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y 24. 2020

미술작품 감상, 어떻게 할까?

1일 1글 시즌4  [episode 56]

 트렁크를 펼쳐놓기에도 좁은 작은 호텔과 오후 5시만 되면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 좁고 어두운 골목 덕분에 '생애 첫 프랑스'의 기대는 무참히 깨져버렸습니다. 25년 전, 저는 디자인과를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었고, 방송일을 하던 친구 덕분에 유럽 몇 개 나라를 항공권 발권만으로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에 대한 로망은 이십 대 중반의 여자들에겐 상상 이상의 것이었죠. 믿기 어렵겠지만 제가 대학생이었을 땐 출장이나 유학이 아닌 관광목적의 해외여행은 불가능한 시대였습니다. 198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실시되었고 그런 시대적인 배경 때문에 저의 프랑스여행은 제 인생에 있어 꽤나 파격적인 이벤트였습니다.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을까요? 작은 호텔의 여주인이 노골적으로 내비치는 동양인에 대한 비호감과 조식으로 내준 바게트 빵을 요령 없이 먹는 바람에 홀랑 까져버린 입천장, 그리고 매일 아침 호텔 앞 골목에서 들려오는 처연한 바이올린 소리는 파리에 대한 불편한 기억 3종 세트로 남아있었습니다. 아무튼 이 책은 25년 전 '루브르박물관'에서의 저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던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순수회화가 아닌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고 싶다고 분야를 조금 변경했을 뿐 저의 삶은 늘 '미술'의 언저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연하게도 파리여행의 정점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가 시야에 들어오자 저의 가슴은 설렘으로 폭발할 지경 이었습니다.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던 루브르에 도착한 후 저는 언제 또 루브르에 와보겠느냐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빨리 그리고 최대한 많이 관람을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저의 눈은 어느새 작품보다는 의자를 찾기 시작했고 눈앞에 서있는 작품들이 아까 본 것인지 처음 본 것인지 혼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드는 생각은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어? 왜지? 아무런 감동이 없는걸'


루브르는 너무 컸고, 모나리자는 너무 작았고,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루브르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대기만 하는 거대한 왕궁일 뿐이었습니다. 당시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으니 지금처럼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진 미술 지식 이래봤자 미술시간에 배웠던 것들 아니면 아버지가 사다주신 화가의 도록 전집(대부분 인상주의 화가들)에서 보았던 것이 전부였으니 25년 전의 저는 디자인 전공자였음에도 "그알못(그림을 알지 못하는)"이었던 것입니다. 그 소중했을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같이 스러져 가버렸고 그렇게 루브르의 첫 경험은 아쉽게도 아무런 감동이 없이 지나가버렸습니다. 


꽤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프랑스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에서 연도별로 나누어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고 싶어했던 그림들은 루브르 박물관 건너편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 모나리자가 전시되었던 관람실에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만든 프랑수아 1세의 초상화가 관람객의 시선에서 배재된 채 외로이 걸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 중 가장 큰 크기의 그림도 모나리자의 맞은 편 벽에 걸려있지만 크기만으로 모나리자를 이길 수 없어 조금은 애처롭게 전시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25년이 지나 다시 방문한 루브르 박물관에선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걸음을 옮기는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습니다. 지금의 저에겐 그림이란 세계와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며 삶의 위안임과 동시에 모든 여행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불편 3종 세트로 오래도록 기억되었던 파리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고뇌하고 절망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희망을 놓치 않았던 삶의 터전이었기에 연민과 희망의 도시가 되어 저를 부릅니다.  

   

1871년 피렌체의 한 교회에서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를 감상하다 실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의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격정적인 경험이었길래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까지 했을까요? 이후에도 예술작품을 감상한 후 두근거림을 느끼거나 몸에 힘이 빠지고 현기증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실신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현상이 보고되자 이탈리아의 정신의학자 그라지엘라 마게리니(Graziella Magherini)는 관련 증상에 대해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1979년 ‘스탕달 신드롬’이란 명칭으로 발표합니다. 예술품이 가진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몸과 정신이 반응하는 이 증상은 어쩜 당연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째서 당연하냐고요? 혹시 책을 읽으며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해본 경험이 있는지요? 우리는 인터넷에 소개된 어떤 사건에 분노하기도 하고 연민을 갖기도 하지요. 영화를 볼 땐 어떤가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어떤 드라마는 종영이 되고 난 후에도 드라마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미술작품 또한 그것이 그려진 시대의 서사, 화가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음악이나 문학을 즐기는 일은 수월하게 느끼지만 미술작품을 즐기는 일은 다소 어렵게 느낍니다. 왜일까요? 일단 영화와 드라마, 문학 작품은 스토리가 기반이 되는 분야입니다. 스토리를 즐기기 위해선 언어 능력이 필요하고 이는 오래전부터 이미 획득하고 있는 역량이니 영화, 드라마, 문학작품을 즐기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편으론 한국어 번역이나 통역, 자막이나 더빙 없이 보는 외국 드라마나 영화, 원서의 감상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음악은 어떤가요? 호불호의 차이가 있겠지만 K-pop이나 외국어로 만들어진 음악 그리고 언어 없는 클래식 연주까지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이유는 언어적 소통 없이 멜로디와 리듬만으로도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어떤가요?  


