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운명의 ‘강요된 머무름’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처녀는 ‘결혼하지 아니한 성년 여자’를 이르는 말입니다. 고유어인 아가씨 또한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총각과 마찬가지로 처녀와 아가씨 또한 일상에서 사용하는 빈도가 점점 줄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아저씨와는 대조적입니다. 한동안 ‘미스(Miss)’라는 외래어가 이 자리를 대신하다가 요즘에는 남녀 상관없이 ‘싱글(single)’이라는 표현이 가장 일반적인 듯합니다. 이혼이 흔해지면서 다시 싱글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은 ‘돌싱’이라는 신조어 또한 우리의 일상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처녀라는 단어가 점점 화석화되는 건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녀(處女)는 ‘머무를 처(處)’와 ‘계집 녀(女)’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풀면 ‘(제)자리에 머무는 여자’라는 뜻이 됩니다.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 아니라, ‘그대로 놓여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처녀라는 단어를 단지 ‘미혼 여성’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아직 성경험이 없는 여성’이라는 뜻의 은어처럼 사용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도 아니고, 그저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는 언어에 가깝습니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해 있던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처녀는 여성이 혼인이라는 제도를 통과하기 이전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근대화 이전의 혼인은 사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관통하는 통과의례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이 말은 점차 ‘순결’이라는 도덕적 가치와 연결되었습니다. ‘처녀성’이라는 표현이 생기고, 성적 순결을 ‘처녀로서 지니고 있는 특성’으로 정의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던 것입니다.
유감스러운 점은 이러한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일상에서 아주 널리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처녀작’, ‘처녀 출전’, ‘처녀 비행’ 같은 표현에서 처녀는 더 이상 여성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최초의 상태를 뜻하는 말로 확장됩니다. 이제는 순결의 문제가 아니라, ‘처음’과 ‘미경험’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세월의 깊이 속에서 언어는 이렇듯 의미의 확장과 축소를 거듭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사회적 규범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단지 젊은 여성의 결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신은 처녀입니까?”라고 묻는 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아가씨라는 표현조차 젊은 접대부 등을 이르는 말로 변질되면서 의도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함부로 쓰기가 망설여지게 되었습니다. 처녀라는 말 속에 담긴 머무름의 뜻은 결코 자발적일 수 없습니다. 사회적 강요는 폭력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언어 속에 담긴 폭력의 의미는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