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별것이 아닌 ‘소정의 절차’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소정의 상금’, ‘소정의 절차’, ‘소정의 상품’과 같은 표현을 관용어처럼 흔하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본래의 뜻과 다른 뉘앙스 차이로 엉뚱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때로는 불필요한 오해와 언쟁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언젠가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한 후보자가 “소정의 절차를 거쳤다”고 답하자, 한 의원이 그 표현을 문제 삼으며 “간단한 절차를 거쳤다는 뜻이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리고 후보자가 ‘소정의 절차’를 거칠 때, 일반인들은 ‘고난의 절차’를 거친다며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그러자 후보자는 ‘정해진 절차’를 다 거쳤는데 무슨 문제가 되냐며 지지 않고 받아치면서 일대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왜 이런 언쟁이 생겼을까요.
소정(所定)은 ‘바 소(所)’와 ‘정할 정(定)’으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정해 놓은 바’,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고 적음의 의미는 애초에 들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발음이 같은 작을 소(小), 적을 소(少)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우리는 무의식 중에 ‘소정’을 ‘약간의’, ‘대단하지 않은’ 정도의 뉘앙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행사 안내문에 ‘참가자 전원에게 소정의 기념품을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으면, 왠지 큰 선물은 아닐 것이라 짐작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오해와 착각에서 빚어진 뉘앙스가 우선할 때, 우리의 말은 엉뚱한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민감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정의 절차’가 규정에 따른 모든 과정을 거쳤다는 뜻인지, 형식적으로 최소한의 절차만 밟았다는 뜻인지에 따라 책임의 무게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자리에 따라 이렇듯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기도 합니다. ‘소정의 절차’는 결코 ‘별것 아닌 것’일 수 없습니다. ‘정해진 바’가 무시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될 때에는 반드시 파국과 갈등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