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왜 듣기만 하세요?"

정신과 사용법(3)

by 채영

치료자는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말이 막혀 있을 때도, 감정이 닿지 않을 때도,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고, 결론을 앞당기지 않으며, 변화의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 이 태도는 때로 무능처럼, 혹은 방임처럼 오해받는다.


그러나 기다림은 치료의 공백이 아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은 왜 듣기만 하세요?” 이 질문에는 종종 실망과 불안이 함께 묻어 있다. 치료자가 뭔가를 해주길 바랐고, 방향을 제시해주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듣기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닿지 않은 말이 도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두는 선택이다. 상담실에서 가장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는, 환자의 불안을 치료자의 조급함으로 덮어버리는 일이다. 해석을 보태고, 의미를 붙이고, “이렇게 해보자”는 말로 장을 채운다. 순간은 편해진다. 대신 공명은 사라고, 감정은 더 깊이 숨는다.


기다림은 그 반대에 있다. 아직 말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아직 머물 수 없다는 상태를 문제로 만들지 않는 것. 치료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행위는 환자의 준비되지 않은 내면을 앞서 열어젖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은 아직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어떤 기억은 아직 꺼내 놓을 테이블이 없다.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치료자의 책임이다.


기다림은 신뢰를 전제한다. 환자가 언젠가는 자기 속도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 지금의 침묵과 무력감조차도 하나의 과정이라는 신뢰. 이 신뢰가 없으면, 치료는 곧 설득이 되고 개입이 된다. 치료자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지켜주는 사람에 가깝다. 말이 닿을 수 있는 밀도,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온도, 그리고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래서 우리는 기다린다.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알아기 위해서.


작가의 이전글"말해도 좋아지는 것 같지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