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글 시즌4 [episode 98]
두 번째 오는 제주 '사려니 숲'
신성하다는 의미의 '사려니'라는 이름처럼 이 곳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몸과 영혼이 신성 해지는 느낌이 든다.
신기하게도 두 번의 방문 모두 비와 안개가 가득한 숲 속을 걸을 수 있어 신성한 숲은 마법의 숲처럼 나를 품어주었다.
오랜 벗들과 같이, 가끔은 혼자 걸으며 서울에서 묻혀온 묶은 때를 벗어버린다. 비에 젖은 나무에 손을 가만히 대어 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까마득한 나무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크게 허파를 부풀렸다가 휴 하고 숨을 내어 쉬고 물에 젖은 산수국 꽃잎과 눈을 마주친다.
물에 젖은 흙길이 폭신폭신해 걷기도 좋고 임시방편으로 입은 투명한 우비 덕분에 두 손도 홀가분하다. 내 키의 몇 곱절이나 큰 나무들은 기꺼이 자기 곁을 내어주고 사이사이 숨바꼭질하듯 쪼르르 팔랑거리며 다니는 우리들은 마치 엄마의 주변에서 뱅글뱅글 뛰어노는 어린아이들 같다.
지천명의 치열함을 관통하는 우리들은 주말이 지나면 또 다른 정글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염없이 너그러운 숲의 포용은 우리를 다독이며 세상을 향한 걸음에 등 뒤를 밀어 힘을 실어 준다.
사려니 숲의 신성한 정기를 두 눈과 가슴에 가득 담는다. 아마도 며칠간 나의 숨에는 삼나무의 향기가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