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명품 장인입니다.

엄마표 명품 탐구 생활

by 이수정

아는 후배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선배님! 지난번 도와주신 일 참 감사했어요. 언제나 지지해 주시는 마음에 제가 항상 감사하고 있는 것 아시죠?" 라며 내게 전해준 것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큼직한 토트백이었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나를 보며 겸연쩍은 미소로 그 후배가 말을 이었다.

"아... 그거 사실 진품은 아니에요. 그런데 짝퉁 중에서도 아주 고급 짝퉁... 호호호 아시죠? 얼마 전에 여배우 이**가 들고 나와서 유명해진 거..."


커다란 가방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가죽의 느낌이며 바느질까지 제법 고급스러운 느낌에 명품 감별사나 구분할 만한 품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배가 던진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선배님이 들면 짝퉁도 진짜로 보이니까요..."


읽지 않아도 들고 다니는 책 두세 권과, 노트북 등 기타 여러 가지 소지품들을 풍덩풍덩 넣을 수 있는 커다란 가방을 선호하는 나는 그 가방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트렌디한 후배가 말하지 않았는가? 누가 봐도 이건 명품이라는 것을! 그러니 앞으로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더라도 절대 머리 위에 이 가방을 얹어 비를 가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에게 타일렀다.


비가 오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몇 개의 쇼핑백과 노트북 가방, 손에는 핸드폰, 그리고 그 가방을 들고 만원 지하철을 탄 나는 어렵사리 자리를 구해 앉았다. 손에 든 것이 너무 많아서 꼭 앉고 싶었던 나는 앞에 선 몇 사람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한 숨을 돌린 후 발견한 내 눈앞의 상황은 조금 전 자리 차지함의 당당함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무릎 위에 놓인 쇼핑백과 노트북 가방 그리고 두 발 사이에 놓인 '그 가방'


비를 가리기 위해 그 가방을 머리에 얹는 일에 대한 주의를 스스로에게 주면서도 의자에 앉을 때 두 발 사이가 그 가방의 거처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은 왜 미리 주지 시키지 않은 것일까? 명품 백(심지어 진품으로 보이고 싶은 짝퉁백 조차도)이 있어야 할 곳은 언제든 나의 가슴 근처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바보 같은 나를 탓하기에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사람들은 왜 명품에 열광하는 걸까? 외국에서는 자신의 신장을 팔아 여자 친구에게 명품백을 사주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있고, 내 주변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명품백을 은근히 자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또 어떤 친구들은 결혼할 때 시댁에서 받은 명품백들은 자금이 궁할 때 팔아서 요긴하게 돈을 마련해주는 수단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고 명품백을 대여해주는 업체들도 성행하고 있으며, 어떤 연기자는 한 때 사귀었던 여자 연기자와 결별한 후 한 토크쇼에 나와서 아직도 그 할부금을 내고 있다고 셀프디스를 하며 동정 웃음을 불러오기도 했다.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면 길가에 임시 천막을 쳐놓고 세상의 모든 가짜 명품을 파는 곳도 있다. 그곳은 언제나 한국인 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모두 명품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명품은 대부분 고가다. 명품이란 그것을 만드는 사람, 혹은 브랜드의 혼과 역사가 담긴 물건이다.

혼과 역사가 담긴 것이 명품이라고 정의 내리니, 알고 보면 나는 꽤 많은 명품들을 경험하고 살아온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명품 중 최고를 꼽는다면 단연코 우리 엄마의 "물김치"다.

우리 엄마의 물김치에는 엄마의 혼과 인생, 살림의 노하우, 가족을 향한 애정이 들어있다.

흔히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새콤 달콤하여 혀끝을 자극하는 그런 맛이 아니다.


물김치를 담그기 위해 엄마는 정성껏 육수를 다린다. 멸치와 양파, 마늘, 건강을 위한 한약재 몇 가지가 들어간 육수다. 어느 정도 육수가 끓어 맛이 우러나면 베 보자기에 거른다. 노르스름하고 정갈한 육수가 준비된다.

야채의 시세에 따라서 무, 얼갈이배추 혹은 열무가 주인공으로 선택된다.


깨끗이 씻은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송송 자르는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썰어진 야채의 크기가 고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적당한 크기라는 것이다. 마치 인체공학 연구의 결과물로 결정된 크기인 듯 입속에 들어간 배추들은 입안에서 적당하게 유영하며 사각사각 씹히는 최상의 식감을 제공한다.


준비된 배추에 소금을 뿌릴 차례다. 이 과정이 내가 가장 경이롭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엄마의 부엌엔 계량컵도, 계량스푼도 없지만 언제나 가장 적당한 양의 소금이 뿌려진다. 한 손에 움켜쥔 소금을 마치 안동 간고등어 간재비가 고등어 뱃속에 소금을 뿌리듯 툭툭 던지는데, 이는 마치 일종의 예술행위와 같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소금을 뿌리고 잠시 야채들을 바라본 후 소금이 적다 싶으면 손바닥에 묻은 소금을 배 추위에 문지르고, 소금이 적당하다 싶으면 손바닥에 묻은 소금은 물로 닦아내는 것이다. 30년 차 일식 요리사가 초밥을 만들기 위해 손가락으로 밥을 집으면 밥알 알갱이 수가 거의 일정하듯, 소금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엄마. 내가 만약 조금 호들갑스러운 사람이었다면 생활의 달인에 적극 추천했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그 배 추위에 미리 만들어 식힌 육수를 뿌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냉장고 속에서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몇 개의 과일 중 적당한 놈을 골라 추가 토핑을 한다. 사과, 배등이 주된 손님들이고, 딸기가 초대된 적도 있었는데, 그 맛은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사춘기 아들도 할머니의 물김치 만으로도 밥 한 그릇을 먹어치우고, 가끔 무더운 여름날엔 할머니의 물김치를 찾는다.


도저히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우리 엄마의 "물김치" 이것이야 말로 우리 친척들 사이에 수많은 마니아를 양성한 50년 차 장인정신의 소유자가 만들어낸 명품이 아니고 무엇이랴. 교외로 이사 가신 후 가끔 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으로 배달까지 해주시는 그 물김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이내 경건해진다.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물김치에 대한 경례'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렇다. 그 물김치 안에 우리 엄마 인생 50년이 들어있다. 물김치 통을 앞에 놓고 있자니 엄마의 인생이 내 입에 너무 수월하게 들어가는 것 같아 아깝다. 두고두고 바라보며 그 마음을 느끼고 싶다. 부드러운 융 가방에 담겨있는 명품백을 바라보며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물론 내가 가진 우리 엄마 물김치에 대한 경외심은 그것의 몇 곱절이 되리라 확신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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