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y 19. 2020

알레고리화 감상하는 법

1일 1글 시즌4 [episode 51]

이 그림은 벨기에의 국민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이다. 유럽의 미술관을 여행하다보면 루벤스의 작품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미술사에 있어 루벤스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한국사람들에게는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존경한 화가로 만화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의 작품이 등장한다.


바로크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는 살아있을 때 이미 부와 명예 모두를 가졌으며 화가라는 직업을 넘어 외교관, 지금으로 치면 로비스트에 버금가는 역할을 하며 플랑드르 지역의 평화에 기여했었다.


그의 작품 <전쟁과 평화>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부류의 그림인가? 그렇다면 어떤 점이 내 맘을 끄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점이 그런가?


<전쟁과 평화>, 페테르 파울 루벤스, 1629~1630년경, Oil on canvas, 203.5 x 298 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사실 제목이 <전쟁과 평화>라고 하니 전쟁터에 평화를 상징하는 여인과 아이들이 등장하고 있는 시끌벅적한 그림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 여전히 아리송하다. 바닥엔 표범이 나뒹굴고 있고 반인반수의 노인과 갓난 아이부터 소녀에 이르는 아이들, 뜬금없는 천사와 갑옷을 입은 이들. 이쯤 되니 루벤스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 작품의 원제를 보면 <Minerva protects Pax from Mars (Peace and War)>라고 되어있다. 괄호안 전쟁과 평화외에 몇 개의 정보를 더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떤 의미로 전쟁과 평화를 표현한 것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파파고에 원제를 넣어 번역을 해봤다. "미네르바는 Pax를 화성으로부터 보호한다(평화와 전쟁)" 라는 엉뚱한 제목을 내 놓는다. 갑자기 SF영화제목이 되어버렸다. 이 그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그림을 여는 열쇠는 바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있다. 그리스-로마 신들은 로마가 기독교화되기 전까지는 종교였지만 313년 동로마의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국교로 채택하면서 종교의 역할은 잃고 신화로서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리스 신화가 중심이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대부분 그리스 신들과 이름만 다를 뿐 동일시되는 존재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제목에 나타나있듯 미네르바, 팍스, 마르스다. 마르스는 화성을 의미하는 영어표현이 아니라 전쟁의 신인 마르스를 말한다.


아래의 표를 참고하여 신들의 그리스, 로마식 이름과 관장하는 분야를 확인해보자.


위 내용을 참고하면 <Minerva protects Pax from Mars>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로부터 평화의 신인 팍스를 보호하는 지혜와 정의의 여신 미네르바>라고 풀어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식 이름을 넣어 표현하면 <아레스로부터 에이레네를 보호하는 아테나>로 표기할 수도 있다.


그림의 중심에 있는 세 인물의 정체가 밝혀졌다. 투구와 갑옷을 입은 두 신 중 왼쪽이 미네르바, 오른쪽인 마르스다 미네르바가 보호하려고 하는 누드의 여신이 팍스다.


우리는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감상할 때 우선 '의인화'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를 해야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개념을 의인화 해놓은 것이다. 평화의 신 팍스는 여성신이 아니라 여성으로 의인화된 개념인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그림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형상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것이고 그것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했을 때 가장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의인화된 개념은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상징과 함께 표현되었고, 평화의 여신 팍스의 상징은 올리브 가지, 홀(笏, scepter), 과일과 곡식이 가득 담긴 풍요의 뿔이다.




 

<계속>

                 Royal Academy of Arts in London, Britain, 23 January 2018                      


사족 하나!

헤르메스, 아프로디테, 가이아, 아레스, 제우스,  크로노스, 우라노스, 포세이돈, 하데스를 우주 공간안에 줄 세운다면 무엇이 떠오르나? 신들의 그리스 이름을 로마 이름으로 바꿔보자. 머큐리, 비너스, 마르스, 주피터, 새턴, 우라노스, 넵튠, 플루토. 그렇다 바로 태양계의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의 이름이다. 명왕성이야 이미 태양계에서 퇴출되긴 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태양계의 이름이 로마신들의 이름으로부터 비롯되어다는 점은 서양을 지배하는 문화의 원류가 바로 그리스-로마신화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인을 영접하듯, 그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