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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r 18. 2019

피터, 얀, 수정, 순자, 지훈의 공통점

5대 화가 가문, 브뤼헬 총 정리

초등학교 시절(당시는 국민학교였다) 새로운 학년이 된 첫날이면 우리는 새로 만난 반 아이들이 서먹하기도 했고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궁금하기도 해서 초등학생 답지 않은 진중함으로 조회시간을 맞곤 했다.


교실 앞 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맥주집 메뉴판 길이의 두 배쯤 되는 딱딱한 검은 표지의 출석부를 옆구리에 끼고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커다랗게 쓰고는 출석부를 펼쳤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신학기의 당연한 통과의례이자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연결하려는 담임선생님의 첫 번째 노력에 우리는 화답이라도 하듯  "네", "예", "넵!", "네에", "저요"라고 외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들은 딱 자기의 모습처럼 소리를 냈고 손을 들었다.


김 씨, 박 씨, 송 씨의 성을 가진 친구들의 이름이 차례로 불려지고 내 이름을 부를 순서가 되었을 즈음, 선생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박자 쉬고 나선


 "이수정"이라고 부르며 고개를 들어 교실을 훑어보았다.


"네!"...


그리고 바로 이어 또다시 들리는


"네에..."


"이 반에 이 수정이 두 명이구나!"


아이들은 웃었고 두 명의 이 수정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선생님은 두 명의 이수정을 구분하기 위해 출석부의 이름 앞에 마치 '호'를 붙이듯 식별표를 붙였는데, 그 당시의 선생님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창의적이지 못했는지 항상 "큰"과 "작은"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 당시엔 '수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많았는데, 적어도 초등학교 6년 동안 세 명 이상의 다른 수정을 만났고 나는 항상 "작은" 타이틀을 맡았다.


이후 중학교 땐 학교가 아닌 화실에 나와 성이 다른 수정이, 어른이 되어 아들을 초등학교에 보냈더니 아들 녀석 친구 엄마의 이름이 수정이, 심지어 성도 같은. 또 인터넷 동호회의 후배 중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도 있다. 가끔 강의를 마치고 나면 내 또래 혹은 조금 윗 선배 뻘 되시는 남성분들이 내 이름이 본인의 와이프와 이름이 같다거나, 자신의 첫사랑의 이름과 같다고 하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내가 태어날 당시에 부모들이 선호하던 아이들의 이름은 '성호'와 '미경'이라는데, 수정이란 이름을 가진 내가 이 정도였다면 '성호'와 '미경'은 "제일 큰", "큰", "중간", "작은" 정도는 붙여줘야 구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1948년엔 영수와 순자, 1988년 지훈과 지혜, 2008년 민준과 서연이 가장 인기 있던 이름이었다 하니 아마도 영수와 순자, 지훈과 지혜, 민준과 서연은 '호'를 만들어 붙이기도 전에 어릴 적부터 타의로 붙여진 호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大 아니면 小 라는...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 중에도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이들이 있었으니 아래의 작품 네 점을 그린 브뤼헬(Brueghel)이란 화가들이다. 같은 듯하면서도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이 그림들은 미술사 특히 플랑드르의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우리가 서양미술사의 명화들이라고 하면 흔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플랑드르 지역(지금의 네덜란드 북부와 벨기에가 있는)의 미술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더불어 미술사의 중요한 기둥으로 꼽힌다.


물론 '브뤼헬'은 그들의 성(姓, Family name)이지만, 신기하게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같아서 생기는 특이한 사례라 미술계에선 그들을 구분해서 부른다.           



                  

①번은 대 브뤼헬(Pieter Brueghel The Elder(1525?~1569))이 그린 <네덜란드 속담, 1559>이다. 피터르 브뤼헬이란 본명이 있지만 아들 이름도 피터르 브뤼헬이었기에 大 브뤼헬, 혹은 농민 브뤼헬, 도깨비 브뤼헬 이라 부른다.


②번은 소 브뤼헬(Pieter Brueghel The Younger(1564~1638))이 그린 <Bird's Trap, 1565>이다. 小 브뤼헬은 大 브뤼헬의 장남으로 아버지와 이름이 같아 younger 혹은 小를 붙이거나 지옥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려서 '지옥의 브뤼헬'로 부르기도 한다.


③번은 大 얀 브뤼헬(Jan Brueghel The Elder(1568~1652))의 작품 <이소의 전투>다. 大 피터르 브뤼헬의 둘째 아들인 얀 브뤼헬은 그의 아들 이름 또한 얀 브뤼헬 이었기에 大 얀 브뤼헬로 구분하고 꽃을 그리는데 탁월했기 때문에 꽃 브뤼헬 혹은 벨벳 브뤼헬로 불린다. 다른 아들 또한 화가였고, 두 딸 모두 화가와 결혼했다고 한다.


④번 작품은 바로 위에서 소개한  大 얀 브뤼헬의 아들 小 얀 브뤼헬(Jan Brueghel The Younger)의 작품  <전쟁의 알레고리, 1640>다.

글로 읽으면 도대체가 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인내심을 갖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것이 감사해서 며칠 동안 개고생 하며 가계도를 그려보았다. 초상화가 남아있지 않은 브뤼헬은 이름만 넣었다.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1세를 시작으로 150년 동안 5세대에 걸쳐 화가를 배출한 브뢰헬 가문.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화가들 일지 모르지만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각국의 유명한 미술관에 브뢰헬 가문 출신 화가들의 그림이 꽤 있으니 이 정도만 알고 보아도 재미가 있을듯하다.


아래 그림은 플랑드르의 대표화가 루벤스와 협업한 大 얀 브뢰헬의 작품 <the virgin and child in a painting surrounded by fruit and flowers, 1617~1620, Oin on panel>이다. 꽃의 묘사는 얀 브뤼헬이 성모자상의 묘사는 루벤스가 했다.


루벤스와 얀 브뢰헬의 협업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75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홈페이지에 가면 이 그림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 부분 중 얀 브뤼헬의 이름에 'Elder'와 'VELVET' 이란 별칭이 붙어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를 거쳐 화가로 활동하고, 수 많은 아름다운 작품을 남겨준 브뢰헬 가문에게 이 글을 빌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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