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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20. 2020

성 세바스챤과 흑사병

1일 1글 시즌4  [episode 52]

유럽의 미술관을 다녀보면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 기둥에 묶여 있는 남자의 누드화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려진 시기나 화가의 화풍의 따라 모습의 차이는 있지만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인이자 순교자인 성(聖) 세바스티아누스(St. Sebastian)다. 


  St. sebastian 을 구글링 해보았다. 수많은 화가들이 성 세바스찬을 그렸다. 


성 세바스찬은 3세기경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친위대원이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감옥에 갇힌 기독교인을 돕다가 발각된다. 왕은 그를 기둥에 묶고 화살을 쏘아 죽이라 명한다. 죽은 줄 알았던 그는 우연히 한 여인에게 발견되어 극적으로 살아나게 되고 다시 황제의 기독교 박해를 비판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순교하고 천년이 지난 14세기 후반 유럽에는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린 그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왜 앞다투어 그를 그렸을까? 그 이유는 바로 흑사병 때문이다.


단기간에 수천만 명을 사망케 하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은 페스트균을 가진 쥐벼룩이 사람을 물어서 전파하는 감염병이다. 당시 무역에 의한 나라간 잦은 왕래와 도시의 비위생적인 환경이 흑사병의 빠른 확산에 불을 붙였다. 


발병 원인을 몰랐던 사람들은 부패한 공기가 병을 옮기는 매개라 생각해 오염된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애썼다. 배설물을 담은 자루를 목에 걸거나 소변으로 목욕을 하며 그 악취로 오염된 공기를 차단 하려했고 새의 머리 모양을 한 가면을 만들어 새의 부리엔 각종 약초를 넣어 부패된 공기를 맡지 않도록 했다. 보기만 해도 전염될 수 있다는 말에 가면의 눈엔 수정구슬을 달았다. 


치료를 위해 염증부위에 거머리를 붙여 오염된 피를 다량으로 뽑아내거나 방 한가운데에 우유나 양파를 놓아 공기를 정화시켰다. 창문을 열지도 않았으며 씻지도 않았다. 신을 감동시키기 위해 쇳덩이가 달린 채찍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도 흑사병이 수그러들지 않자 격노한 신이 타락한 인류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세상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하건 악하건 그 화살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니 천년 전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았던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들의 수호성인으로 삼아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 한 것이다. 


극한의 공포로 무너진 유럽인들은 신에게 순종하며 기도하다 죽어가거나 공포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필요로 했다. 당시 흑사병의 피해기 적었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는데, 외출에서 돌아오면 모든 먼지를 털어내고, 기도 전에 온몸을 닦으라는 율법이 개인위생관리과 방역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분노의 대상으로 유대인들을 선택했고 그들이 식수에 독을 풀어 흑사병이 생겼다는 소문을 만들어냈다. 많은 유대인들은 흑사병의 주범으로 화형에 처해진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흑사병은 전염병이 지나간 도시가 불에 탄 후 목재 건물이 석재건물로 바뀌고, 하수구 정비를 통한 위생 개선으로 점차 수그러들게 된다. 


발병의 원인을 몰랐고 개인 및 공중위생이 열악했으며 도시간의 잦은 왕래 등 흑사병이 거대한 팬더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 많지만, 공포심으로 무너져 내린 대중의 심리는 그 피해를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했던 것이다. 


*건설경제신문 기고문을 재 편집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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