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역사는 시작된다
비가 부슬거린다. 지난한 장마와 폭염이 그리 싫지는 않다. 강렬하고 싱그런 여름과 가을을 부르니 말이다. 요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 대한 꿈과 이상을 품고 현실적인 대안과 걸음들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장난 생각들과 마음이 수리되는 걸 느낀다. 모든 일에 명분보다 중심동기가, 결과보다 과정의 면면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헛된 믿음이 아닌 불변의 진리다. 많은 이들이 삶에서 그것을 소중하게 보여주고 있고 그런 분들이 여전히 곁에 있어 힘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나도 그렇게 살고 더 겸손하고 더 웃는 일이 아닐까. 모든 시간은 헛되지 않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어떻게 새기는가는 각자의 몫이고 그 평가는 세상의 흔한 기준으로는 할 수 없는 법.
최근에 큰 프로젝트 건에 제안서를 넣었는데 또 연결이 되지 못했다. 우여곡절이 있고 배경들을 살피니 내 제안서에 문제가 있는건 아니었지만 기분이 한 두주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로 또 좋은 아이디어와 함께 할 여러 일들이 또 꿰지기 시작한다. 바빠질테지만 좀 더 알차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할 생각에 설렌다.
언제나 일들은 중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중심부는 변방을 늘 우습게 여기지만 언제나 일들은 마지널리티에서 촉발된다. 역사와 대중은 그것을 크게 의식하거나 기록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한계와 경계에서 끊임없이 씨름하는 이들이 세상을 멋지게 만들고 있다. 얼마전 한 만남에서 동지가 신영복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한번 더 확신을 주었다. 종국에는 중심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높은데 오르고 더 모으겠다고 하는게 얼마나 부질없는가. 주변을 충실하게 오늘을 살다보면 하늘이 중심으로 데려다 놓을수도 있고, 주변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부스러지고 아무도 기억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 내가 틀린 것일까 오랜 시간 검증했지만 그렇지 않다. 부족함은 있어도 틀리지 않았다. 자신을 믿고 던져야 한다.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