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역 엘리케이터 안에서 핀 꽃
무덥다는 말로는 부족한 요즘, 지하철의 냉방시설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친정집이 있는 문산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경의선은 승객이 거의 없이 출발하는 탓에 특히나 더 시원하다. 그러나 15분이라는 배차간격 때문에 자칫 전동차를 놓칠까 매번 긴장하게 된다.
그 날도 전동차 출발시간 1~2분을 남겨놓고 역에 도착했다. 잰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고, 이미 엘리베이터는 사람들로 꽉 차서 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가까스로 올라탄 엘리베이터 안을 둘러보니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평균연령이 70정도 되는듯 했다.
왠지 민망한 마음이 들어 얼른 가방에서 썬글라스를 꺼내 썻다. 천천히 1층에서 4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안을 가만히 둘러보니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휴~ 하고 한숨을 몰아쉬는 할머니, 땀을 닦으며 연신 부채질을 하는 할머니, 모두 힘들고 지쳐 보였다.
그 사이에 키가 작은 할아버지 두 분이 서 계셨다. 좁은 공간에 다닥 다닥 붙어 서있는 시간이 답답하고 불편할만도 한데 어르신들 모두 숨도 작게 쉬시며 옆 사람들을 배려하는듯 보였다.
운행 속도가 느린 탓에 다들 이쪽 저쪽 두리번 거리고 있는 엘리베이터의 침묵을 깨고 할아버지 한 분이 말씀하셨다.
"아! 이거 완전 꽃밭이구만..."
갑자기 엘리베이터 안엔 묘한 느낌이 감돌았다. 입꼬리에 힘을 주고 참으려 했지만 할머니들은 모두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한 분의 웃음이 물꼬를 텄고 그 중 가장 입담있어 보이는 할머니가 외쳤다.
"아이구... 이거 뭐 꽃이랬자 늙은 꽃이지..."
여기저기서 하하 호호 웃음이 이어졌다.
"하하하...꽃이래... 아이구! 참말로..."
엘레이터 문이 열리고, 예닐곱분의 할머니들이 내리는데, 참으로 이상한것은 조금전 까지 힘들게 엘리베이터를 탔던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아까보다 훨씬 가벼워보이는 것이었다. 얼굴엔 미소를 머금고 사뿐사뿐 걷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보나 정말 앙증맞은 꽃 같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여성에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많아지며 또래의 남성에 비해 조금더 사회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된다고 한다.
반대로 남성들은 나이들어가며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들며 오히려 감수성이 예민해 진다. 드라마를 보고 눈물흘리는 아버지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남성과 여성, 어느 쪽이 우세한것이 아니다. 각각의 특성이 다를 뿐, 그 다름은 서로 어울리고 보완함으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것이 아닐까? 서로를 빛나게 하는 존재. 그러나 요즘의 극단적인 이성에 대한 혐오를 보면 어찌하다 이런 상황이 되어 버렸는지 속상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