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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0. 2018

피에르와 수탉

여행이 열 배 즐거워지는 그림 보는 법

돌발 퀴즈 먼저 풀고 시작하자!

아래의 세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좌측 그림의 노란 옷을 입은 사람, 우측 그림엔 앉아있는 사람)

좌측은 16세기경에 그리스 화파에 의해 그려진 그림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가운데 그림은 1350년경 목판 위에 템페라로 그려진 것으로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우측은 1605년 귀도 레니가 캔버스 위에 유채로 그린 그림으로 이탈리아 브레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우리가 만약 루브르 박물관 혹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브레라 미술관에서 이 그림들을 만났다면 어떤 느낌일까?

안다! 아무 감흥이 없을 거라는 걸


그림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야 수백 가지도 넘겠지만 그중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그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을 아는 것이다. 저녁 9시 뉴스의 리포터가 시청역 앞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을 붙잡고 인터뷰하는 장면을 봤다고 하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그 사람이 만약 내 남편, 내 부모님, 내 직장동료 아니면 5년 전 선봤다가 헤어진 상대라면 어떨까? 적어도 며칠 동안 그 이야기로 만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지겹게 하지 않을까?


위의 세 그림에 공통되게 등장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성 베드로' 사도다. 유럽의 미술 아니 정치, 사회, 경제 모두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사상이다. (물론 313년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부터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흔히 유럽여행을 하며 방문하는 박물관, 미술관의 많은 작품들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근대로 들어오며 그림의 주제가 달라지지만(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상들이 그림의 주제가 된다) 아무튼 우리가 유럽의 그림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조금 더 나아가 모든 유럽 국가들의 워너비 문화인 그리스 로마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이건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자.


위의 세 인물이 베드로 사도임을 어떻게 아느냐고?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힌트가 숨어있다.

바로 열쇠다. 베드로는 원래 시몬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는 베드로(페테로, 바위)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예수의 말로 첫 번째로 소명을 받게 되며 예수에게 천국 문의 열쇠를 받게 된다. 그렇다 베드로를 상징하는 사물은 열쇠다. 미술에선 어떤 인물을 상징하는 것을 지물 혹은 어트리뷰트라고 말하는데(어트리뷰트를 해석하는 학문을 이코노그라피, 도상학이라 한다) 이런 지물들은 그들의 행적과 관련된 절대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지물을 알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이해는 관심을 낳고,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 그림 앞에 서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성 베드로가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산 피에트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은 가톨릭 총본산 교회로 로마 바티칸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그 모습만으로도 경외와 감탄의 대상이다. 구글맵에서 찾아본 산 피에트로 대성당인데 광장의 모습을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열쇠 구멍 모양으로 보인다면 맥락을 잘 짚어내는 센스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해주자.  

                                                                 


성 베드로는 그림이나 조각에 표현될 때 흰 곱슬머리와 짧은 턱수염이 특색이고, 이미 말했듯 두세 개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당했으므로  순교의 십자가가 지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 검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체포되었을 때 마르코스의 귀를 자른 것과 관련된다. 또 예수가 닭이 울기전 자신을 세 번 부정할 것이라고 예언하자 그럴 리 없다고 하던 베드로는 실제 예수를 부정하게 되고 수탉이 울자 그제야 뉘우쳤다는 일 때문에 때론 수탉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이번엔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성 베드로 청동상을 보자.(=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산 피에트로 청동상을 보자)

      

좌: 왼 손에 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   우: 베드로상의 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청동인데도 닳아 버린 성 베드로의 발


서구인들에게 교회란 태어나서 세례를 받고 교육을 받으며 결혼과 장례를 치르는 곳으로 생애 전반에 걸쳐 뗄래야 뗄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림이 유일했을 것이고, 글을 읽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풍부한 시각자료를 더해 신앙심을 고취시켜야 했던 시대였음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기독교에 기반한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의 앎을 넘어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 마지막 복습 퀴즈!

아래 사진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면 입구의 3개의 문 중 가장 중앙에 있는 최후 심판의 문 양쪽 옆에 새겨진 조각이다. 왼쪽 6명(위쪽 사진), 오른쪽 6명 중(아래쪽 사진) 성 베드로는 어디에 있을까?



모두 알겠지만 성 베드로를 각 나라말로 하면 pietro(이탈리아), Peter(영어, 독일어), Petrus(라틴어), Pierre(프랑스어)다.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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