여기서 잠시 수학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갑자기 왠 수학이냐고요? 수학을 공부하는 일과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어찌 보면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그림 감상을 하려고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요? 그렇다고 해서 너무 절망하지는 마세요. 수포자였던 저도 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 문제가 없고 나아가 이렇게 감상법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수포자였던 제가 미술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좋았던 것은 수학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수학이 가진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크게 대수, 함수, 기하, 확률과 통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얼마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대수(對數)란 수 또는 수 대신에 사용하는 문자 및 그와 관련된 연산에 관한 분야입니다. 우리가 흔히 산수라고 부르는 것은 대수의 영역 중에서 미지수를 사용하지 않는 단순한 셈법을 말합니다. 함수(函數)는 두 집합의 특정한 상호 대응 관계에 대해 학습하는 영역이며 기하(幾何)란 선과 면, 도형 등 기하학적인 대상의 모양, 크기, 상대적인 위치 그리고 공간의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영역입니다. 확률(確率)과 통계(統計)란 수량적인 비교를 기초로 많은 사실을 다양한 방법으로 관찰, 처리를 연구하는 영역입니다.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픈가요? 


대한민국에 수많은 수포자를 양성한 주범은 바로 수학의 교육체계인 ‘나선형 구조’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수학이라는 교육과정에서 알아야 할 지식은 교육의 수준에 관계없이 그 성격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다만 동일한 성격의 내용이 학년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더 폭넓게, 또 깊이 있게 학습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나선형 구조입니다. 아, 엄밀히 말하자면 나선형 구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구조에 대한 이해없이 지엽적인 학습만을 종용한 교육시스템과 교육자의 문제라고 하는게 합당하겠네요. 나선형 구조란 처음은 아주 적은 원으로부터 시작해 점점 넓어지는 형태의 나선 모양처럼 교수체계가 구조화 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초등학교에 입학해 첫 번째 수학시간에 배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나요? 초등1학년 수학 1단원에서 배우는 것은 1부터 9까지의 수입니다. 그리고 이 숫자들을 더하거나 빼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5단원이 되면 다시 10부터 50까지의 수를 배우고 두 자리 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을 익히죠. 2학기가 되면 100까지의 수를, 2학년이 되면 드디어 세 자리 수를 배웁니다. 백단위의 숫자를 더하고 빼는 연습을 하며 드디어 문방구에 가서 학용품 두 개를 사며 내가 내야할 돈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999원으로 학용품 두 개를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인생의 쓴맛을 느낄 즈음 곱하기를 배웁니다. 3학년이 되면 지금까지 배운 개념을 토대로 분수와 소수를 배우고 4학년이 되면 분수와 소수의 덧셈과 뺄셈을 배웁니다. 지금의 내용들은 모두 '대수'에 관한 내용들이고 도형에 관한 학습 또한 대수를 배우는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나선형 구조형태로 학습하게 됩니다. 흔히들 수학을 잘하고 못하고의 분수령은 초등4학년 이라고 합니다. 분수와 소수의 개념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수포자들이 처음 넘어지는 단계입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넘어진 지점에서 일어나 왜 넘어졌는지를 알고 다음단계를 대비해야 하지만 대부분 공식을 외워 단순 연산으로 이 위기를 넘깁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어느 순간 도저히 일어설 수 없게 넘어지게 됩니다. 수포자선언을 하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미술감상이 어떻게 수학학습과 닮아있냐고요? 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해보죠.


어느 날 문득 미술작품 감상에 관심이 생겼다면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할까요? 아마도 관련서적을 구입하여 읽거나 인터넷 포털이나 유튜브에서 정보를 검색할겁니다. 책이라고 한다면 1950년 영국에서 초판이 발행된 이후 19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800만부 이상 판매된 서양미술사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최근에 발가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구석 미술관' 같은 책을 두고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하게 될겁니다. 물론 두 권 다 구입을 한다면 고민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요. 인터넷 포털이나 유튜브에도 이미 많은 미술 전문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놓은 고품질 컨텐츠가 많습니다. 네, 생각보다 무척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어떻게 미술작품 감상의 세계에 들어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미술작품의 감상을 돕는 다양한 관련 서적과 온라인 컨텐츠들을 살펴보면 대략 세 갈레 정도로 구분이 됩니다. 하나는 작품을 위주로 접근하여 설명하는 책입니다. 작품이 가진 정보나 스토리, 역사적 의미등을 시대순 혹은 사조별로 구분, 나열하며 설명합니다. 두번째는 예술가의 삶을 위주로 접근하는 책입니다. 고흐와 클림트, 다빈치, 피카소처럼 예술가의 일생과 그들의 작품을 스토리에 기반해 설명합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예술 작품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가에 대한 이해와 작품이 가진 정보가 감상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입니다. 마지막은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니 느껴지는 대로 감상하면 된다.’며 지식과 정보 없이 미술작품의 조형적 요소를 위주로 감상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방법들은 모두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어느 한 가지 방법만을 선택한다면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즐거움의 경지까지 오르기도 전에 힘들고 지루한 일이 되어버릴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모든 방법을 수학의 학습 체계인 ‘나선형 구조’처럼 감상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주 사소한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 혹은 예술가에 대한 관심 아니면 단순한 느낌,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것부터 시작해 점점 그 범위와 깊이를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다음 편에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레고리화 감상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