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앵그르의 <파포스의 비너스>
내가 살았던 신혼집의 욕실은 신축 빌라임에도 2~3주가 멀다 하고 타일의 줄눈 사이에 누런 물때가 끼기 일쑤였다. 빳빳한 작은 솔로 타일 사이사이를 닦는 일은 결혼하기 전까지 나의 청소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어느 날 친정집에서 밥을 먹다가 '엄마, 엄마 집 욕실은 물 때가 잘 안 끼는데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자주 끼는 걸까?'라고 말하자, 엄마는 '때가 안 끼기는! 엄마가 자주 닦으니까 그렇지'라고 답했다. 친정집 욕실이 늘 깨끗했던 이유가 엄마의 부지런한 청소 덕분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직장 생활하며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 탓에, 엄마가 욕실 청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둔탁한 것으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안개에 가려져있던 결계가 풀리며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결계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편광거울 같았다. 한쪽에서만 안을 볼 수 있는 유리 말이다. 친정집의 깨끗한 욕실의 한쪽 벽면에 존재하는 편광거울 너머, 쪼그리고 앉아 구석구석 솔질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부끄럽게도 서른이 되어서였다.
그림의 세계도 그렇다. 캔버스 위에 뿌려진 물감의 색채, 농도, 다양한 물질의 뒤엉킴 등 눈에 보이는 표면적 요소들 뒤에는 예술가의 생각, 감정, 의도, 그리고 창작 과정의 복잡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얼마나 광활하고 흥미로운지를 알게 되면서 그림 감상은 단번에 내 생애 최고의 즐거움이 되었다. 예술의 화려함과 황홀함의 이면에 수많은 고뇌와 갈등, 치열함과 외로움 같은 것들이 숨어있다는 것이 우리의 인생과 너무 닮아서, 나는 그 속에서 진정한 위로와 공감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그림에는 화가가 거친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고스란히 남아있기도 하다. 또 어떤 그림에는 복원을 위해 시행된 엑스레이나 적외선 촬영 등의 분석을 통해 표면 한 겹 아래 숨어있는 이야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사진보다 더 리얼한 묘사로 보는 이를 단번에 압도하는 신고전주의 거장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 그의 말년 작품 <파포스의 비너스 Venus at Paphos, 1852>는 화가가 가졌던 고민의 흔적이 캔버스 위에 그대로 남아있는 작품이다. 앵그르라는 이름이 조금은 생소하겠지만 <발팽송의 욕녀>, <터키탕>, <그랜드 오달리스크> 등은 어딘가에서 한 두 번쯤은 보았을 작품이다.
앵그르가 활동할 당시 프랑스 왕립미술아카데미는 엄격한 진급 단계를 모두 통과한 견습화가들을 대상으로 매해 공모전을 열어 최고로 뽑힌 사람에게 로마대상을 수여했다. 로마대상 수상자는 로마에서 최대 5년간 유학할 기회를 주었다.
어릴 적 학습지 표지에서 자주 보았던 그림, 앞발을 높이 쳐들고 있는 말에 올라탄 나폴레옹의 초상화로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가 앵그르의 스승이었다. 다비드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스물여섯의 나이에 로마대상을 탔지만 그의 제자 앵그르는 스물한 살의 나이로 로마대상을 탔다.
다비드는 엄격하고 균형 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 입체적인 형태의 이상적이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향했다.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강인하고 남성적이었다. 반면 앵그르는 스승의 화풍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더해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의 여성적인 그림을 그렸다. 특히 하렘의 여인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한 오리엔탈리즘 사조를 기반으로 한 백인 남성들의 망상과 관음증적 본능에 부합하는 에로틱한 주제로 적합하였다. 얼마나 여체 표현에 탁월했는지 그의 그림에선 붓이 지나간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여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촉감을 느끼는 기관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앵그르는 인체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해부학적인 구조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앵그르의 대표작 <그랜드 오달리스크>(위의 그림 참조)를 본 비평가들은 그림 속 여인이 일반인보다 척추 뼈를 세 개나 더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그러나 앵그르의 그림 속에서 발견되는 인체의 구조적인 결함은 그의 뛰어난 구성과 묘사 능력 덕분에 오히려 아름다운 생명력을 가지며 앵그르만의 독특한 미학적 특징이 된다.
앵그르가 특히 좋아하던 여인의 포즈가 있었는데, 관람객을 향해 등을 돌리고 앉아 오른쪽 귀와 이마가 조금 드러나도록 고개를 살짝 돌린 모습이다. 28세 때 그린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1808> 속 여인은 20년 후 <소욕녀-하렘의 내부, 1828>에 그대로 재등장하고, 83세의 노화가가 되어 그린 <터키탕, 1862>에서도 류트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앵그르가 특별하게 매혹을 느낀 그 뒷모습은 역시나 여인의 오른쪽 다리로 내려오면서 어색한 구조로 마무리가 된다.
