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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25. 2020

예술에 대한 오해를 풀고

1일 1글 시즌4  [episode 57]

예술이란 인간의 감정, 즉 표현하는 사람의 감정을 시각이나 청각 또는 상상력을 통해 지각하게 하는 형식과 내용을 말합니다. 그중 미술이란 이런 형식과 내용을 시각적, 미적(美的), 조형적(造形的)으로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는 정의입니다. 


이번엔 아래에 소개하는 작품 두 점을 감상해보죠.

  “이 그림들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혹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예술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예술을 '아름다움'과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술에 있어 ‘미적 표현’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술은 곧 아름다움이란 연결고리가 우리를 예술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처한 현실은 먹고 사느라 지지리 궁상인데 아름답고 우아한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죠. 아름다운 예술작품앞 서 있으면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보며 그 이유가 작품의 가격때문인지, 예술에 대한 지식의 부재인지, 현실세계와의 괴리때문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과 마음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예술에 대한 지식도 탑재한 후에 예술을 향유해 보겠노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압니다. 우리의 삶이 그 여유란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대한민국에 마당놀이를 연극계에 정착시킨 최고의 극단 미추(美醜)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움은 추함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기에 예술은 미와 추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어야 한다는 것이 도올 선생의 견해였습니다. '예술은 미(美)'라는 명제야 말로 오해의 시작이고 이는 예술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실족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예술 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의 저자 김소영도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예술의 속성은 즉각적이라기보다는 충격과 사색의 과정을 거친 후에 비교적 더딘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대신 더 깊게 오래 머문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요.


  저 또한 16살에 보았던 한 전시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작품들을 기대하고 찾아간 전시회에는 뻘건 피 같은 붉은 페인트로 거칠게 휘갈겨 쓴 커다란 글자들이 캔버스와 벽에 난무하고 있었고, 그 사이를 장식한 설치물들은 마치 인간의 내장들이 튀어나온 것 같이 연출되어 있었습니다. 미술공부를 시작하며 선생님을 따라 처음 가본 전시장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화실로 돌아와 선생님께 화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렇게 역겹고 추한 것이 무슨 예술이냐고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알 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제게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수정이 마음에는 항상 예쁘고 좋은 것만 들어있니?”라고요. 


   예술은 아름다운 이상(理想)의 세계가 아닙니다. 어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세계입니다. 문광훈 교수는 그의 저서 <예술과 나날의 마음>에서 예술은 일상의 연장선이며 나와 다른 세계와 이야기를 보여주어 감각과 사유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예술을 통한 심미적 경험이  감각의 교차를 통해 해묵은 사고를 뒤흔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심미적' 경험이란 미(美)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醜)와 악(惡)까지 포함되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그런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쾌함이 사유의 단계로 이어져 내 삶의 변화를 촉발한다면 결과론적으로 예술은 우리 삶에 제대로 작동한 것일 테니까요.


예술에 대한 오해를 풀고 조금 가까이 다가 가보세요. 시대를 초월한 삶의 희로애락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토닥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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