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고 시작하는 작은 시도에 대하여
한 달 여 만에 발행한 글이었다. 두 달 전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고 하루 최소 한 문장 이상 쓰고 있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글을 붙잡고 있었다.
출근길에 늘 들리는 편의점 아저씨가 우연히 말을 걸어왔고 마음이 동했다. 아저씨와의 대화를 메모해뒀다 일과 육아에서 모두 퇴근 후 글을 썼다.
특정 대상을 향한 날카로운 글도, 길고 복잡한 내용도 아니었다. 30분 만에 후딱 써 내려간 일기. 다 쓰고 나니 완벽주의 성향이 발동해 바로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지만 다음 날 퇴근길 사진까지 찍어 구색을 맞춘 뒤 가벼운 마음으로 발행했다.
그날 밤 일이 벌어졌다. 1,000 단위 조회수 돌파와 라이킷 알람이 이어졌다. DAUM 메인 탭 어딘가에 노출된 게 분명했다. '하필 이런 대충 쓴 일기가...' 등줄기가 서늘한 채로 어영부영 조회수 2만이 넘었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워 글을 삭제할까도 싶었지만 귀한 피드백이니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단한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닌 짧은 글이라 더 신기했다. 제목으로 후킹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별생각 없이 발행한 글이 조회수 하드캐리라니. 공들여 쓴 글은...(말잇못)
콘텐츠 만드는 게 일이다 보니 늘 완벽하게 정리되고 완성된 것만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일 할 땐 성에 찰 때까지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끝을 본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난 이것저것 기웃대기 바쁜데 일 외에 새로운 시도를 할 때도 완벽에 대한 강박을 버리지 못했다.
문제는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다. 아이들이 없을 땐 무엇이든 그저 뛰어들어 에너지를 쏟으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일과 육아 외에는 쏟아부을 시간도, 체력도 없다.
나에게 허락된 건 틈틈이 그리고 조금씩이었지만 인정하기 어려웠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무리하면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무리하다 탈이 났다. 2년 전 웹진 <마더티브> 창간 후 생애 처음 한포진을 겪고 매일 남편과 싸웠던 때였다.
인정해야 했다. 밤을 새우기보단 출퇴근 길, 점심시간, 아이들을 재우고 누웠을 때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하나씩 줄여나갔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일 외에 더 하고 싶었던 글쓰기, 문화살롱이 그랬다. 틈틈이, 조금씩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도 사이드 프로젝트로 <마더티브>와 <창고살롱>을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최근 시작한 글쓰기는 한동안 방치하다시피 한 나를 살피기 위한 과정이다. 일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의 마음을 챙기는 글쓰기.
절대 무리하지 말자고 그저 메모에 가까운 글쓰기일 뿐이라고 다짐했건만 어느새 또 나는 끝을 보려 하고 있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완성'이라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글들을 서랍에 쌓았다. 그러다 일기를 썼고 발행을 했고 노출이 됐고 2만 조회수를 얻었다.
힘 빼고 시작하는 작은 시도 또한 의미 있다는 걸 자꾸 잊는다. 엄마가 된 후 일에서도,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도 작은 시작들을 쌓아 성과와 기회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거창하고 완벽한 것을 위해 무리하기보다 작더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퇴근길 휴대폰으로 마무리한 글, 자기 직전 발악하는 애들을 재우며 퇴고하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 힘 쭉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