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음악 -양차대전과 냉전, 그리고 할리우드
나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지만, 왜 클래식 음악계는 대략 백년전까지의 레파토리만 사랑하고 연주하는지, 왜 ‘현대음악’은 백년째 계속해서 대중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사랑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최대한 좋게 봐주어야 ‘흥미롭다’에 그치는 아방가르트 음악이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한 1980년대에는 그것이 기본값이었고, 지금까지 거의 그러했던 것 같다.
내 깜냥으론, 화성음악의 발전단계에 따라 그것이 최고조로 발달한 다음에는 해체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백년전 ‘당대’ 모더니즘의 정당하고도 자연스러운 순서였고, 그래서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프로코피예프 등의 현대 음악가들이 일단 ‘현대음악’을 만든 다음에는, 그 현대성-전위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다시 뒤로 돌아서 전통적인 화성음악의 안온한 세계로 후퇴하는 음악은 ‘당대 최고의’ 음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평론가와 관객들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는 것이고, 영화음악이나 뮤지컬 등의 ‘실용적’인 음악에서는 여전히 화성적인 음악이 쓰였지만 ‘순수 음악’의 준엄한 레벨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하기에 경원시되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었다.
그래도 1980년대에는 정통 클래식보다는 ‘경음악’이라고 하던 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꽤 인기있었고 특히나 팝페라라는 장르를 창시한 키메라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나중에 21세기가 된 다음 어딘가에서 그런 글을 읽었는데, 그때 경음악과 팝페라가 망해가던 클래식을 살렸다고도 한다. 아무튼 영화음악도 KBS 93.1mhz 클래식 채널에 종종 등장했고 뮤지컬도 자주 등장했다. 내가 2005년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을 보러 갔을 때 어? 왠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음악인데 이상하네… 혼란스러웠던 것은 곰곰 생각해보니 1980년대에 이미 라디오로 들어본 적이 있어서였다.(들었으나, 잊어버렸다..)
아무튼 이러한 ‘순수 예술’의 구분선은 미술에도 있다. 인상파 이후 입체파, 표현주의의 폭발과 파괴 이후의 미술은 순수 미술과 상업 미술로 뚜렷이 구분되는데, 순수 미술쪽에서 과거의 ‘실제와 똑같이 그린 아름다운 풍경화나 초상화’를 높이 쳐주는 것은 보지를 못했고, 화가의 독특한 개성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품만이 논의할 가치가 있는 예술이었다. 일단 서양화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별생각없이 ‘클래식 독재’를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심 ‘20세기의 음악’은 영화음악이라고 생각했다.(모든 음악 중에 왕이라는 뜻이다.) 실은 ‘현대의 음악’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지금 21세기에는 이미 영화음악에서 게임음악으로 (유행이? 중심이?)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21세기와 구분하는건 필요하다. 재즈와 블루스, 포크, 락, 테크노, 월드뮤직 등의 수많은 훌륭한 음악들이 있는데 또 뮤지컬도 있는데 영화음악을 꼽은건 아무래도 대중성과 구조적인 깊이에 가중치를 주어서, 그리고 클래식과 영화를 좋아하는 내 취향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었다.
실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약간의 균열은 있었다. 푸치니가 20세기초까지 활동했고 투란도트는 푸치니 사후 무려 1926년에 초연되었다는 이야기가 굉장히 생경했다. 또 양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차이콥스키 다음엔 라흐마니노프, 그 다음에 쇤베르크 등 현대음악이 올것 같은데 라흐마니노프가 쇤베르크와 비슷한 시기 태어나서 활동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기 이후 미국에 이주해 주로 피아니스트로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의 20세기’라는 것이 클래식의 세기-17, 18, 19세기와 딱 어떤 선이 그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어보니 알게 된 것은 내 머릿 속에 있던 선, 즉 우리가 사는 현재와 과거의 클래식 시대를 돌이길 수 없이 갈라버린 깊은 크레바스를 만든 것은 양차대전과 파시즘, 냉전이었다는 것이다.
즉 1차 대전후 독일에 나치즘이 득세하자 유태인으로 분류당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당시에 열린 헐리우드 유성영화의 시대에 걸맞는 수준높은 영화음악을 썼다. 그런데 우리는 헐리우드 음악을 깎아내린다. 순수하지 않고 정통하지 않은 상업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쓴 극음악 및 연주회용 음악 전체와 그들의 제자들로 이어간 전통 역시 모두 부정한다. 마치 미국에서 작곡된 모든 음악을 부정하는 것만 같다. 그렇게 우리는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잃었다.
그러는 한편, 양차대전 사이의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치하에서 당대의 음악가들은 파시즘에 부역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부역하여 살아남은 그들의 작품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자 몽땅 삭제를 당하게 된다. 푸치니는 병으로 일찍 죽어서(1924년) 아슬아슬하게 파시스트 정권과 연관이 없었다고 한다. 만약 건강해서 몇십년간 더 활동했다면 우리는 지금 라보엠도 토스카도 투란도트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참… 무시무시한 역사다. 그렇게 우리는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잃었다.
