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이 커피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매일 이렇게 많이 사가시고.
출근길에 거의 매일 들르는 회사 앞 편의점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계산대에 올려진 컵 커피 세 개. "아, 그러네요"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매일 아침 똑같은 커피를 두세 개씩 사가는 나를 편의점 아저씨는 언제부터 알아챘을까. 처음엔 관심 없었겠지만 언젠가부터 매일 똑같은 커피를 사가는 게 눈에 띄었나 보다.
나를 전혀 모르는 이가 알아챈, 취향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취향.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알아차려 주니 내심 반가웠던 나의 취향.
조직에서만 10년이 넘게 일했고 앞으로 살 10년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때보다 깊이 자문하는 요즘. 편의점 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새삼 깨닫는다.
내가 지금 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이런 것들이 비로소 일부러 티 내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도 알아챌 나의 취향이지 않을까. 편의점 아저씨가 알아차린 나의 커피 취향처럼.
영화 진짜 좋아하는구나, 여행 자주 다니네, 책 많이 보잖아, 요즘엔 글 자주 쓰네, 힘들다면서 춤 수업은 안 빠지고, 깊이 사귄 친구가 많은 거 같아.
생각해보니 내가 들어왔던 얘기들.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아서 복잡한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만큼은 정리되는 사람이었구나. 싸이월드,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오랜 시간 남겨온 SNS 흔적들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도 있다. 책, 영화, 운동, 글쓰기, 여행, 그리고 사람.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소홀했던 건 아닌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금 꾸준히 하고 있는 것에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 내가 산 컵 커피는 버터 커피. 대체로 달디 단 컵 커피가 아니라 저탄고지 열풍에 힘입어 한 편의점에서 PB상품으로 출시한 달지 않은 커피다. 버터 커피 외에 컵 커피는 먹지 않는다.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앞으로 컵 커피 구매는 줄이기로.
+ 후일담. 아저씨는 버터 커피가 행사를 잘 하지 않는 품목이라며 "행사할 때 많이 사서 '나만의 냉장고'에 담아두면 좋을 텐데"라고 나 대신 아쉬워했다. 난 "사무실에서 먹는 거라서요"라며 ‘나만의 냉장고’를 만들지 못하는 아쉬움을 나눴는데 얘길 끝까지 들은 회사 동료가 '나만의 냉장고'는 편의점 앱 기능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점심 테이블 일동 대폭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