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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l 31. 2018

리더는 성인(聖人)이 아니다

갈림길에선 헤라클레스의 선택


[Leader's Big Picture]

리더의 미래지향적 전략으로서의 Big picture와 미술사에 남아있는 위대한 그림으로서의 Big picture.

두 개념 사이를 유영하는 캔버스 위 리더십 



공기관에서 일하다가 퇴직을 앞두고 계신 선배님이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에서 슬쩍 넋두리를 하셨다.


오래도록 리더의 자리에 있었는데, 그 자리는 정말 잘 해야 본전이더라. 그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업무에 관한 한 완벽을 기하며 일했고, 후배들을 위해서 예산을 쪼개고 쪼개 끊임없이 교육도 시켜주고 술자리에선 늘 사비를 털어 술도 사주고 쉬는 주말도 없이 후배들을 챙겼는데, 정작 퇴직을 1년 정도 앞두고 있는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는커녕 이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 뒷방 늙은이 취급한다는 거였다. 


임금 피크제 기간인 요즘, 후배들과 식사라도 하게 되면 자신과 밥을 먹어주는 후배들이 고마워 모두의 식사값을 내곤하는데 정작 식사를 마친 후배들은 고맙다는 살가운 인사 한마디 없이 삼사 오오 짝지어 자기들 마실 커피만 사 들고 사무실로 냅따 들어가버린다는 거다. 


소주 한 잔을 들이키시며 스치듯 들려주신 선배님의 30년 노고가 왠지 애틋하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좋은 리더, 본받을 만한 상사, 존경받는 어른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런데 좋은, 본받을 만한, 존경받는 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혹시 이 단어들이 리더를 수식할 경우 그 의미가 '완벽함'을 은연중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슬쩍 걱정이 된다. 


업무 능력도 뛰어나고, 조직 내 의사소통도 원활하고, 부하직원의 고충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고,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으며, 타인의 감정에는 세심하고, 말수는 적으나 들어주는 데는 너그럽고,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경험을 살려 매끄럽게 처리하고, 자신의 공은 감추고, 부하직원의 기는 살려주는 리더.  자신의 출퇴근 시간은 엄격하나 부하직원의 지각이나 칼퇴근에는 너그러운, 자신은 주말근무를 마다하지 않으며 부하직원의 워라밸을 위해 애쓰는, 임원들에겐 공손하면서도 부하직원들과는 격의 없이 지내는 그런 리더가 좋은 리더, 본받을 만한 상사, 존경받는 어른이다라는 기준을 알게 모르게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쩜 우리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의 기준을 세워놓고는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른이 없네, 조직에서 나의 롤모델이 되어줄 상사가 없네 하며 평범한 리더들의 삶 자체를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간이면서 그리스 신화의 최고 영웅이 된, 그리고 죽어서 신의 반열에 오른 이가 바로 헤라클레스이다. 바람기 만렙인 제우스가 알크메네의 남편으로 변신한 후 결합하여 얻은 아들이기에 혼외자(?)인 헤라클레스를 보는 헤라 여신의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집요한 박해를 받으며 온갖 시련을 겪지만 끊임없이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며 결국 용맹과 지혜를 겸비한 위대한 영웅으로 성장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430–354 B.C.)이 쓴 ‘소크라테스의 회상’에 나오는 우화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에는 막 청년기에 접어든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지만 갈림길 앞에서 두 여인을 만나게 된다. 한쪽엔 농염하게 생긴 여자(vice, 악덕)가 헐벗은(?) 모습으로 자기와 함께 길을 가자고 했다. 그 길은 고통이 없는 길로 육체의 욕망은 물론 인간의 모든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진정 그 길에는 쾌락과 욕망의 실현만이 있어 보였다. 또 다른 한쪽에선 단정하고 우아한 여자(virtue, 미덕)가 자신을 따라 오라며 손짓하고 있다. 그 길의 끝엔 정의와 참된 행복이 기다리고 있지만 가는 길은 고통스럽고 힘들것이라고 말했다.  


헤라클레스는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당연히 고통의 길이다.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란 말은 힘들지만 올바른 길을 택하는 중요한 결단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많은 화가들이 이 선택의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그렸다. 미덕과 악덕의 여신은 시대에 따라 아프로디테와 아테나로 혹은 탁월함을 상징하는 아레테 여신과 악덕을 상징하는 카키아 여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갈림길의 헤라클레스> 세바스티아노 리치, 1710~1720, 



<갈림길의 헤라클레스> 안니발레 카라치, 1596



우리는 헤라클레스의 선택을 통해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인간이 선택해야 할 것은 '정의와 선, 그리고 궁극적인 행복이다' 정도의 자칫 교조적인 가르침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자유롭게 수용되어야 할 것이고,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대척점에 있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선택 중 우리는 오로지 하나의 길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은 '길'에 비유되곤 한다. 삶이란 시간의 흐름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선택과 시간의 흐름을 모두 포함한 은유이기 때문일 터, 우리는 한쪽의 길을 선택하여 걷게 되면 결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이러한 삶의 통찰이 잘 드러나 있다. 


삶의 매 순간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이란 반드시 선택하지 않은 것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 이야기하고 있는 좋은 리더, 본받을 만한 상사, 존경받는 어른의 모습이란 이 두 가지 선택이 혼용되어 막연하게 그려진 이상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나? 


이는 마치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날카로운 창과 어떤 날카로운 창도 막을 수 있는 단단한 방패의 모순되는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만 좋은 리더, 본받을 만한 상사,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당연하게도 그런 리더의 모습은 존재할 수 없기에 이상적인 리더를 바라는 후배들에겐 그런 리더의 부재가 답답할 것이고 리더들 자신은 그런 이상적인 리더가 될 수 없음에 괴로울 것이다. 



그런 두 가지 모순적인 이상이 섞여있는 이상적인 어른, 리더라면 말은 적게 하되 소통은 원활하여야 하고, 자신의 감정은 표현하지 않되 부하직원의 감정은 알아채야 하고, 모든 답을 알고 있되 답을 말해주면 안 되고,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을 해 주되 조급하면 안되고, 갈등과 고통 중에도 그것에 초연해야 하는 것! 이런 것이 좋은 어른이고 리더라면 나는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싶지도 좋은 리더가 되고 싶지도 않다. 아니 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될 수가 없다. 


좋은 리더가 된다는 것은 모든 좋은 선택을 모아놓은 합집합의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걷는 길은 고통스럽지만 목적지가 이상이라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을 서로 공유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리더 또한 끊임 없이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단 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누구에게나 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자.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지 말자.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불편해도 좋은 것'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자. 


리더는 聖人이 아니라 여전히 성장중인 成人일 뿐이다. 




이수정  예술 여행에서 만나는 통찰의 순간을 담는 인사이트래블러 (insigh-t-raveler)

기업 구성원의 인문-예술력 향상을 위해 강연을 하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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