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노트> 함민복 "옥탑방"
<필사노트> 함민복 "옥탑방"
눈이 내렸다
건물 옥상을 쓸었다
아파트 벼랑에 몸 던진 어느 실직 가장이 떠올랐다
결국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
24평 벼랑의 집에 살기 위해
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좀더 튼튼한 벼랑에 취직하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 가고 가다가
속도의 벼랑인 길 위에서 굴러 떨어져 죽기도 하며
입지적으로 벼랑을 일으켜 세운
몇몇 사람들의 희망이 되기도 하는
이 도시의 건물들은 지붕이 없다
사각 단면으로 잘려 나간 것 같은
머리가 없는
벼랑으로 완성된
옥상에서
초혼(招魂)하듯
흔들리는 언 빨래소리
덜그럭 덜그럭
들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