파테의 호텔에 등산화 한 켤레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장비점이 문을 열 리가 없어 난감했으나 다행히 근처 장비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었다. 나탈레스에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텐트와 침낭 등 각종 백패킹 장비를 대여해주는 곳이 여럿 있었다. 등산화를 대여하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하루 4,000원씩이다.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등산화는 상태가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3일간의 막영구와 식량을 모두 짊어지고 가야하므로 최대한 짐을 줄였다. 식량은 피츠로이 트레킹과 비슷하게 알파미와 누룽지, 건조김치를 주로 챙겼고, 입맛을 돋울 수 있는 볶음 고추장을 가져가기로 했다. 현지에서 구입한 살라미도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남반구의 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1월의 토레스 델 파이네는 새벽 최저 기온도 영상 이상으로 비교적 따뜻하므로 기온보다도 비와 바람을 잘 대처하는 게 중요했다. 침낭은 가벼우면서 보온에 유리한 제품을 챙겼으며, 비바람에 대비해 200g 정도에 불과한 판초타프를 가져가기로 하였다.
나탈레스를 출발하여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는 길 약 60km 지점에서 세로 카스틸로(Cerro Castillo)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은 칼라파테에서 루타 40 도로를 이용하여 나탈레스로 가다가 중간에 있는 칸차 카레라(Cancha Carrera) 부근 갈림길과 이어지는 칠레쪽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곳이다. 세로 카스틸로에는 입국 신고를 하느라 여러 대의 버스들이 서있었고, 신고를 마친 많은 여행객들은 밖으로 나와서 파타고니아의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칼라파테와 나탈레스를 오가는 버스들도 대부분 거쳐가는 이곳에는 주유소, 우체국 등의 편의시설이 있었다.
카스틸로 갈림길에서 파이네 국립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자 저 멀리 파이네의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다 보여줄 수 없다는 듯이 구름 속에 가리어 정상 부근만 얼핏 보여줄 뿐이었다. 이곳에서 얼마 지나자 길은 비포장 도로로 바뀌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40km 정도를 더 가자 마침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입구 사무소인 라구나 아마르가(Laguna Amarga)가 나타났다. 마침내 토레스 델 파이네의 입구에 들어선 것이다.
저기, 토레스 델 파이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어디서부터 시작하던 여행객들은 모두 여기에 들려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신고서를 작성한 후 간단한 교육을 받고서 출발해야 한다. 파이네 국립공원 입장료는 40달러로 다소 비싼 편이다. 칠레 자국인들은 12달러로서 차등을 두고 있다. 칠레 페소 화폐 뿐 아니라 세계적인 트레킹 명소답게 미국 달러와 유로화를 사용할 수 있다. 출입 신고서에는 이름과 국적, 여권번호, 체류일정 등을 적게 되어있고, 공원 내에서의 지켜야 할 수칙, 예를 들어 모닥불을 피울 수 없으며, 정해진 장소에서 취사와 야영을 할 것 등 일반적인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출입 신고서를 작성한 후 트레킹 안내 지도를 받아들자 마침내 트레킹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설레였다. 국립공원 출입 신고서를 작성한 후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는 라스 토레스 호텔(Hotel Las Torres)까지는 다시 7km 정도를 들어가야 한다. 이곳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동한다.
라스 토레스 호텔은 제법 시설이 좋은 숙박시설과 식당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트레킹을 하러 온 백패커들보다는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지만 야영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서쪽 방향으로 트레킹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대기는 투명했으며 약간의 구름과 바람은 오히려 상쾌하기까지 하다.
칠레노 산장
첫날 일정은 라스 토레스 호텔을 출발하여 5km 거리에 있는 칠레노 산장(Refugio Chileno)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파이네 3봉을 조망할 수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것이었다. 오전 11시쯤 출발하였다. 높은 봉우리에는 구름이 걸려있으나 비구름같지는 않다. 날씨는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출발지점의 해발고도가 약 150m, 칠레노 산장은 약 450m로서 산장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답게 많은 트레커들이 오간다. 우리처럼 들뜬 심정으로 길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약간의 지친 표정으로 트레킹을 마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지만 화창한 날씨와 구비를 돌아갈 때마다 보여주는 신비로운 풍경에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라스 토레스 전망대 방향의 갈림길에는 낯익은 안내 푯말이 서있다. '흔적남기지 않기' 운동인 LNT 안내 푯말인 것이다. 인간은 원래 이곳의 주인이 아닌, 그저 지나가는 손님일 뿐이다. 이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것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무이다. 자연을 즐기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실천 방법이다.
