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바라보는 혁신적인 관점
날씨가 더워지고 있는데 이열치열이라고 열 받는 문제 하나 풀어보자.
1948년에 만들어진 이것의 가격은 2012년 추산, 소나타 자동차 5133대, 갤럭시 스마트폰 18만1176개를 합한 금액과 맞먹는다. 쉽게 말해 1700억원이라는 말이다. 이것의 크기는 고작 가로 1.2m, 세로 2.4m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가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은 바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1912~1956)의 대표작 ‘넘버5’다. 사실 일반인들이라면 이 그림이 넘버5인지, 넘버 6인지, 넘버31인지조차 구분이 안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마구 페인트를 휘갈긴 듯한 그림이 1700억원이라는데 열 받지 않을 수 없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괴팍한 성격에 알코올 중독까지 있던 잭슨 폴락은 그의 잠재된 열정을 알아본 화가 리 크래스너와 결혼하여 안정을 찾고 자신의 추상화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다. 리 크래스너는 당시 가장 유명한 미술 수집가이자 막대한 부를 지닌 구겐하임가의 페기 구겐하임에게 폴락을 소개한다. 미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페기 구겐하임 덕분에 폴락은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고 그의 그림을 본 몬드리안이 “가장 신선하고 가장 독창적인 화면”이라며 극찬한 덕에 그는 미술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마침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미국은 역사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유럽의 예술마저도 넘볼 수 있는 예술가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미국판 피카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언뜻 보면 폴락은 운 좋게도 헌신적인 배우자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후원자, 추상화 선풍이라는 시대적 상황 덕분에 유명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가진 의미는 ‘혁신’이었다. 비평가 클레먼트 그린버그의 평가처럼 폴락은 역사를 바꾼 예술가였다. 삼각대 위의 놓여있던 캔버스는 평평한 바닥에 눕혀졌고, 다른 화가들이 사용하던 붓은 던져버렸다. 대신 캔버스 위로 걸어들어가 페인트 통을 들고 종횡무진하며 주제와 배경이 구분되지 않는, 화가와 작품이 떨어져 있지 않은 작품을 만들었다. 물감을 캔버스 위에 떨어뜨리거나, 튀기거나, 붓는 드리핑 기법을 사용하여, 완성된 작품의 미적 가치보다 예술가가 세상에 표출하는 행위에 가치를 두는 ‘액션페인팅’의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그로 인해 회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것이다.
최근 회자되는 담론 중 하나가 “급변하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혁신(革新)”이란 말이다. ‘혁(革)’자는 가죽을 뜻하는데 짐승의 가죽을 벗겨내 털을 없앤다는 의미다. 혁신이란 벗겨내기, 제거의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기존의 관점, 선입견, 성공 경험, 행동 양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제거하고 새로워지는 것이 혁신이다. 혁신을 위해 우리는 흔히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해야 한다”고 말한다. 패러다임이란 말을 처음 쓴 토마스 쿤은 그의 책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나 사고, 관념, 가치관이 결합된 총제적인 틀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16세기까지만 해도 태양을 포함한 별들이 지구 주변을 돈다는 천동설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별과 행성에 대한 혁명적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를 수집하여 지구야말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발상과 연구는 토마스 쿤의 말대로 과학혁명이며 그로 인해 근대적 우주관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과학계에서 사용하던 패러다임이란 말이 이제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자극들을 지각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는 법, 즉 ‘사고의 틀’, ‘관점’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단어가 되었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살았는가는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1년전쯤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최고의 혁신적인 발언은 “민중은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였다. 이 공직자의 소신(?)발언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매우 혁신적인 관점이었다.그가 세상을 보는 혁신적인 관점, 그 패러다임은 그리 쉽게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영화의 한 장면의 대사를 패러디 했다고 했지만 그의 태도를 보아하니 그 말은 그의 진심이었음이 확실해보였다.
그의 혁신적인 발언에 모두가 놀라워하던 다음날. 바로 그는 자신이 과음을 하고 과로한 상태였기에 본심과 다르게 말했다고 해명했다. 아! 이렇게 아쉬울수가~ 얼마나 오랜만에 만나는 혁신적인 발언이었는데, 바로 철회해 버리다니 아쉽다. 물고 뜯고 씹고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2018 지방선거가 끝나고 여당의 확실한 승리앞에서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에 의해 또 다시 국민의 개 돼지 분신설이 퍼지고 있다. 여당에 힘을 몰아준 국민들은 모두 개, 돼지라나 뭐라나.
일련의 사태를 보며 느끼는 것은 혁신이란 "도 아니면 모"라는 것~
단 "도"가 되어버리는 순간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파란 모자를 쓰고 투표를 한 개그맨을 두고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단히 심오한 시각적 철학을 가지신 분들의 형이상학적인 사고는 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일산에 가면 색깔로 점 봐주는 집이 있다. 거기 가서 앉아 그 철학을 기본으로 컨설팅 해주면 돈은 좀 버실텐데... 이 말을 어떻게 전해 드려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