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사용법(1)
상담 치료를 하다 보면 꽤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말하는 것만으로 정말 좋아질 수 있나요?” 눈앞의 문제는 그대로인데, 제3의 공간에서 말을 주고받는 일이 실제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연역적 사고에 익숙한 이과생이었던 나는, 정신과 수련 2년 차가 될 때까지도 이 질문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오래전 물리화학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경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일부는 보이지 않는 파동의 영역에 속해 있고, 그 파동이 맞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결이 맞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흘려들었던 이 말이, 수련 후반부로 갈수록 자주 떠올랐다.
전공의 시절부터 전문의가 되어 종일 외래를 보는 지금까지, 면담실에 오래 머물다 보면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 있다. 환자가 들어오는 순간, 공기가 바뀐다는 사실이다. 어떤 환자는 가볍고, 어떤 환자는 묵직하며, 어떤 환자는 마치 공기가 빠져나간 진공처럼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공간인데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밀도를 갖는다.
정신과적 면담의 공간은 정신분석적으로 ‘장(field)’이라 불린다. 진료실 책상을 사이에 둔 환자와 치료자, 혹은 카우치에 누운 환자와 치료자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테이블이 하나 놓인다. 그 위에 환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우리는 그 주변을 서성이며 쉽게 결론 내리지 않은 채 함께 머문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이 표면을 지나 깊은 곳에 닿는 순간이 온다.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내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지점. 그때 공기가 미세하게 울린다. 나는 그 순간을 limbic linking이라 부른다. 이 공명을 경험한 환자들은 종종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말한다. “모르겠는데, 좀 괜찮아졌어요.” 치료자와의 공명이 마치 파도가 서핑보드를 밀어주듯, 환자는 다시 삶이라는 바다로 나아간다. 방향을 정해주지는 않지만, 다시 움직일 힘을 얻은 채로.
나는 이런 순간들이 좋다. 누군가의 가장 힘든 시간에 함께 머물러주고, 잠시 뒷배가 되어준 뒤, 내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순간. 정신과는 리뷰가 잘 남지 않는 진료과다. 어떤 편견 속에서는 잊고 싶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화려한 공치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조용히 기뻐할 수 있는 삶.
말로 하는 치료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함께,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문제보다 오래 삶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