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1년 차. 결혼 초기에 내가 생각한 결혼이란 "시간이 지나며 사랑의 온도는 낮아지겠지만 대신 믿음과 존경이 더해져 단단해지는 관계"였다. 역시 어린 나이의 통찰이란 현학적이고 이상적이기만 하구나!
나이 50이 되어 정의하는 결혼이란 "지지고 볶는 다양한 방법을 습득하는 실전"이다.
사실 결혼하기 전에 내게 딱히 이상형이란 것이 없었다. 매번 만나는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었고, 헤어지고 나면 또 다른 이상형이 생겼다. 그나마 일관되게 고수했던 것은 '쌍꺼풀 없는 시크하고 선한 눈을 가진 사람' 정도였다. 굵은 쌍꺼풀이 주는 오일 리 한 이미지가 왜인지 싫었는데 그래서 장동건을 좋아하던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고소영님 죄송합니다
20대 후반에 만난 남자와 1년 반 동안 연애하고 결혼해서 3년을 아이 없이 살았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내 남편의 눈에 남미 스타일의 굵고 진한 쌍꺼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견할만한 대 발견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때 비로소 콩깍지가 벗겨진 것이다.
남편의 친구들이 장난 삼아 그를 "안토니오 반만데라(2% 부족한 안토니오 반데라스)"라고 부르는 이유를, 신혼여행으로 간 태국에서 사람들이 유독 내 남편에게 현지어로 말을 붙이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대발견 이후 어느 날 남편과 동반한 모임에서 우스개 아닌 우스개로 남편의 쌍꺼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휴... 내가 정말 이런 쌍꺼풀을 가진 사람하고 결혼할 줄은 몰랐어요... 다른 건 몰라도 난 절대 쌍꺼풀 있는 남자는 싫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남편은 허허하고 웃기만 했다.
3~4년이 지나고 TV를 보다가 장동건을 본 내가 다시 쌍꺼풀 이야기를 했다.
"와! 진짜 내가 당신 같은 쌍꺼풀이 있는 남자랑 결혼하다니, 눈에 뭐가 씌우긴 씌웠었나 봐"
TV를 보던 남편은 그대로 화면에 눈을 둔 채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키 작고 다리 짧은 여자가 이상형은 아니었어..."
마음속에서 6~7년은 곰삭은 듯 그 짧고 강력한 한마디는 마치 청국장같이 내 코를 아니 마음을 찔렀다.
그 이후 우리 사이에 쌍꺼풀 이야기는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난 굵은 남미식 쌍꺼풀에 관대해졌고, 남편은 짧은 내 다리에 연민을 가졌다. 나아가 난 남편의 젊은 시절 사진을 카톡에 올려놓고 "사실 내 남편의 혈통은 마오리족이에요"라는 농담을 구사했고(많은 사람들이 정말? 하며 믿었다.) 남편 또한 체구는 작아도 깡다 구니 하나는 최고라며 나를 치켜 새우기도 했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이상형이 아니었다. 지금은 서로가 자신의 이상형이 되길 기대하지 않는다.
쌍꺼풀이 없어질 것도 아니고, 갑자기 다리가 길어질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0년간의 지지고 볶음 속에서 우리는 상대가 아닌 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물론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두 명의 자아가 만나 두 개의 튼튼한 기둥을 만들 때, 그리고 그 기둥이 너무 가깝게 있지 않아야 그 기둥 사이에 지붕을 얹어 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공간 안에서 아이는 자라고, 가족은 쉴 수 있다.
나의 부족함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자아를 만드는 첫걸음이듯 이 나이에도 여전히 우리는 계속 자라고 있다.
오늘도 TV엔 정말 밥 잘 사주고 싶은 예쁜 남자들이 많이도 나온다. 연기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거의 그리스 신화급의 멋진 남자들이 자신들의 멋짐을 어필 중이다. 이상형이 득실대는 저 너머의 세상, 이상형이 아닌 남편과 사는 이 세상. 이런 걸 보고 이렇게 말하는가 보다.
"이상은 높게 그러나 발은 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