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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an 18. 2023

21. 끝이라고 생각될 때 다시 한번, 앙코르!

[앙코르], 유리 그림책, 이야기꽃

버려진 악기였다. 오랜 시간 공들여 수리하고 바이올린에 대한 이런저런 지식을 늘어놓는 장면을 보느라 잊었던 사실, 버려졌다는 것, 끝이라는 것.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고 돌체(dolce 부드럽게), 그라치오소(grazioso 우아하게), 스피리토소(spiritoso 활기차게), 콘 브리오(con brio 생기 있게), 콘 아모레(con amore 사랑을 담아) 하게 손보는 동안 바이올린은 다시 태어났다. 

현실에 치여 버려진 꿈, 해지고 망가져서 다시는 펼칠 수 없을 것 같던 소망이 장인의 굳은살 배긴 손길과 우직한 진심에 힘입어 다시 웅장해지는 책, <앙코르>다. 



첫 장면이다. 누가 이사를 가는지 길가에 짐이 한가득 버려져있다. 보면대가 쓰러져있고 그 앞에 악기 케이스가 놓여있다. 저 멀리서 누군가 자전거를 끌고 온다. 



자전거를 끌고 오던 사람이 악기 케이스를 싣고 간다. 떠나는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고양이에 이입돼 호기심이 인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자전거를 끌고 온 이는 전문 수리공이었나 보다. 책상에 도구들이 한가득이다. 



악상 기호에 맞춰 이어진 장면에서는 수리공의 손이 강조되어 나온다. 악기 케이스 안엔 바이올린이 들어있었구나. 바이올린이 어떤 나무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쓰여있다. 




수리를 마친 바이올린은 어떻게 됐을까? 다시 연주해도 좋은 소리가 날까? 쓰레기더미에서 건져 올린 바이올린이 다시금 윤기 나는 제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예전 생각이 났다. '꿈을 꾸고 잃고 되찾은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지.' 하면서... 




꿈을 찾아서


꿈을 강요받던 때가 있었다. 전쟁과 민주주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마침내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다는 상징이 되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만면에 미소를 띠며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백으로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되고 싶은 게 없던 나는 늘 꿈 앞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대학에 가고 나자 더 조급해졌다. 1년에 천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대는 부모 앞에 자신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청사진을 그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2년 있으면 졸업인데, 진로는 생각해 봤니?"

"토익공부하고 어학연수 다녀와서 스펙 만든 다음에 대기업 공채 준비해 보려고. 삼성물산이나 현대건설 같은 회사 생각하고 있어."


삼성과 현대라는 말을 듣자마자 숨길 수 없던 엄마의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벌써부터 주변 아주머니들에게 자랑할 생각을 하시나 보다. 사실 토목 계열 공대생이었던 나는 당시 굉장히 방황하고 있었다. 여성이라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대를 지원했지만 견학 가서 본 현장의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다른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언제 방향을 틀어야 하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둥둥 뜬 마음으로 토질역학 시험을 보면서 복수전공을 준비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다. 가난은 실패를 눈감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4년 안에 졸업해야 했고 반드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야 우리 집이 산다. 책임감이 앞서지만 한편으로'나'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기도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런 일이 과연 있을까? 


고심 끝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진로는 광고 계열로 정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문과대 소속이었다. 고등학교 3년, 대학 2년 동안 답이 딱딱 떨어지는 문제만 풀어왔는데, 답이 없는 문제를 구구절절 설명하라니... 공학용 계산기가 그리웠다. 이 길이 맞을까 고민하며 수업을 듣는데, 마침내 나에게 '기호학'이 왔다. 기호학은 기호를 지배하는 법칙과 관계를 규명하고, 기호를 통해 의미를 생산, 해석, 공유하는 행위와 정신적인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방법론이다. 구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어 논리적 사고와 통합적 사고를 요한다. 다시 말해, 문과적 호기심과 이과적 사고를 갖춘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학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성적이 잘 나왔다. 관련 수업 모두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드디어 찾았다! 나는 기호학을 연구하는 교수가 되어야겠다. 


짜릿했다. 그 순간이 나에게도 왔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꿈을 갖게 됐다. 인생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지도교수님처럼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뒤 학생들을 가르쳐야지. 옆구리에 바게트를 끼고 자전거를 타며 등교를 하고,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도서관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발표하는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끝내줬다. 학교 다니는 게 즐겁고 공부가 재밌었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연구실에 들어가 스터디를 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은 걸


꿈만 찾으면 될 줄 알았다. 남은 건 노력뿐이라 생각했다. 얄궂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은희야, 엄마가 암 이래."

