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성 Aug 02. 2021

사랑니 빼면 얻는 흔한 깨달음

겉으로 멀쩡해도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건 뭘까


고구마 말랭이를 먹다 20년 전 때운 금니가 떨어졌다. 엄습하는 두려움. 금니를 다시 때우는 것보다 더는 미룰 수 없는 '그것'을 마주해야 한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누워 자란 사랑니가 있었다. 1년에 한 번 건강검진받는 직장인이 된 이후 10년 동안 해마다 잔소리를 들은 귀찮은 사랑니였다.


"사랑니 빼셔야겠어요. 어금니에 닿아 있어서 금방 썩어요. 위치가 안 좋은데... 대학병원 가셔야 할 수도 있어요."
"그냥 여기서 빼 주시면 안 되나요?"
"음... 여기선 못 해요."
'하아... 귀찮아귀찮아'



귀찮고 무서운 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거 아닌가요


10년을 방치했다. 사랑니와 어금니 틈이 썩어가는 게 보였지만 '아프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썩은 부위를 갈아 내고, 때우고, 씌우고… 일이 커질 걸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폭풍 양치로 달랬다. 치과 치료는 무섭고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여전히 통증은 없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게 이번엔 꼭 발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것처럼 잔소리가 이어졌다.


의사는 애당초 방문 목적이었던 떨어진 금니 얘긴 스치듯 끝내고 이게 본론이라는 듯 사랑니 얘길 꺼냈다. 흘려들을 준비를 하는데 "가능하시면 빨리 예약 잡고 빼세요" 눈이 번쩍 뜨이는 반가운 얘기가 들렸다.


"여기서 뺄 수 있나요?"
"네. 빼는 건 문제가 아닌데 옆 어금니가 많이 썩은 거 같아요. 신경치료가..."
"할게요. 뺄게요."


운 좋게도 그곳은 사랑니 잘 빼기로 소문난 힘 좋은 치과. 대학병원까지 알아봐야 하는 귀찮음과 혹시 잘못될까 무서웠던 두려움이 해소된 순간이었다. 10일 후, 다시 치과를 찾았고 드디어 누운 사랑니를 뺐다.


겉은 멀쩡, 속만 썩는 게
사랑니뿐만은 아니잖아


수년간, 겉으로 멀쩡했고 아프지도 않아 사는 데 문제없었으므로 늘 후 순위로 밀렸던 누운 사랑니. 속은 깊게 썩어있었다. 맞닿아 있던 어금니 옆구리도 많이 썩어 꽤 깊이 파내야 했는데 신경치료는 당연했다. 큰돈이 드는 대공사였다.

입속 깊숙한 데 자리 잡고 존재감 없이 썩어가고 있었던, 혼자로는 부족해 곁의 옆니까지 썩게 만든 내 유일한 사랑니. 언제부터 있었을까. 10년도 더 됐을 텐데 참 몰라줬고, 오래도 미뤘다.

무언가 내 안에서 또 썩어가는 건 없을까 생각한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이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 것, 남들은 안 괜찮다는데 나는 괜찮다고 우기며 들여다 보기를 미루는 것, 고쳐야 할 제때를 놓쳐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내가 누워 자란 썩은 사랑니가 되어 곁의 누군가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혹은 반대일 수도. 나를 썩히는 불필요한 사랑니는 또 누구인가. 나 혹은 상대방을 하루라도 빨리 빼내야 하는 관계가 있을까.

묵은 사랑니 하나 빼고 생각하는 것들. 갑작스럽게 백 단위 돈을 쓴 게 억울해 일부러, 애써, 꾸역꾸역 의미를 만들려는 옹졸함일지도 모르겠다. 10년 전에 뺐으면 이런 생각 안 했을까.



+ 뒤늦게 사랑니를 빼야 하는 이유를 찾아봤다. 사랑니 때문에 고민하고 계신 분들은 망설이지 말고, 더 큰 대가를 치르지 마시고 어여어여 치료받으시길.



서른둘, 처음 사주를 보러 갔다 "우울이 잔잔하게 깔려있는 사람"이란 얘길 들었습니다. 늘 우울하지만 대단히 우울하진 않았던 나를 이해하고 끌어안은 날. 잔잔한 우울과 함께 사는 삶은 모든 게 대단한 불행도 행복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겐 대단하지 않은 것들로 이뤄진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