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람들로 빼곡한 지하철 안에서 모두가 한결같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가운데 조용히 종이책을 펼쳐 읽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느 사이 출퇴근길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종이책을 펼쳐 읽는 풍경은 ‘신기한 장면’이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격년으로 실시하는 ‘독서 실태조사’의 최근 데이터를 보면 이런 상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인 독서율은 지난 10년 사이 반토막이 났고, 열 명 중 여섯 명 정도는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이미 5시간을 넘겼고 이에 반해 평균 독서시간은 평일 기준 고작 10분 남짓이라고 한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독서 단절’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써도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우리 일상에서 책이 차지하던 공간을 디지털 콘텐츠와 미디어가 점점 더 넓고 깊게 차지하고 있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같은 절묘한 교집합이 있기도 하지만, 이미 언급한 독서율 안에 포함된 수치일 뿐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AI를 비롯한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모바일 기술은 일상의 모든 영역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방대한 디지털 콘텐츠와 마주친다. 유튜브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핵심을 전달하고, 짧은 릴스나 쇼츠는 단 몇 초 만에 자극적인 내용을 연이어 재생하며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 둔다. 이제는 독서가 ‘시간 대비 효율이 낮은 선택지’라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MZ세대를 비롯한 오늘날의 직장인 대부분은 무려 20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아주 잘 짜인 형식교육의 틀 안에서 독서를 ‘교육’ 받아왔다. 독서 활동이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시의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도 초중고 학생들의 독서율은 무려 96%에 이른다. 이 지점에서 생기는 의문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어른이 되면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그나마 학창 시절 독서교육의 효과가 미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까닭인지 기업교육 현장을 비롯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독서의 기능이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을 호소하는 사람은 흔하다.
결국 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학창 시절의 독서 경험이 온전히 습관화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나는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읽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 가정은 점점 더 확신으로 굳어졌다.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수십 년 동안 내 곁을 스쳐 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독서경영’이란 일반적으로 독서를 기업 경영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하여, 조직과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성과를 높이고자 하는 전략적 경영 방식을 이른다. 결국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통찰을 업무에 적용하고, 조직 문화 속에 적극적으로 접목시키는 지속 가능한 학습 시스템이자 성장 촉진 장치인 셈이다.
회사 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된 이후, 나 역시 자연스럽게 나만의 독서경영을 조직 안에 실천해 보고자 부지런히 노력했던 기억이 새롭다. 업무와 관련된 책을 팀원들과 나누어 읽고 북세미나를 운영하며 이들에게 종종 책을 선물로 건네기도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마치 논문을 준비하듯 온갖 문헌과 사례를 검토하고 책을 찾아 읽는 일이 일상화되었고, 이러한 준비 과정은 곧 더 나은 기획과 실행을 위한 튼튼한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뜻대로 흘러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실무에 치인 팀원들에게 독서는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자리하기도 했고, “지금 여유가 없는데, 굳이......”라는 말이 돌아오기도 했다. 책을 나누어 읽고 토론하는 자리가 처음에는 흥미롭다가도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제’처럼 변해버리는 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읽는 행위’가 즉각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나 스스로 새삼 독서의 효용과 필요성을 의심한 적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독서경영 우수 직장 인증제’를 통해 2014년 이후 지금까지 252곳에 이르는 기업과 기관이 인증을 받을 만큼 독서경영은 점차 우리 사회에 안착하고 있다. 실제로 현장을 찾아가 보면 기대 이상으로 독서 문화가 잘 내재화된 조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나의 경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직장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결코 낯설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풍경은 과거 학창시절의 독서교육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우선 개인의 독서 목표나 동기가 분명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독서 강요’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독서 실적을 증명하기 위해 자칫 ‘보여주기식’의 형식적인 활동이 반복되면서, 독서가 그저 부담스러운 과제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읽는 행위가 일정 기준을 채우기 위한 숙제처럼 여겨지는 순간, 독서는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잃게 되고 오히려 책과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독서가 업무 실적을 위한 역량 개발의 수단으로 국한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학창시절의 독서가 학업 성취와 진학의 도구로 인식되며 온전한 습관으로 자리 잡지 못했던 한계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자기독서경영(Self-Directed Reading Management)’이다. 이는 앞에서 소개한 ‘독서경영’과 ‘자기경영’의 통합적 확장 개념이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자기경영’은 말 그대로 개인이 스스로를 CEO처럼 경영하는 능력이다. 자신의 목표와 가치관을 기준으로 삶을 새롭게 설계하고, 성찰과 학습을 반복하는 지속가능한 자기 성장의 핵심 역량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주도성’일 것이다.
또한 ‘자기독서경영’은 회사 생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자신의 역량과 목표에 기반해 무엇을, 왜, 어떻게 읽을지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하며, 그 결과를 삶의 변화로 연결하는 실천 방식이다. 궁극적으로는 온전한 독서 습관의 정착을 지향한다. 결국 자기경영이 그러하듯 독서 또한 외부의 강요나 지시에 의한 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고 운영하는 ‘경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