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장대 위 시간은 마법이 걸린 듯 천천히 흐른다. 오래전 아빠의 해외 출장길에서 따라온 코티분, 엄마의 지인이 방문판매를 시작하며 안겨준 마사지 크림, 브라운 컬러만 움푹 파인 10년도 더 되었을 아이쉐도우 등 화장대위의 물건들은 제각각 사연도 가지가지, 그것들의 평균 나이는 10살이 훌쩍 넘는 것 같다.
오랜 시간 엄마의 화장대를 지키는 물건들 중 튜브 형태의 화장품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키가 작아진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다. 튜브형 화장품들은 몸체를 눌러도 내용물이 안 나오는 순간에 도달하게 되고 그럴 땐 뚜껑을 닫고 손바닥 위에 탁탁 몇 번 쳐 주고 난 후 짜 주어야 피시식 파열음을 내며 내용물들이 나오게 된다는 것을.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아무리 손바닥 위에 뚜껑을 닫은 튜브를 세게 쳐도 내용물이 나오지 않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울 엄마는 튜브의 아래로부터 삼분의 이가 되는 지점을 가위로 자른다. 잘려 나간 튜브의 꼬리 안쪽 벽에 묻어있는 화장품을 알뜰히 닦아내어 사용하면 적어도 사나흘은 넉넉히 사용할 수 있다. 잘라낸 꼬리 부분의 화장품을 다 쓰고 나면 다시 튜브 몸체 부분 안쪽에 남아있는 화장품 차례다. 주의할 점은 잘라진 튜브 꼬리 부분을 버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잘 닦아서 뚜껑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열리고 닫혔던, 종내에 가선 손바닥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박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다했던 진짜 뚜껑이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영원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튜브 꼬리에게 헌신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가 흘러 튜브의 몸통 안쪽, 검지가 닿을 수 있는 정도까지 깨끗해지면 다시 원래 튜브의 이분의 일 되는 지점을 자른다. 튜브의 본체와 임시 뚜껑 사이의 잘린 몸체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싱크대 손잡이에 걸린 재활용 봉투로 들어간다.
남아있는 반토막 튜브 위쪽에 맨 처음 잘라낸 튜브의 꼬리 부분이 합쳐진다. 꼬리 부분을 뚜껑처럼 끼워 넣으려면 몸통은 자신의 둘레를 살짝 줄여주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굵은 주름이 생긴다.
키도 반 정도로 줄어들고 처음처럼 팽팽한 몸매는 아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임무를 팽개치지 않고 굳건히 서있는 튜브들. 어느 주말 아침, 문득 엄마의 화장대 위에서 세 개의 키 작은 화장품들을 발견하고 엄마 몰래 버려버릴까 하다가 나는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평생을 아끼고 사는 것이 몸에 밴 엄마가 왠지 애틋해서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부렸다.
"엄마! 제발 너무 아끼고 살지마! 그렇게 아끼고 사니까 딱 고만큼 밖에 못 사는 거야"
던져놓고 나니 망언이었다. 평생을 아끼고 알뜰살뜰 살아온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폄하해버린 나쁜 말.
그러나 엄마는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선
"그래도 알고 보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버리면 너무 아깝잖아 "라고 한다.
탱탱하게 내용물이 가득 들었던 화장품도 시간이 지나 아무것도 남지 않아 버려질 일만 남게 된 빈 튜브가 되듯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엄마는 비어버린 튜브를 보며 느꼈을까? 알고 보면 아직은 조금 더 쓸모 있다고 여전히 화장대 위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튜브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서 그것들을 보듬으며 나이 팔십을 향해 가는 스스로를 위로한 것일까?
키가 작아진 튜브를 바라보며 어느 순간 나보다 키가 훨씬 작아져버린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버리려고 모아 쥐었던 튜브들을 다시 가지런히 세워두었다.
베란다 물청소 중인 엄마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엄마! 화장품 떨어진 것 없어? 다음 주에 사 오게!"
"응, 필요한 것 아직 없어" 엄마의 목소리가 씩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