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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Feb 15. 2019

그녀의 매력은 뒷모습이 아니었다.

그 시절 물랭루즈가 사랑한 소녀

10년 전쯤 방영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부잣집 도련님들과 흙수저 출신의 재기 발랄한 여주인공 금잔디와의 사랑이야기다. 재벌그룹 후계자, 전직 대통령 손자, 예술 명문가 차남, 건설회사 후계자인 청년 네 명이 F4라는 이름으로 몰려다니며 일종의 재벌 2세 놀이(?)를 하던 중 특별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평범한 여학생 금잔디를 가운데 놓고 만들어가는 로맨틱 코미디다. F4는 모두 여주인공 금잔디에게 정도는 다르지만 호감을 보이고, 특히 F4의 리더 격인 재벌그룹 후계자 구준표와 전직 대통령 손자 윤지후는 꽤 심각한 연적관계가 된다.


금잔디! 그녀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던 것일까? 남자들이 생각하는 여자의 매력과 여자가 생각하는 여자의 매력은 다르다고 하던데, 그 쟁쟁한 F4 모두가 빠져들만한 그 무엇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살아가는데 바빴던 나는 결국 그 궁금증을 풀지 못했고, 아무리 F4가 노력해봤자 결국 금잔디는 안재현이라는 3살 어린 꽃미남과 결혼하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그들 속의 사랑 역학 풀기를 포기한 나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냈다.


여기 4점의 그림이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자를 그렸다", "초상화다", "컬러다" 이런 대답을 하려 했다면 그냥 스크롤 내리고 다음 문장으로 가시라.



뭐 좀 심술궂게 굴었던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글을 읽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이 네 점의 그림은 모두 한 명의 모델을 그린 것이다. 첫 번째 작품은 내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모딜리아니가 그렸고, 두 번째 작품은 비운의 천재인 툴루즈 로트렉이, 세 번째 작품은 한국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구두의 브랜드 네임으로까지 알려진 르누아르, 마지막 작품은 우리에게 조금 낯선 화가 장 외젠 클라리가 그렸다.


그 시절, 물랭루주의 화가들이 사랑했던 소녀 두둥!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9.23 ~ 1938.4.7)이다.(빠르게 타이핑하다가 수잔 발라당이라고 치고선 혼자서 킥킥거렸다.)


1865에 금잔디보다 더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당시 프랑스에서 알아주던 벽화가 피비 드 샤반(1824~1898)의 눈에 띄어 모델의 길로 들어선다. 샤반의 모델이자 하녀, 연인으로 살던 수잔은 샤반의 동료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며 어깨 넘어 다양한 회화 작법을 익히게 된다.

수잔의 경우 "어깨 넘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은 그녀가 모델이 된 작품 중 유난히 뒷모습을 그린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문득 깨달음, 아! 매력이란 뒷모습에 있는 것일까? 나도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나은데....)


첫번, 두번째는 르누아르가 그린 수잔의 뒷모습, 세번째는 로트렉이 그린 수잔의 뒷모습, 네번재는 드가가 그린 수잔의 뒷모습


강렬한 매력으로 많은 화가들이 너도 나도 화폭에 담고 싶어하던 수잔은 특히 르누아르의 그림에 많이 등장한다. 당시 르누아르는 약혼녀가 있었는데 수잔과의 관계를 매우 시기했고, 결국엔 르누아르를 떠난다. 그러나 르누아르의 아이를 낳았고 시간이 흘러 결혼하게 되지만 르누아르가 수잔을 향해 가졌던 애틋함은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남이 있다.


그녀의 나이 열 여덟살에 자신의 처지와 똑같은 사생아 아들을 낳는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화가의 꿈을 키워나가던 수잔은 당시 부유한 화가 로트렉으로부터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게 된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로트렉은 어린 시절의 우연한 사고로 양쪽 허벅지 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신장 152cm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비운의 천재 화가다. 수잔에게 에드가 드가를 소개해 정식으로 그림을 배울 수 있게 해 주고, 여러 가지 지원을 통해 그녀가 화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왼쪽: 수잔 발라동과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  / 오른쪽: 아들의 친구이자 두 번째 남편인 앙드레 우터와 아들 모리스(콧수염)와 함께 있는 수잔 발라동


인상주의가 막 태동한 그 시절, 여성이 화가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화가들이 폭발적으로 탄생하던 시점임에도 우리에게 알려진 화가는 베르트 모리조, 매리 캐셋. 수잔 발라동 정도다. 그나마 그들도 마네와(모리조), 혹은 드가와(캐셋) 묘하게 엮어 스토리를 만들어 전해졌다.


여성이 화가가 된다 해도 그들이 그릴 수 있는 건 풍경이나 정물, 남자를 모델로 하려면 가족이나 가능했다. 인물화는 남성 화가들의 전유물이었고 그들이 그린 여성의 누드는 남성 화가 혹은 관람자들의 탐미적 시선을 담기 마련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수잔은 여성의 관점으로 여성의 누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신의 누드를!


그녀가 그린 자화상은 르누아르의 그림 속 사랑스러운 수잔도, 로트렉의 그림 속 삶에 지친 수잔도, 드가의 그림 속 에로틱한 수잔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삶과 맞짱 뜬 당당하고 매력적인 수잔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소름~~)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수잔은 주식 중개인과 결혼하며 처음으로 부유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13년간의 결혼을 정리하고 두 번째로 결혼하는데 자신이 열여덟에 낳았던 아들의 친구인 화가 앙드레 우터였다.


화가들의 뮤즈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료로 인정받은 수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순응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짱 뜬 그녀의 용기는 어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매력 중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것이 아닐까?


아! 그러고 보니 금잔디의 매력은 구준표를 향해 날라 돌려차기 하던 그 순간이었겠구나.


10년 만의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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