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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ul 26. 2023

얼굴에 피는 빨간 다알리아꽃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지음, 이억배 그림, 재미마주 




아주 아주 손이 큰 할머니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기만 하면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할머니입니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를 읽다 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도 무엇이든지 하기만 하면 엄청 엄청 많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늘 만두를 빚었다. 잘 익은 묵은지를 꺼내 썰고 두부와 돼지고기, 당면을 넣고 소를 만들었다.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엄마의 비법은 소를 만들 때 재료를 모두 익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봉지 형태로 나온 오뚜기 순후추를 넉넉히 넣고, 돼지고기 비계를 넣는 것이었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아주아주 손이 큰 할머니가 됐을 것 같다. 그림책에서 과장되게 묘사한 것처럼 다라이라고 부르는 큰 통에 한가득 소를 만들고 문을 열고 마을 밖으로 뻗어나갈 만큼 많은 반죽을 만들었으니까. 


주말에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탁탁 탁탁 김치 다지는 소리에서부터 반죽을 치대는 둔탁한 소리, 3구 가스레인지를 가득 채웠던 찜기의 보글보글 소리까지…. 머리를 질끈 묶은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만두 빚을 채비를 했다. 엄마가 적당히 숙성된 반죽을 동그랗게 밀어내면 나는 소를 넣고 만두를 빚었다. 빨리 만들려면 나뭇잎 모양으로 빚고, 적당히 속도를 조절해야 하면 넓적하게 빚은 만두의 양끝을 붙여 동그랗게 만들었다.

빚은 만두를 쪄서 식히는 동안 엄마는 만두를 통에 담아 한 해 동안 감사했던 사람들과 친구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만두를 나눠주기 위해 떠났다. 자전거 뒤에 만두를 몇 통이나 싣고 한껏 상기된 얼굴로 페달을 밟았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엄마에겐 아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엄마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는 만두를 찌고 식히고 얼리고 반죽을 밀어 또 만두를 만들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의 얼굴엔 만두를 받은 이들이 건넨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감사를 많이 받은 사람의 얼굴엔 빨간 다알리아 꽃이 핀다. 그런 엄마의 얼굴이 자꾸 보고 싶어 허리가 아파도 또 주저앉아 만두를 빚고 또 빚었다. 매워서 얼얼해진 입으로,


“엄마는 만두를 정말 잘 만드는 거 같아. 식당에서 사 먹는 것보다 더 맛있다니까.” 


라고 이야기하면서. 별다른 대꾸는 없었지만 엄마의 뒷모습은 춤을 추고 있었다. 


창문 틈으로 밀려 들어오는 바람에 몸이 웅크려진다. 길가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과 새파란 하늘이 가을이 왔음을 알려왔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김치통을 비워야지. 이모가 만들어준 묵은지를 썰고 엄마가 남겨준 비법으로 오랜만에 만두를 빚어야지. 만두 안에 사랑을 담고 정성을 넣어서 감사를 전해야겠다. 엄마의 얼굴에 피었던 빨간 다알리아 꽃이 내게도 피어나기를. 김치 다지는 소리, 반죽의 둔탁한 소리,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발끝에서도 우아한 춤사위가 그려지기를 바란다.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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