라스 토레스 전망대를 향하는 길에 경유하게 되는 칠레노 산장을 오르다 보면 중간에 쿠에르노스 산장으로 가는 지름길을 만난다. 전망대까지 올라간 후 다시 되돌아 내려와 쿠에르노스 산장으로 가야 하는데 이때 라스 토레스 호텔까지 내려가지 않고 이 갈림길에서 지름길로 들어서면 된다. 출발한지 2시간여.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넘어서자 가느다랗게 이어진 길이 내려다 보이고 그 옆 계곡 사이에 마침내 첫번째 쉼터인 칠레노 산장이 보인다.
칠레노 산장은 숙박시설과 식당 이외에 야영장 시설도 있다. 야영장에는 이미 설치된 텐트를 빌려서 이용할 수도 있고 가져간 텐트를 설치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마땅한 텐트가 없거나 짐을 줄일 요량이면 이미 설치되어 있는 텐트를 빌리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야영장 이용비는 1인당 13달러로 비싼 편이다. 설치되어 있는 2인용 텐트는 14달러로서 별 차이가 없었다.
목재로 지어진 산장은 파타고니아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산장 실내에는 남미의 대중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제 막 트레킹을 시작한 사람들이나 트레킹을 거의 다 마친 사람들이 저마다 가볍게 맥주나 스낵을 먹으면서 자신들의 즐겁게 여행담을 나누고 있었다.
산장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였다. 나탈레스에서 구입한 베이컨과 건조김치, 고추장을 뒤섞어 김치두루치기를 해먹기로 하였다. 시장이 반찬이고, 풍경은 그대로 화려한 레스토랑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토레스 델 파이네 전망대로 출발하였다.
파이네를 마주하다.
봉우리 아래에는 짙푸른 숲이, 그 경계선에는 검붉은 직벽이, 그리고 그 위에는 만년설이 두텁게 쌓여 있는 풍경은 경이로웠다. 전망대까지는 약 4km 거리. 고도 450m인 칠레노 산장과 850m인 전망대의 표고차는 약 400m정도 되는 오르막길이다. 특히 마지막 1km 구간은 매우 가파른 너덜지대를 지나게 된다.
트레일 3봉은 저 아래 트레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수고한 자들에게만 비로서 그 위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파른 구간에 올라서자 파이네 3봉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얼핏 그것은 설악산의 적벽이나 장군봉같기도 하다. 너덜지대 사이로 이어진 길은 토레스 3봉의 발 밑으로 이어진다. 칠레노 산장을 출발한지 2시간여만에 전망대에 올라섰다.
토레스(Torres)는 영어로는 Tower라는 뜻으로 탑처럼 날카롭게 솟아오른 첨봉을 의미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파이네 3봉은 왼쪽부터 남쪽의 토레 데 아고스티니(Torre de Agostini, 2,850m), 가운데 토레 센트럴(Torre Central, 2,800m), 가장 오른쪽의 토레 몬지노(Torre Monzino, 2,700m)를 일컫는다. 각각 파이네 남봉, 중앙봉, 북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망대의 고도가 약 850m이므로 전망대에서부터 봉우리 정상까지의 수직 표고차는 거의 2,000m에 이르며, 실제 등반 표고차는 1,200m에 이른다.
하늘은 흐렸으나 다행히 파이네 3봉은 까마득하게 솟구쳐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망대라고 해서 특별한 편의시설이나 인공 시설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 호숫가에서 파이네 3봉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파이네 3봉 등반을 위한 접근도 이 길을 따라간다. 파이네 3봉을 둘러본 후 다시 칠레노 산장으로 되돌아 내려갔다.
