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말아요, 잠시 안녕이니까

by 이수정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제 머릿속에 떠다니던 것은

빨갛게 부푼 당신의 눈과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당신의 입술이었습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당신의 그 얼굴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내 눈을 시리게 만들었습니다.


준비할 겨를도 없이 찾아온 헤어짐은 인생을 살아가며 제법 겪게 되는 일이지만

내 존재의 근원이 되는 부모를 잃는 일이란 그 어떤 헤어짐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어머니, 내 기억에선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하신 분입니다.

영정사진 속에서 마냥 웃고 계신 그 모습 그대로 소녀 같은, 당신에겐 친구 같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의 상심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당신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당신이 겪을 아픔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이 하도 먹먹하여

얼른 그 상처 위에 새 살이 돋아 꿋꿋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의 부모는 떠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떠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슬픔을 우리의 아이들도 느끼게 되겠지요.


그러나 헤어짐은 우리의 삶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가슴 절절한 헤어짐의 상처는 또 다른 탄생을 통해 아물어가고

또 다른 탄생이란 먼저 태어난 누군가와 헤어져야 하는 숙명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박성룡 시인의 <어느 삼거리에서>를 읽으며 저는 시인처럼 매일 조금씩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어느 삼거리에서 - 박성룡

고단한 출근길
아침마다 대문을 나서노라면
어린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앞을 다퉈 따라나서며 동행을 강요한다.
어떤 날은 묵직한 딸아이의 책가방을 들어다 주기도 하고,
어떤 날 아침에는 또
아들 녀석의 신주머니를 들어다 주기도 하지만,
어떻든 우리들은 오래지 않아 서로 헤어져야 할
삼거리에 이르고 만다.

그런데 웬일일까, 아침마다 그들에게 동전 몇 닢씩을
쥐어주고 난 다음의 나의 가슴은 왜 그리 허전한지.
왜 그리 자꾸 서글퍼만 지는지.
오래지 않아 저녁이면 다시 서로 합류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이 조그만 헤어짐이 못내
섭섭해만 지는 것이다.

언젠가는 꼭 한번 우리 앞에
아주 헤어져야 할 삼거리가 놓이고야 말 것이기에
나는 아침마다 미리미리 조금씩 울어둬야 하는 것일까.
그날은 기어이 터지고야 말 홍수 같은 그 울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미리미리 조금씩 울어두는 것일까.
그러나 어린것들의 얼굴과 가슴속에는
언제나 훤한 아침햇살만 가득하다.



매일 조금씩 헤어짐에 다가가는 우리.

우리가 남기고 가는 그들이 이렇게 마음 아프지 않도록

조금씩 조금씩 헤어짐을 연습합니다.


우리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도

우리가 남기고 떠날 사람도

이 곳에서 잠시 함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그 행복감으로 남은 생을 버틸 수 있기를


당신과 나도 언젠가는 헤어지겠지요.

한 두 달 만에 만나서 또 한 두 주 후에 만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늘 헤어짐은 가슴 아픈데,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음에도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어서 애절한 마음 가득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 우리는 아주 헤어지겠지요.


우리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갑시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진 후 남은 사람은 쌓아놓은 기억 하나둘씩 조심스레 꺼내며 미소 지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갑시다. 아니 살아냅시다.


우리 서로에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하지 않음'을 깨쳐주며 살아갑시다.


당신의 어머니,

내 인생의 첫사랑을 세상에 존재하게 해 주신 그분...

오랫동안 마음속에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한 줌 재로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와 지실 때까지만 우십시오.

어미와 자식의 인연으로 이곳에 함께 살았음에 감사하고

어머니 바라시는 데로 강건하게 꿋꿋하게 살아내십시오.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던 자유로의 검은 하늘 위에 유독 반짝이는 별 하나가 제게 말했습니다.


"슬퍼말아요. 우리 잠시 동안... 안녕...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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