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칠천 원을 주셨다.

그만 마음이 고와지고 말았다.

by 이수정

얼마 전 브런치에 나의 작고 사소한 분노에 대해 글을 썼었다. 평상시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는데, 밥값으로 4800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카드 결제에 문제가 생겨 700원의 수수료를 내고 현금을 찾으며 생긴 억울한 마음에 대한 글이었다.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120


그 <700원짜리 분노>라는 글의 링크를 친정엄마에게 보내드렸다. 글 읽고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는 엄마였기에 가끔 내가 쓴 글들을 보내드리곤 했었다. 그날도 무심코 글을 보냈었는데, 이십 분이나 흘렀을까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마음이 고운 하루가 되어스면 좋겠다. 화이팅



분노로 마음이 들썩 거렸을 딸을 생각하며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여 고르고 고른 말이었을 거다. 돋보기도 안 쓰고 보낸 듯 맞춤법도 맞지 않은 그 문자에 마음이 이내 애틋해졌다.


'뭘 그런 걸로 그렇게 예민해'라고 타박하지도 않고, 'ㅋㅋㅋ'라고 가벼이 웃어 넘기 지도 않고, '넌 원래 성격이 좀 까칠했어'라고 당연히 여기지도 않고, '얼른 털어버리고 힘내'라고 성급한 답을 주려하지도 않았던 엄마의 카톡은 성난 말을 다스리는 노련한 기수처럼 부드럽고 온화하게 나를 어루만졌다.




계획했던 일정보다 하루가 빨리 마무리된 날, 친정집에 갔다. 엄마 밥을 먹을 생각에 들떠 가방 속에 넣어놓았던 운동화를 갈아 신고 바삐 걸었다. 연락도 없이 온 나를 엄마가 놀라며 맞아주었다. 늘 그렇듯 첫인사는


밥은?


라면이나 끓여먹을까 하는데...라는 나의 말에 엄마가 그래도 밥을 먹는 게 낫지 않겠니? 라며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 통을 꺼낸다. 온갖 과일을 갈아 넣어 풍미를 더한 총각김치와 단연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물김치, 요즘 아빠의 솜씨 발휘 아이템 견과류 야채 쌈장, 감자볶음과 두부 지짐이 식탁 위에 뚝딱 하고 차려졌다. 평상시보다 많은 양이 담긴 밥공기를 보고 조금 덜어낼까 하다가 군침을 꼴깍 삼키며 맛있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저녁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해 놓고 엄마 방으로 들어가니 엄마는 머뭇머뭇하다가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지갑을 가지고 온다. 요즘 사람들이 누가 현금을 가지고 다니겠냐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거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라며 나에게 건네주는 것은 다름 아닌 천 원짜리 지폐 일곱 장!


이거 한 번도 쓰지 않은 돈이야. 은행에서 처음 나온 새 지폐!



엄마도 지갑에 아주 오랫동안 넣어두었던 돈이란다. 어느 한 부분도 구겨지지 않은 탱탱한 천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은 오랫동안 빛을 못 받아 파리해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휴! 엄마 나 지갑에 돈 있어, 그날만 없었던 거야. 걱정 안해두 돼~"


그래도 엄마는 굳이 7천 원을 나에게 주겠단다. 이미 결심이 선 듯 다시 지갑에 집어넣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딸이 수중에 현금이 없어 혼자 부글부글 했을 것을 생각하니 속상한 모양이다. 언제 또 그런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대비 해 놓으라는 의미다.



엄마가 준 천 원짜리 지폐 일곱 장을 들고 마루로 나왔다. 이미 내 지갑 안에 들어 있던 돈 132,000원. 그러나 엄마에게 들릴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와~ 700원 덕분에 7,000원 벌었네! 지갑이 든든해졌다. 하하"


엄마가 준 칠천 원은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돈의 역할을 해보지 않은 듯 정갈하고 맑아 보였다. 아니 고와 보였다. 어쩜 엄마는 돈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딸래미가 이 세상 살아가며 만나게 될 수많은 분노의 상황을 고운 마음으로 다스리라는 의미를 주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오늘은 정말 마음이 고와지는 하루다.

칠 천원의 효력이 벌써 시작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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