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로 배우는 대화가 필요한가?
“저는 요즘에 구성원들과 부딪히는 것이 싫어서, AI와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얼마 전 한 조직의 워크숍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우리는 많은 업무에서 1차적인 피드백을 인공지능(AI)에게 받고 있습니다. 보고서의 구조나 문장의 논리성, 오탈자, 정량적 오류 같은 것들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검토해 줍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사람 간의 피드백,
즉 서로 배우는 대화는 여전히 필요한 걸까요?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네, 필요합니다. 오히려 더 절실 해 졌습니다.”
첫째, 정서와 맥락은 오직 사람만이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는 정확한 평가와 교정을 해줍니다. 문장의 구조, 논리의 비약, 수치의 오류까지도 잘 잡아냅니다. 하지만 그 발표가 ‘처음으로 혼자 기획한 시도’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그 안의 용기를 알아봐 주는 말은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 발표자료 괜찮았어.” ← AI도 할 수 있는 말
“그 발표는 네가 처음 주도한 기획이었잖아. 나는 그 용기 있는 시도를 인정하고 싶어.”
← 관계, 기억, 정서가 담긴 말
우리가 진짜 듣고 싶은 피드백은,
‘잘했다’는 평가보다 ‘지켜보며 순간순간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말에는 나의 맥락과 오늘의 감정, 우리 사이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정보가 아니라 ‘공동의 기대’를 통해 배웁니다.
피드백은 가끔, 방향을 알려주는 지도가 되기도 하지만
더 자주, 함께 길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됩니다.
AI는 예측은 할 수 있어도,
함께 기대하는 마음은 가질 수 없습니다.
“다음에는 이걸 시도해 보면 좋겠어.”
“이제 더 큰 프로젝트도 맡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당신에게 가능성이 있어요’라는 초대입니다.
이것이 바로 피드백이 정답의 기술이 아니라,
기대의 언어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셋째, 심리적 안전감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하버드대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은
두려움 없는 조직 (다산북스, 2019)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은 학습이 일어나는 조직의 핵심 조건이다.”
AI는 더 나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지만,
“이건 당신을 도우려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에요”
라는 뉘앙스까지 전달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 뉘앙스에서 마음을 엽니다.
나를 돕고 싶은 말인지 아닌지,
이 사람이 나를 믿고 있는지 아닌지,
사람은 그것을 말의 ‘텍스트’가 아닌, 말의 ‘기운’에서 느낍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 진짜 배움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사람이 서로에게 말해야 할 때입니다. 정확한 정보와 기술적 교정은 AI가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를 인정하고, 가능성을 믿어주는 말은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피드백은,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를 응원하고 있어",
"함께 해보자는 마음이야",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을 전하는 일입니다. AI가 못하는 말. 그 말로 우리는 서로 배우는 대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서로 배우는 대화』는 바로 그 말을 회복하려는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