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숙성된 김치만큼이나 깊은 언어의 맛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은 남성을 가리키는 ‘총각’이라는 표현은 어느새 예스러운 말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아저씨’라 불리는 대상층의 폭이 예전보다 훨씬 더 넓어진 느낌입니다. 스무 살 남짓한 젊은 군인들도 으레 부대가 다르면 서로를 아저씨라 호칭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아저씨는 ‘부모와 같은 항렬에 있는, 아버지의 친형제를 제외한 남자를 이르는 말’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이 ‘결혼하지 않은, 아버지의 남동생을 이르는 말’입니다. 삼촌이나 당숙, 고모부나 이모부 쯤 되는 촌수의 어른들을 이르는 호칭에서 최근에는 ‘남남끼리에서 성인 남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확장된 것입니다.
총각이라는 호칭은 이제 사극이나 시대물에나 등장할 법한 사실상 죽은 언어가 되었지만, 총각무나 총각김치와 같은 변형으로 여전히 우리의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총각(總角)은 ‘거느릴 총(總)’과 ‘뿔 각(角)’으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머리카락을 모아 뿔처럼 묶다’라는 뜻입니다. 중국 고대 풍속에서 남자아이들은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 작은 뿔 모양으로 올렸는데, 그 모습을 가리켜 총각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뜻하는 한자어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풍습은 중국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대개 머리를 한 갈래로 땋아 길게 늘어뜨리고 끝에 댕기를 묶었습니다. 중국처럼 양쪽으로 뿔을 세우는 모습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혼을 한 뒤에야 비로소 외뿔 모양으로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게 되지요. 우리 풍습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실 상투를 튼 기혼자가 ‘총각’인 셈입니다.
그런데 총각무는 그 아담한 크기에 비해 잎이 유독 무성해 뿌리보다는 길게 뻗은 무청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아직 상투를 틀지 못한 채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젊은 총각의 머리 모양을 떠올렸던 모양입니다. 이런 무로 담근 김치를 ‘총각김치’라 부르게 된 것 또한 아주 자연스러운 언어적 귀결이겠지요.
먼 옛날 중국에서 어린 소년의 머리 모양을 가리키던 말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K-푸드의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총각이라는 단어가 시대와 풍속을 관통하며 이토록 풍성하게 확장된 걸 보면, 언어의 여정이란 오래 숙성된 김치만큼이나 깊은 맛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