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작업도 다작을 해야 하는 이유
새 음반과 상관없이 오늘도 한 곡을 쓰고 녹음을 했다. 생전 처음 써보는 스타일이었다. 흔한 화성이었지만 템포나 화성도 내 노래에는 없던 진행을 중간에 넣어봤다. 순진해빠진 가사 범벅이다. 내가 얼마나 지난 십 여년간 집중해서 한 주제(Kingdom)에 대해 고민했는지 새삼 느낀다.
'사랑' 그리고 혹 다른 일상들을 소재로 쓰려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쓰려니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웠다. 진짜일까라고 자문을 하고 또 했다. 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편안해진다. 일종의 소설가처럼 혹은 수필가처럼 자전적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베어있지만 아주 살짝 힌트만 얻고는 그것을 기초로 이야기를 풀어가는거다. 그러다보니 요즘 가요에 있는 가사들이 왜 그리 뻔해지는지 새삼 깨닫는다. 내 가사가 딱 그렇지 않은가.
그럴수록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고 주변을 관찰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풀어가는 것의 힘과 중요성을 또 느낀다. 그렇게 맘을 먹으니 주제, 소재가 너무 많다. 하고 싶은 말도 넘친다. 어느 정도 임계점을 넘으니 이전에 다루지 않은 주제들을 다루는 요령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정말 어린아이가 말을 배워가듯 나도 여러 주제들을 다루는 것을 하나씩 둘씩 배워가는 듯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다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그의 책 '소설가의 일'에서 계속해서 써야 하는 것, 일단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쓰는 것에 대해서 강조한 것을 봐도, 그리고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말한 것처럼 하루 일정 분량의 원고를 쓰는 것을 봐도 다작, 그리고 꾸준한 작업이 정말 중요한게다. 음악가도 마찬가지다. 연주가라면 아침부터 일정시간을 손가락을 풀고 연주를 거듭 연습하는 것처럼 작곡가라면 가수라면 일정시간 계속해서 훈련해야 한다. 곡을 쓰는 사람은 하루에 한마디 혹 두마디라도 무조건 쓰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을 본다. 자신을 과신하고 주변사람들의 칭찬에 눈이 멀어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대우받기 바라는 싱어송라이터도 있고, 아예 재능을 덮어두고 재능을 썩히는 사람도 있다. 나보다 지식도 재능도 훨씬 많은데 왜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을 바라보며 섬뜩한 생각이 든다. 저게 바로 십 여년 동안의 내 모습이 아닌가. 사람들의 작은 칭찬에 우쭐해서 아무런 노력도 없이 흘러가는대로 산게 바로 내 모습 아닌가 말이다. 그때마다 몇 곡 해놓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그것에 눈이 멀어 자족하고 겉으로는 겸양의 자세를 취하면서 일년에 어떤 영감이 쏟아지는 날 곡이 순식간에 나온 것처럼 말만 하지 않았던가. 돌아보면 그것도 급박하게 어떤 필요가 있어서 만든 것인데 우연히 좋은 곡이 나온 것이다. 평소의 노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우연에 기댄 것들... 부끄럽지 않나.
프로듀서라면 계속 곡을 다루고 아티스트와 상의하고 편곡에 대한 아이디어와 여러 과정들을 발전시키려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갈고 닦아야 한다. 나는 어떤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나. 게다가 요즘 시대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스로 부끄럼없는 열심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좋은 성과-그 성과의 지표나 목표의 어떠함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를 위해 치열하게 계산하고 시도하고 또 계산하고 또 시도하고 묵묵히 달리고 있는가.
이런 깨달음을 왜 이토록 늦게 하게 된걸까. 조금이라도 더 일찍 깨달았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지금은 폭주하고 싶어도 폭주하기 어려운 물리적 환경, 몸의 상태를 갖고 있다. 그래, 그래도 지금이라도 하는거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쓰던 편지들, 나를 돌아보려고 끊임없이 썼던 일기들. 그런 흐릿한 기억들과, 일상을 살면서-발전시키지 않아온-내 눈에 보이고 내 앞에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의 점과 선과 면들을 좋은 노래로 살려보자. 삶에 대한 것들, 인간에 대한 것들, 사랑에 대한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