칠레노 산장에서 야영을 하기로 하고 텐트를 설치할만한 곳을 찾아보았으나 빈 자리가 없었다. 산장 관리인에게 물어보자 아무 곳에나 설치하라고 한다. 결국 바람이 심했지만 그나마 지면이 고른 계곡 옆에 텐트를 설치하고 델 파이네의 품 안에서 첫날밤을 맞이하였다.
간밤에 후드득 비오는 소리가 가끔 들렸지만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우리는 서둘렀다. 오늘은 전날의 밀린 일정을 만회하려면 30km를 걸어야 한다. 쿠에르노스 산장을 거쳐 파이네 그란데 산장까지 가야 한다. 트레킹의 마지막 일정을 따뜻한 샤워와 제대로 된 저녁으로 마치고 싶었기에 산장 숙박과 저녁 식사,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미리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다른 산장 이용료도 비슷한데 숙소와 함께 저녁식사, 다음날 아침식사, 런치박스까지 포함한 풀 보드(Full Board)로 예약을 하였는데 1인당 거의 10만원꼴이었다.
텐트를 철수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부산하게 출발 준비를 마쳤으나 9시가 넘어서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어제의 쿠에르노스 산장 갈림길까지는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야 하지만 모든 길이 다 그렇듯이 올라올 때의 느낌과 내려갈 때의 느낌이 서로 달라 같은 길 같지가 않았다. 같은 길이지만 오르고 내리는 느낌이 다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다르기에 우리는 같은 길이지만 늘 새로운 길을 다시 걷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비가 조금 내렸지만 하늘은 눈이 시리게 파랗고 풍성한 구름이 둥둥 떠다닌다.
파이네의 근위병, 콘도르
칠레노 산장을 출발하여 30분 정도 걸어 내려오자 쿠에르노스 산장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은 많은 구간이 노르덴스크홀드 호수 옆으로 이어진다. 호수의 이름은 호수를 처음 발견한 스웨덴의 지질학자이자 남극탐험가인 오토 노스덴스크홀드(Otto Nordenskjold)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가 호수를 발견한 것이 20세기 초인데 불과 100여년 전의 일이니 이곳 파타고니아가 얼마나 미지의 세계였던가를 잘 알 수가 있다.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를 제외하면 길은 대체로 평탄하게 이어졌다. 간혹 작은 언덕을 넘기도 했지만 고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피로가 누적되고 건조한 행동식만으로 운행을 계속하자 완전히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빨리 쿠에르노스 산장이 나타나주길 기대하며 구비를 돌고 고개를 넘었다. 오후 3시쯤 쿠에르노스 산장에 도착하였다. 칠레노 산장을 출발한지 6시간만이다. 산장에서는 피자와 맥주를 팔고 있었다. 점심을 거르고 간단한 행동식만으로 운행을 했기에 우리는 피자부터 주문하였다. 피자 한 조각에 거의 만원 정도로 비쌌지만 이 순간만큼은 지갑 걱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산장에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며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트레커들로 붐볐다. 그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가슴에 담아갈 파타고니아의 바람과 구름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한시간여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배낭을 들춰 멨다.
쿠에르노스 산장을 출발한지 2시간 30분만에 이탈리아노 야영장을 지났다. 이곳은 산장 시설은 없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야영장 시설만 있는 곳이다. 첨탑과 같은 파이네와는 달리 우람한 체격을 가진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2,600m) 밑을 지나는데 하늘 위로 한 무리의 콘도르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위대한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는 페루의 전설도 있지만 콘도르는 마치 파이네의 근위병 같았다.
불타버린 파타고니아
이탈리아노 야영장을 조금 지나자 숲 전체가 산불로 소실된 곳이 나타났다. 이 안타까운 산불은 2011년 12월 외국인 트레커의 실수로 일어났는데 광범위한 숲이 흉측하게 불에 탄 나무들로 가득했다. 당시 산불로 민간인 1명이 숨지고 산불을 진화하던 소방대원 6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게다가 일주간 이상이나 계속된 산불로 유네스코 지정 생태보호지역을 포함해 4만 5000ha의 삼림과 목초지가 소실되고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고 하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용변을 본 후 휴지를 되가져가지 않고 불에 태우려고 하다가 산불로 번졌다는 사실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 관리국의 기본 지침은 '참을 수 없다면 땅을 파서 용변을 보되, 사용한 휴지는 되가져가라!'는 것이다. 숲을 지나면서 보니 다시 회복하려면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프란세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 건너편에 만년설과 빙하를 안고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최고봉인 세로 파이네 그란데(3,050m)가 올려다 보였다. 세로 파이네 그란데는 일주일간이나 화마에 신음했을 발 밑의 숲을 슬픈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을 것이다.
