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지기 친구와 막걸리를 마셨다
한 달만에 친구를 만났다. 우린 33년간 친구였다. 물론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서로의 첫사랑을 알고, 미숙했지만 뜨거웠던 어린날을 함께 했고, 서로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으며 사실 둘 만의 비밀인데 한 남자를 동시에 좋아하기도 했었다.
서로의 10대와 20대, 30대, 40대 그리고 50대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목격해 온 우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어쩜 넌 옛날 그대로니?"
"맞아! 너 그랬었어... 천하의 네가 당연히 그랬겠지"
내가 생각하기에 난 삶과 적당히 타협해 노회 한 것 같은데 친구는 나의 원래 모습을 일깨우고 다독이고 지지한다. 어느새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이야기 잔치를 벌인다. 급격히 시간을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 심지어 이젠 하고싶은 말의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머뭇머뭇할때면 서로가 대신 그 단어를 찾아 이야기해주고 그제서야 "맞아, 맞아~ 그거야"라며 서로의 독심술 능력에 감탄한다.
연남동의 작은 술집에 앉아 빈대떡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바로 직전에 먹었던 파스타와 리소토 때문에 부른 배를 두드리며 또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애틋하고 곤궁했던 서로의 신혼 시절을 떠올리며 감사의 건배를 했다.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는 튜브에 담긴 명란 페이스트와 고농축 앰플 마스크 시트, 영양크림을 내민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친구가 건네준 선물들은 바쁜 시간 수고롭게 나를 떠올리며 챙겼을 그 마음을 생각하게 해 기분을 노글노글하게 만든다. 따뜻한 햇살 아래 눈을 감고 해바라기 하고 있을 때의 그런 느낌이다.
빈대떡 한 점에 양파 장아찌를 하나 얹어서 먹는다. 고소한 녹두의 까슬거림과 다져 넣은 김치의 식감이 아삭하다. 돼지고기는 양파 장아찌 덕분에 냄새 없이 쫄깃하다. 하긴 우리의 이야기만큼 맛있는 안주가 있을까... 빈대떡은 애저녁에 동이 났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르고 막걸리 한 통이 비워졌을 무렵 한 병을 더 주문할까 고민했지만 우리는 과감하게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다. 늘어나는 허릿살 걱정 때문이었다.
술집을 나와 전철역으로 나가는 길인 연트럴 파크에는 젊은 연인들이 넘쳐났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동네에 그 당시 우리와 같은 젊은 이들이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을 보며 우리는 "너무 이쁘다"를 연발한다.
그러나 너는 안다.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너는 상냥하고 어리고 뜨거운 청춘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도 안다. 너의 눈동자에 비친 나는 서툴고 여리고 푸르른 청춘이라는 것을.
친구야! 우리 오늘 하루도 열심히 잘 살았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