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좋아지는 것 같지가 않아요."

정신과 사용법(2)

by 채영

어떤 면담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말은 오가지만 공기는 바뀌지 않고, 시간은 흐르지만 밀도는 생기지 않는다. 환자는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지만, 그 말은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순간에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 저는 말해도 좋아지는 것 같지가 않아요.”


상담 치료가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말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치료자가 미숙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말은 충분히 많고, 설명은 논리적이며, 이야기에는 빈틈이 없다. 그런데도 공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개 말 이전에 있다. 감정과 함께 머무를 수 없는 상태이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곧바로 결론으로 이동한다. 왜 그런지 분석하고, 의미를 붙이고, 다음 행동을 계획한다. 생각은 빠르지만, 느낌은 도착하기 전에 사라진다. 이 경우 면담은 대화가 아니라 보고가 되고, 치료는 토론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닿는 순간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너무 오래 기다려온 감정이거나, 너무 일찍 다쳐버린 기억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감정에 머문다는 것은 곧 무너진다는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말은 흐르지만, 마음은 자리를 비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삶 자체가 아직 안전하지 않다. 당장 견뎌야 할 현실이 너무 거칠고, 감정을 느끼기에는 하루가 너무 버겁다. 이때 치료실은 쉼의 공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과제가 된다. 머물기에는 아직 여유가 없는 상태다.


이럴 때 치료자는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해석을 미루고, 조언을 덜고,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포기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공명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환자에게 돌리지 않기 위해서,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억지로 두드리지 않기 위해서다.


공명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득한다고 생기지 않고, 설명한다고 깊어지지 않는다. 환자가 자신의 감정과 함께 머물 수 있을 만큼, 삶이 조금 덜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 허락된다. 그래서 어떤 치료는 시작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머물 수 없는 상태일 뿐이다. 말이 닿지 않았던 시간들은 실패가 아니라, 준비 이전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 역시 치료의 일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