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유폐하는 시간을 마련하자.
[Leader's Big Picture]
리더의 미래지향적 전략으로서의 Big picture와 미술사에 남아있는 위대한 그림으로서의 Big picture.
두 개념 사이를 유영하는 캔버스 위 리더십
"김대리! 이번에 진행할 프로젝트 관련해서 1차 시장 조사할 업체 리스트를 금요일까지 정리해서 주게"
김대리는 과연 금요일 몇 시까지 이 작업을 완수해서 보고해야 할까?
만약 '금요일 오전 출근한 직후'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리더일 확률이 높고, '금요일 퇴근 전'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실무자일 확률이 높다. 물론 리더가 업무를 지시할 때 "금요일 오후 2시까지 보고해주게"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리더의 소통법이지만 고맥락적 대화를 구사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그냥 금요일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리더가 되면 실무자일 때와는 다른 시간 개념을 갖게 된다. 리더는 자신의 시간을 관리함과 동시에 부하직원의 시간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업무 진행과 마감을 점검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 팀원은 물론 조직 안의 다른 팀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이는 마치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와 같다. 겉으로 보기에 리더는 실무자처럼 꽁지에 불이 붙은 듯 바빠 보이지 않지만 물속에 담긴 백조의 발이 겁나 열심히 움직이듯 리더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생각만 하는가? 수없이 많은 선택과 결단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늘 리더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책임과 권위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듯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리더들이 가지는 선택과 결단이 얼만큼 부담스러운지는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가 재임 시절 당시 시카고 시장인 램 임마뉴엘과 나눈 이야기에 잘 드러나 있다. 그 둘은 퇴임 후 하와이로 건너가서 티셔츠 가게를 여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더는 아무런 결정도 내릴 필요가 없도록 오로지 미디엄 사이즈의 흰색 티셔츠만 파는 가게 말이다.
나의 첫 직장 직속상관이던 OOO실장님은 출근해서 스포츠 신문을 정독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고, 점심 식사 후엔 사무실을 찾아오는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마친 거래처 사람들은 담당 실무자들과 본격적인 업무이야기를 나누었고 자리로 돌아간 실장님은 아침에 보았던 신문을 다시 앞 뒤로 휘휘 넘기며 마치 복습을 하듯 신문을 살폈다. 사회 초년생의 내가 보기에 매우 불합리한 장면이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스포츠 신문을 보면서도 아마 머릿속으로 엄청 바삐 일을 하셨을 거다. 그래서 말인데 실장님께서 커피 타 달라고 했을 때 제대로 씻지 않은 컵에 커피 타 드린 거 진심으로 죄송하다.
리더들은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인간의 워킹 메모리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정보를 저장하거나 처리하려고 하면 뇌는 과부하가 걸린다. 뇌에 과부하가 걸리면 기억해야 할 것을 잊거나 제대로 된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뇌는 휴식을 통해 정보와 경험을 정리하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축적할 것은 축적한다. 잠을 자는 동안 뇌는 이런 활동들을 하는데 많은 리더들은 절대적으로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아마도 리더들의 뇌는 늘 과부하가 걸린 상태일 것이다.
아래의 도소 도시의 그림 <Jupiter, Mercury and Virtue>을 보자.
도소 도시(1479? ~ 1542)는 르네상스 번성기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화가다. 조르조네의 영향을 받아 환상적인 색채를 구사하는 그는 종교화와 신화적 주제의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위의 작품 <Jupiter, Mercury and Virtue>에는 제우스와 헤르메스 그리고 덕(德)의 의인상이 등장한다. 왼쪽의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제우스인데 예술가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제우스의 뒤편에는 다급한 모습의 virtue(미덕, 德)가 제우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러 온 듯하다. 가진 것은 많지만 혐오스럽게 생긴 재물의 신 플루토스가 그녀에게 치근덕거리며 구애하자 그녀는 제우스에게 플루토스를 막아달라 부탁하려는 중이다. 그러나 제우스는 그림에 몰입한 상태로 보이고 그런 제우스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헤르메스가 그녀를 제지하고 있다.
매일매일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는 일터에서 리더는 매일 급한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시간이 반복된다면 나중엔 작은 불 조차도 끌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 리더에겐 제우스가 그림을 그리듯 외부와 차단된 몰입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가롭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 신들의 왕이었던 공사다망한 제우스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그런 사치스러운 시간이 리더들에겐 꼭 필요하다. 그리고 헤르메스가 제우스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차단해주듯이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유폐하자.
빌 게이츠는 일 년에 두 번 인터넷을 끊고 잠행하는 생각 주간을 갖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호숫가 오두막에 홀로 머물며 독서와 사색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고 한다. 스스로를 유폐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꼭 이렇게 시간을 내고 물리적인 장소를 바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마이클 조던, 스티브 잡스,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 짧게 명상을 하고.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는 밤에 설거지를 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 자신을 잠시 유폐한다. 처칠은 낮잠을 자면서 자신을 유폐하곤 했는데 독일군의 공습을 받을 때도 낮잠을 잤다고 한다. 또한 페이스 북의 저커버그와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는 매일 밤 아이들을 직접 재우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리더들이여! 부디 자신을 유폐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장치를 마련하시라! 그곳은 집이어도 좋고 분위기 좋은 카페여도 좋다. 제프 베이조스처럼 저녁 설거지를 도맡아 해도 좋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지만 이왕이면 업무와 동떨어진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조금 더 수월하게 자신을 유폐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업무 생각을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술관을 찾아가 혼자서 그림을 보는 일은 어떨까? 강추다!
이수정 ㅣ 예술 여행에서 만나는 통찰의 순간을 담는 인사이트래블러 (insigh-t-raveler)
기업 구성원의 인문-예술력 향상을 위해 강연을 하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