이쯤에서 앞서 언급한 <파포스의 비너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 작품이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냈던 앵그르의 보기 드문 미완성작이라는 점과 그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였다. 비너스의 뒤편엔 무성한 초목이 있고, 초목 너머로 고대 사원의 지붕이 보인다. 오른손에 쥔 사과와 그 사과를 받으려는 어린 큐피드가 보인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구조적으로 어색한 그녀의 어깨와 등이 보이고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왼팔의 궤적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습작 스케치에서와 같이 왼손이 오른 팔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다시 오른쪽 허벅지 위에 살짝 올려놓는 모습으로 가닥을 잡았던것 같다. 그러나 이 자세도 최종 자세는 아니었나 보다. 그 앞의 어린 큐피드, 비너스의 귀쪽 헤어라인도 도 역시나 미완성인 상태다.
그림이라면 눈감고도 그릴 73세의 노화가는 왜 비너스의 팔을 그리는데 고민했을까? 수 많은 완성작 사이에서 왜 이 그림만큼은 왜 완성하지 못했을까?
아쉽게도 이 작품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 뒤에 숨은 이야기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점의 스케치를 보아야 한다. 왼쪽은 이 작품을 의뢰받았을 당시 앵그르가 그렸던 스케치 <파포스의 비너스; 연구, 1852>고 오른쪽은 그의 제자인 폴 장 플랑드랭(Paul Jean Fladrin, 1811~1902)이 같은 해에 그린 <안토니 발라이 부인, 1852>의 스케치다.
두 개의 스케치와 앵그르가 그린 <파포스의 비너스>를 비교해 보자. 앵그르의 스케치 속 비너스의 몸에, 폴 장 플랑드랭이 그린 스케치 속 여인의 얼굴이 조합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는가? 안토니 발라이는(Antonie Balay, 1833~1901)는 프랑스 리옹지역 국회의원의 딸로 상류층 여성이었다. 아무리 앵그르가 거장이었다고 해도 누구나 알만한 상류층 여성이 자신의 누드를 의뢰했을 리 없다. 이 작품을 소장한 오르세 미술관의 짤막한 설명에 따르면 이 초상화는 작업이 진행 중에 의뢰가 취소되었고, 앵그르는 취소된 초상화를 신화적인 장면으로 변형시켜 그려 나갔을 거라 추측한다. 결론적으로 실존 인물의 얼굴에 전문 모델의 누드가 결합된 이종 결합의 작품인 것이다. <파포스의 비너스는>는 의뢰인의 실물 초상화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갈 곳이 없어지게 되었고 앵그르는 이런 상황을 활용해 독창적인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혹시 모를 스캔들을 피하고자 화가가 죽을 때까지 소장하고 있다가 그의 사후엔 제자인 폴 플랑드랭이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도에 대해 안토니 발라이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나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누가 봐도 알만한 고귀한 상류층 여성의 얼굴을 한 비너스의 누드는 묘한 에로티시즘을 자극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같으면 바로 소송감이지만 말이다.
이미 수많은 여인의 초상화를 완벽하게 그렸던 앵그르에게 이 비너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사실 초상화를 그릴 때 손의 위치를 잡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모델이 편안하게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손의 위치를 잘 잡아야 하고, 손의 위치에 의해서 모델의 성격과 감정 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앵그르는 무엇 때문에 팔의 위치를 결정하지 못했을까?
그의 고민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내 머릿속에 짧은 영상 한편이 떠올랐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총알을 피하려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거의 누운 자세로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듯 총알을 피하는 장면. 카메라는 네오를 중심으로 360도 회전하며 그를 모든 면에서 포착했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나의 상상 속에선 네오가 있던 자리에 앵그르가 평생 동안 반복해 그렸던 목욕하는 여인의 뒷모습이 있었고 카메라가 그녀를 중심으로 180도 회전하며 점차 앞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바로 파포스의 비너스였던 것이다.
앵그르가 50년간 천착했던 여인의 뒷모습, 단지 캔버스 속 대상으로서의 여인이 아닌 한 남자의 가슴속에 각인된 영원한 이상향이자 그가 추구한 미의 완결 형. 보이는 것들의 뒤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관심을 가졌던 나처럼 앵그르 또한 뒷모습으로 점철되어 온 여인의 앞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파포스는 신화 속 비너스의 탄생지이며, 그곳의 비너스는 미의 본질 그 자체를 상징한다. 평생 이상향으로 삼아온 뒷모습의 여인을 이제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내려던 앵그르에게, 그동안 숨겨져 있던 왼팔의 위치는 아마도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어디에 두어야 완벽할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고뇌 속에서, 결국 그는 파포스의 비너스를 미완성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 미완성의 그림은 마치 열린 결말을 가진 영화와 같다. 미완성의 작품을 감상하며 느끼는 여운과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의 끝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특별한 즐거움을 여러분도 경험해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