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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1. 2020

예술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은 의미있는가?

1일 1글 시즌4  [episode 43]

2014년 개봉한 영화 ‘모뉴먼츠 맨(The Monuments Men)’은 2차 세계대전당시 활동했던 특별부대의 이야기다. 그들의 특별 임무는 다름아닌 전쟁의 피해로 부터 수도원과 같은 문화재를 보호하는 일. 또한 나치가 약탈해간 예술작품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모뉴먼츠 맨의 정식명칭은 MFAA(The 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section)로 기념물, 미술품, 기록물 전담반이다


박물관장, 예술가, 건축가, 큐레이터, 미술사학자 등 13개국에서 모인 전문가 350명으로 구성된 모뉴먼츠맨은 목숨을 걸고 전장의 최전선으로 뛰어들어 히틀러와 나치로 부터 약탈당한 예술품을 찾아낸다.


독일 메르케르스 소금광산에는 50억 달러의 가치에 달하는 프러시아 국립미술관 작품이 숨겨져있었고 오스트리아 알타우세 소금광산에서는 반에이크 형제의 ‘겐트 제단화’, 미켈란젤로가 살아 있을 때 유일하게 이탈리아 밖으로 반출된 벨기에 브뤼헤의 ‘성모자상’등 10만여점이 넘는 보물들이 숨겨져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소금광산에서 작품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몇 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예술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에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 프랭크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는 영화 속 프랭크의 대사로 대답한다.  


“한 세대를 완전히 말살하고 집들을 불태워도 국가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지만 그들의 역사와 유산을 파괴한다면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지. 히틀러가 노리는 게 바로 그거야,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 돼”


7년간에 걸친 그들의 노력 덕분에 역사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500만여점의 예술품 및 기념물들을 세계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살아남은 예술작품들이 우리를 감동케하는 이유는 작품 스스로가 가진 예술성과 역사적 의미때문이지만  지금 우리앞에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왔던 수많은 희생과 노력이 더해져 그 아우라가 더 강력해졌기 때문일것이다.


1945년 오스트리아 소금광산에서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과 겐트 재단화를 발견하고 운반하는 모습



모뉴멘츠 맨의 작전 덕분에 목숨을 살린 작품들 중 ‘신비한 어린양에 대한 경배’로 불리는 겐트 성당 재단화는 플랑드르 회화 중 손꼽히는 불후의 명작으로 15세기 유럽미술의 초석이 된 작품이다.


신비한 어린 양에 대한 경배(겐트 제단화) / 얀 반 에이크 / 1432 / 목판에 유채물감 / 350×461㎝ (펼쳤을 때) / 성 바보(St. Bavo) 대성당(겐트, 벨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가지고 있던 겐트 재단화의 샘플로 패널이 어떻게 접히는지 시연해 보았다



제단화란 기독교 교회의 제단 위나 뒤에 설치하는 그림이나 조각,  장식 가리개를 말한다. 장식이 금지되던 신성한 장소였던 제단은 10세기에 접어들면 성인들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교회의 수호성인이나 성경속의 여러 사건들을 그린 목재 제단화는 14세기로 접어들며 보편화된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프로테스탄트들은 제단화를 우상숭배로 여겨 성상파괴운동을 일으켰다. 이에 로마가톨릭은 잃어버렸던 권위를 회복하고자 반종교개혁 운동을 벌인다. 성인들의 극적인 순교 장면등을 담은 제단화는 신도들의 신앙심 회복을 촉구하기 위한 제단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제단화는 예배중에 신도들이 항상 집중할 수 있는 시각적 도구이자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을 재현하는 의식인 성체 성별식을 거행하기에 적절한 배경이어야 했으며 제단을 봉헌한 성인을 상징하는 표식의 역할도 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단층으로 제작되던 제단화는 점점 커지고 높아지며 화려해졌다.


교회의 제단화는 성직자들의 주문으로 제작되었지만 개인이나 가족을 위한 장례미사와 성인 숭배가 보편화되며 평신도들도 제단화를 주문하기도 하였다. 개인이나 단체, 가문이나 길드, 심지어 도시까지 그들의 신앙심과 영광, 명성을 담은 제단화를 주문, 제작하였고 이로인해 제단화는 종교적이면서도 세속적인 가치를 담는 중요한 미술품으로 발전되었다.


14세기부터 15세기까지 제단화는 여러 층과 여러 단으로 제작되며 값비싼 재료와 화려한 장식으로 발전하였다. 회화뿐 아니라 목공과 나무조각이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제단화에 덧문이 달리기도 하였다. 어떤 제단화는 덧문이 두 겹으로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15세기가 지나면서 화가들은 화려한 장식이나 덧문에서 벗어나 제단화의 본질인 그림에 집중하며 평면에 공간감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림은 건축물 형태의 제단화 틀로 연장되며 마치 건축물안에 성스러운 공간이 펼쳐지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북동부 알자스 주의 콜마르에 운터린덴 박물관이 있다. 이 곳에 유명한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가 있다. 3폭의 2중 여닫이인  이젠하임 제단화는 덧문이 닫혔을 때, 첫번째 덧문을 열었을 때, 두번째 덧문을 열었을 때 이렇게 세 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중 덧문이 모두 닫힌상태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이 가장 유명하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다.   




왼쪽:  2중 덧문이 모두 닫힌 상태의 제단화  오른쪽: 십자가에 못받힌 예수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고통을 공감하게 만든다.

이젠하임 제단화,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1512-1515경, 500×800㎝, oil on pannel, 프랑스 콜마르, 운터린덴 미술관 


왼쪽: 운터린덴 이젠하임 제단화 기념 우표 / 오른쪽: 제단화 모형(자료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YBEdlGW2IF8)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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