종착점, 파이네 그란데 산장
마침내 멀리 파이네 그란데 산장(Refugio Vértice Paine Grande)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불의 흔적은 우리의 목적지인 파이네 그란데 산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산장은 산불로 폐쇄되었다가 몇년만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W트렉 전구간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 구글링을 통해 수없이 봐왔던 파이네 그란데 산장. 그러나 구비를 돌아가자 갑자기 내 눈 앞에 실제로 나타난 파이네 그란데는 여전히 낯설고 신기했다. 앞서간 아이들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였다. 오후 9시에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도착하였다. 이탈리아노 야영장에서부터 이곳까지는 7.6km. 2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으나, 우리는 이미 20km 이상을 걸어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도 2시간만에 도착하였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는 않았으나 시간은 이미 오후 9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시간에 도착한 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식당의 주문 마감이 오후 9시였던 것이다. 우리는 부랴부랴 체크인을 하고 식당으로 갔다. 풀 보드 예약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매몰차게 시간이 늦었다고 식사 제공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평소 걷기에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30km가 넘는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샤워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부푼 기대감도 크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산장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는 영양이 풍부한 육류와 샐러드, 과일쥬스, 스프 등이었다. 호수와 구름과 산봉우리, 그리고 서서히 날이 저물어 파타고니아의 하늘에 빛나기 시작하는 별들까지.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파타고니아 맥주를 즐겼다. 이 순간 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를 기도했다. 10시가 넘어서자 파이네 그란데에도 어둠이 찾아왔고, 조용히 실루엣으로 스스로를 낮추고 있는 파타고니아의 험준한 봉우리 사이로 별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Hasta Luego, Patagonia![5]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선착장으로 나가 보트를 기다렸다. 뒤로 토레스 델 파이네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우리들처럼 잠시 길을 멈추는 사람들이나 바삐 텐트를 걷으며 다시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길 위에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걷는 자들의 후손이니까.
파타고니아가 우리에게 안긴 선물을 미처 가름하지도 못했는데 멀리서 페호 호수의 물결을 가르며 우리를 싣고 갈 보트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오래오래 기억하고자 파타고니아를 다시 뒤돌아보았다.
아스따 루에고, 파타고니아!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서 바라본 토레스 델 파이네 전경. 왼쪽 가깝게 보이는 봉우리가 세로 파이네 그란데이며, 오른쪽 멀리 보이는 우람한 봉우리가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이다. 그 사이로 멀리 송곳같이 파이네 봉이 솟아있다.
[1] 안데스 산맥 해발 3,440m에 있는 아르헨티나 북쪽끝 작은 도시로 볼리비아와의 국경이다. 라키아카는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의 국경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도시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반독재 혁명군에 참가했다가 1967년 볼리비아 독재정권의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었고, 게바라의 청년시절 모터사이클 여행을 다룬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OST에는 ‘De Ushuaia a La Quiaca(우수아이에서 라키아카까지)’라는 곳이 수록되어 있다.
[2]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의 본명은 Ernesto Guevara de la Serna이다.
[3] 레아(Rhea)는 타조목에 속하는 날지 못하는 새. 남미에서만 서식한다.
[4] Luis Sepulveda(1949- 2020) 칠레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 환경운동가. ‘파타고니아 특급열차’ 이외 대표작으로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연애소설 읽는 노인' 등이 있다. 안타깝게도 2020년 4월 코로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스페인에서 사망하였다.
[5] ‘다시 만나, 파타고니아! (See you later, Patagonia!’)라는 뜻이다. 아스따 루에고는 칠레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흔한 인사말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