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필사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Jun 27. 2020

어머니의 새벽

1일 1글 시즌4 [episode  91] 필사노트 "봄을 타나요 中"

어머니의 새벽  - 만청 박종명 (시집 '봄을 타나요' 中)


어머니는 매일 첫새벽에

공책을 열고

흐린 눈 부비며

구구단을 쓴다


치매예방에 구구단이 그만이라고

이일은 이 구구는 팔십일

빼곡하게 써내려가며

달아나려는 것들을

단속한다


그날이 와도

시간이 까무룩 사라지지 않게

아들, 딸, 손자, 손녀 이름

하마 잊을까

구구단을 쓴다


요즘 아흔 어머니의 새벽은 온통 

구구단이다. 




가슴속에 돌맹이 하나가 떨어진다. 돌멩이 떨어진 주위로 출렁출렁 원들이 퍼진다. 무엇이었을까? 그 돌멩이. 길어져버린 새벽을 채우는 뿌연 두려움을 꼭꼭 눌러 쓴 숫자에 담고, 뒷장에 배겨나온 연필자국마냥 세상에  자국을 남기고픈 내 모습이 오버랩 되어서였을까?

삶이란 기억의 적층, 기억들이 달아날까 단속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삶에 대한 애정이겠지.

인생에 데면데면한 나를 부드럽게 호통치는 시를 읽다가 흡! 하며 멈칫하게 되는 말 '그 날' 

내 가슴에 던져진 돌멩이였구나. '그 날'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공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우리는 무엇을 써 놓았을까?

어머니가 써 놓으신 구구단 뒤에 숨겨진 구구절절 인생 이야기가 그려지는 한 권의 시집은 미소였다가 눈물이었다가 웃음이었다가...새벽의 생각이 된다. 


만청 박종명 선생님의 등단 1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