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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4. 2019

지금 불안한 당신에게 뭉크가 건네는 위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무엇일까요? 다빈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은데요. 한국사람들에게 모나리자만큼이나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절규> 에드바르 뭉크, 1910년, Tempera on board, 83.5 x 66cm, 뭉크미술관

바로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얼굴을 움켜쥐고 놀라고 있는 사람이 붉은 노을 앞에 서있는 그림.


  우리가 알고 있는 뭉크의 작품은 대부분 암울하고 괴이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는 화가가 그린 그림을 통해 화가의 심리를 추측하곤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우리는 뭉크가 매우 불안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을 거라 추측하게 됩니다. 실제로도 뭉크는 생애의 대부분을 외롭고 불안하게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를 폐렴으로 잃었고, 이후 남동생도 같은 병으로 죽었으며 여동생은 정신병을 앓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정신적 혼란을 겪었고 그런 혼란은 병적인 공포감으로 발전해갔습니다. 그럴수록 그는 그 내면을 화폭에 담는 것에 집중을 다했습니다.



  자신의 내면적인 공포와 혼란 상태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그의 나이 서른에 그렸던 ‘절규’라는 작품인데요 뭉크는 후에 “나의 아버지는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이었다. 그런 아버지로부터 나는 광기의 씨앗을 물려받았다. 공포, 슬픔, 그리고 죽음의 천사는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나의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인류의 가장 두려운 두 가지를 물려받았는데 그것은 병약함과 정신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뭉크는 23살에 만난 자신의 후원자 프리츠 탈로의 부인인 밀로 타로에게 순정적인 사랑을 바치지만 그녀는 매우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기질의 여인이었고 26살 무렵 파리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뭉크는 끝없는 의심과 질투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후 34살에 만난 툴라 라르센이란 여성은 뭉크에게 집요하게 결혼을 재촉했는데요, 그가 결혼을 거부하자 그녀는 자살 소동을 벌입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 총알이 뭉크에게 발사되었고, 결국 뭉크는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잃게 됩니다. 가뜩이나 심리적으로 병약하고 두려움이 많았던 뭉크는 여성 혐오가 심해지며 [살인녀],  [마라의 죽음] 같은 섬뜩한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그에게 여성이란 마돈나이자, 메두사의 얼굴을 뒤에 숨긴 그런 존재로 비칩니다.
                         

(좌) 살인녀(1906) (우) 마라의 죽음 (1907)


  뭉크는 절규라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요? 2004년 미국 텍사스주립대의 천문학자 도널드 올슨 교수 1883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 섬의 화산 폭발에 의한 대기의 변화가 이렇게 붉고 짙은 노을을 만든 것이며, 그 하늘을 뭉크가 그렸을 거다 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과학자 헬렌 무리 교수는 뭉크의 절규에서 표현된 하늘은 일명 ‘진주 모운’ 즉 추운 날씨의 높은 고도 지역에서 일몰이나 일출시간과 맞물려 나타나는 구름이라고 발표하며 19세기 말에 나타난 '세기말적 현상'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나타나 예술가들의 창작욕을 자극하였고, 뭉크 또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동시에 세기말을 맞이한 현대인들의 불안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뭉크의 절규는 그 유명세와 더불어 많은 연구와 해석이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뭉크가 인생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겪기 시작한 거대한 아픔에 자신을 그저 내맡긴 채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그림 아니었을까요?



  아무튼 뭉크가 절규라는 작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착이 있었는지는 자기 스스로 변형시킨 작품의 수가 50종이 넘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 잠재의식에 관한 관심, 자아에 대한 발견은 뭉크가 평생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주제들입니다. 유화 약 1,100여 점, 판화 약 18,000여 점, 드로잉과 수채화 약 4,500여 점, 조각 6점, 그리고 92권의 스케치북과 편지, 수많은 석판 원본 등 엄청난 양의 작품과 자료들을 남겼습니다. 뭉크는 “나의 그림은 곧 나의 일기”라고 말했습니다. 즉 뭉크는 그 그림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과 공포를 드러내고 직면하여 스스로를 치유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감정인 즐거움, 고요함, 평온함, 자부심, 경외감, 사랑 같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화, 공포, 분노, 혐오, 우울,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이야 워낙 다양하겠지만 많은 경우 두려움에서 기인하기도 합니다. 만약 두려움의 감정이 인류의 조상들에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면 인류는 멸종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측면에서 두려움은 생존에 있어 긍정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여러 가지 대비책들을 만들었고, 결국 인간을 유지시켜 왔던 거죠. 그러니 현대의 인간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활성화된 두려움의 감정이 유전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하며, 자아를 목표한 곳으로 보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뇌가 무의식적 두려움의 상태에 있는 경우 항상 부정적인 일을 과장되게 기대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일을 찾는데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는 거죠. 그럼 두려움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와 잠시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 처음엔 그저 바쁜가 보다 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생각이 생각을 물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혹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이 이제 나를 싫어하는 걸까? 이런 불안감은 결국 연락이 안 되도록 방치해놓은 상대를 향한 분노로 발전하게 됩니다. 일단 이런 감정의 상태로 접어들게 되면 부정적인 상황을 수집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게 되고 그 모든 상황은 과장되어 사실인 양 확신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분노, 우울, 공포, 불안 등의 가장 바닥에는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는 것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두려움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난기류를 만나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린다고 생각해 보죠.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 듭니까? 불안한 마음이죠. 이런 불안한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됩니다. 누군가는 의자의 꽉 잡고 잔뜩 긴장하며 마음을 조리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화를 내면서 비행기를 왜 이따위로 운전하냐고 화를 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은 흔들리는 비행기의 상황 속에서 쓸데없이 힘을 빼거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그저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기는 겁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기인한 분노를 참거나, 표출하거나 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유효한 세 번째 방법은 그냥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놓아버린다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관한 것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다른 존재에게 내맡겨야 할 영역을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상황 속에 그저 자신을 가만히 놓아두는 것입니다.

   뭉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릴 적부터 목격한 죽음과 상실, 성인이 되며 겪었던 거부와 신체적 손상 등에서 발생한 공포를 피하지도 않았고 분노로 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든 고백 같은 일기는 그림으로 그려졌고 그 그림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하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뭉크의 일생을 바라보며 저는 라인홀트 니버의 평온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저는 무언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 감정을 발생시킨 두려움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평온의 기도를 통해 두려움을 피하지도 맞서지도 않으며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단박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예전에 비해 그 두려움이 불러오는 집요한 반추 의식과 허구의 부정적 결과로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좀 줄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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