그리고 1차 대전 이전에 유럽에서 개화한 현대음악-무조음악, 12음 등의 아방가르드 음악은 나치즘 치하에서 ‘퇴폐음악’이라고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2차 대전후 마치 화성음악을 쓴 작곡가는 나치 부역자이고, 비화성음악을 쓴 작곡가는 박해받은 자인 듯한 감별법까지 나오게 된다.
그런데 러시아 혁명후 소련에서는 처음엔 현대음악을 옹호했으나 스탈린 치하에서는 인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라며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문학이나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양식만이 ‘올바른’ 것이 된 것이다.
그러자 2차 대전후 냉전기 미국에서는 소련에서 박해받는 ‘현대음악’이나 ‘모더니즘 미술’ 등을 옹호하면서 자기네 체제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20세기 초반 반짝 개화했던 전위음악은 무려 백년동안을 여전히 ‘전위’인 채로 현대음악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하기도 힘들고 감동은 더더욱 어려운 현대음악을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은 그저 교양이 부족한 일반이라서 그렇지 하는 자조적인 반응이 배양되는 지금의 세팅이 이미 반세기 전에 완성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잃었다. 파시즘에 부역했다고 삭제하고, 헐리우드 상업주의에 물들었다고 삭제하고, 화성주의로 퇴보라고 삭제하고, 클래식의 양대 강국인 독일과 이탈리아도 아니면서 감히 주류로 나설 수 없다는 미국의 지나친 겸허!?로 인해 삭제되고 남은 것은 백년전까지의 음악뿐이다.
클래식 음악이란 단지 유럽에서 기원한 몇백년 된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옛날에 발터 벤야민이 ‘나는 출간된지 10년 이상된 (살아남은) 책만 읽는다.”고 했는데, 클래식 음악은 작곡된지 100년 이상된 곡만 음악이다. 그리고 그 살아남는다의 요건이 20세기로 오면 안타깝게도 대중의 인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혹은 미학이론적 지뢰를 피했는가라는 점이 비극이다.
나는 19세기가 20세기로 연속하여 발전하지를 못했다는 점이 정말 아쉽고 안타깝다. 파시즘에 부역했다고 삭제한 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20세기에 화려하게 꽃피어난 영화 음악으로 이어지는 클래식의 전통을 부정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20세기의 극음악인 영화음악과 뮤지컬은 이미 19세기까지의 오페라의 자리를 대체했다고 본다. 더이상 오페라는 주류 극예술-대중적인 오락이 아니고 소수 매니아의 비주류 음악이다. 클래식 중에도 바로크가 좋고 고음악이 좋은 내 취향은 역시 비주류이지만, 그래도 클래식의 전통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잡아서 가난해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좀 가난해도 큰집은 좀 살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푸치니 이후의 오페라는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왠지 재미없을 것 같아서 ‘창작 오페라’는 가보지 않지만, 최소한 보조금을 받지 않고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보러갈 마음은 있다. 현대음악에 대한 지금 클래식계의 ‘제한이 많은’ 미학적 기준을 고려할 때, 갈 날이 요원하긴 하다. 그래도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이름 중 ‘코른골트’ 하나 빼고는 도무지 들어본 적도 없는 수많은 ‘삭제된’ 작곡가들의 작품을 복원하는 음악회라면 좀 관심이 가긴 한다.
사실 아방가르드 음악은 20세기 초의 시대적인 상황, 작곡가의 개인사, 그리고 아직 젊음이라는 제한 속에서만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마치 20대에는 락음악이 좋다가 나이 더 먹으면 포크음악쪽으로 취향이 기울듯이?! 요즘도 가끔 영화음악이나 무용음악으로 불협화음 등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적절하게!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다양성 차원에서 좋은것 같다. 허나 큰 줄기는 여전히 화성음악이지 않겠나 싶다. 나이 들어서 클래식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어떤 모험을 떠나든지 간에 결국엔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
그리고 정말 안타까운 것은, 다른 20세기의 음악들-영화음악, 뮤지컬, 재즈, 블루스, 포크, 락, 테크노, 월드뮤직 등도 다 훌륭하고 멋지지만 클래식 음악인들은 그 훈련과 공부의 강도와 깊이가 정말 남다른데, 그 고급인력들을 너무 좁다란 영역 안에 가두고서 다른 영역과 넘나들며 발전하는 길을 막는다는 것이… 정말 크나큰 손해 같다.
이 책을 쓴 존 마우체리는 미국 태생의 지휘자로 나치독일의 박해를 피해 헐리우드로 망명한 음악가들의 작품을 되살리는 작업과 연주회를 많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