"암? 치료받고 이겨내면 되지. 티브이에 그런 사람들 많이 나왔잖아."

"그래. 그럼 되지. 근데 4기랜다."


암에도 기수가 있었다. 4기는 암세포가 온몸에 번진 상태를 말한다. 자궁경부암 4기 환자가 5년간 생존할 확률은 5%라고 했다.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찾은 꿈인데,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을 생각을 하니 울분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엄마를 두고 갈 수도 없었다.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또다시 벼랑 끝이었다. 이번엔 선택이 아니었다. 폭풍이 몰려오는 바다를 향해 뛰어들라는 운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저항할 새도 없었다. 풍덩- 내 몸의 무게만큼, 꿈에 대한 간절함 만큼 하얀 물보라가 일었다. 파도 거품이 금세 사그라들듯 아쉬워할 겨를은 많지 않았다. 나는 취업과 유학 대신 인서울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들고 간병 일을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엄마가 구토를 하는 모습을 보며 울고 어학연수를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울었다. 치료 후 당분간의 평안에 안도하다가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동기들의 소식을 듣고 구석에 처박혀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재발하고 전이된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에 남은 꿈이 죄처럼 느껴졌다. 마음에 단 하나의 소망만 남겨둬야지 욕심을 부린 나 때문에 엄마가 계속 아픈 것 같았다. 꿈꿨던 기억을 지우고 동기들을 부러워했던 마음을 꾸짖었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


10년쯤 지나니 폭풍은 잠잠해졌다. 엄마도 떠나고 꿈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은 나는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채 꾸역꾸역 살고 있었다. 아, 엄마가 됐지! 정신없이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느라 잊고 있었다. 나도 뭔가가 됐구나. 옆구리에 바게트 대신 기저귀 가방이 있고 자전거 대신 유모차를 밀고 있지만. 

아이는 정말 예뻤다, 정말. 그런데 문득 적막이 찾아올 때마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슬픔도 아니고 허무한 것도 아닌, 이상한 감정이었다.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하러 가는 남편이 밉고 회사에서 이룬 성취에 질투가 났다. '나도 대학 나왔는데... 나도 하면 정말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말랐다. 사막 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폭발할 듯한 분노와 열망은 어딘가로 뚫고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죽을 것처럼 목이 마르고 내면의 열기에 질식할 듯한 감정이 되어서야 사람은 삶의 방향을 바꾼다. 꿈이란 거창한 말을 버리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싶단 사소한 바람에서부터 시작했다. 과거에 대한 연민을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돌체(dolce 부드럽게), 그라치오소(grazioso 우아하게), 스피리토소(spiritoso 활기차게), 콘 브리오(con brio 생기 있게), 콘 아모레(con amore 사랑을 담아) 하게 시간을 가꾸는 동안 황했던 터에 길이 나고 빛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꿈


아이에게 읽어줬던 그림책에 매료되어 관련 강의를 듣고 이론서, 논문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거기에 '기호학'이 있는 거다. 세상에...!  20년 전 버려졌던 꿈이 쓰레기더미 곁에 있던 바이올린처럼 어색하게 서 있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반갑고 좋으면서도 그리워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원망도 되고 이 나이에 다시 무얼 할 수 있을까 막막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았다. 팔로 껴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고 있어야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자격증을 땄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강의안을 만들었다. 그러고 수업을 하는데 심장이 너무 뛰어서 튀어나가는 알았다. 

'살아있구나, 내가 살아있었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다시 한번, 앙코르!


꿈을 잃고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 여겼을 때.. 그 언젠가는 세상을 등지고픈 마음도 있었다. 죽고 싶다기보다는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계처럼 먹고 마시고 자는 생활이 이어졌고 즐겁다거나 설렌다는 감정을 잃어버렸다. 끝까지 그렇게 살 줄 알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말을 들을 때마다 어색하고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살아있길 잘했다. 버티고 꾸역꾸역 참길 잘했다. 


끝이라고 생각될 때 다시 한번, 앙코르! 출렁이는 강물을 벗어나고 쓰디쓴 수면제를 뱉어내길, 세찬 바람을 맞으며 빌딩 위에 외롭게 서 있지 말고 달려드는 차를 피해 달아나길 바란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오니까.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

 

글을 잘 쓰기 위한 100일간의 챌린지
'그림책에서 첫 문장을 빌려오다' 
오늘은 [앙코르]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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