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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yuun Nov 26. 2022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사람들

내 이야기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매체에 대하여


한 가지 일을 장인 정신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해온 사람들은 멋있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몰두할 한 가지 일을 남들보다 일찍 찾은 것은 복 받은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진정한 영감을 주는 사람들은 의도했거나, 의도치 않게 다양한 일을 하며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닦아서 스스로를 끝내 찾아낸 사람들, 또는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나도 한 가지 일을 쭉 해온 것과 거리가 멀고, 여전히 방황 중인 것처럼 느껴져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두 번의 퇴사, 그리고 학부와 다른 전공의 대학원 공부를 하며 진로를 전환하는 중인데, 앞으로 지원하게 될 회사들에 보낼 이력서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며 나의 평범하지만은 않은 경로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 때 항상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곳에 적진 않겠지만 진로 관련 조언을 구할 때 대부분의 피드백은 '애매하다, ' '평범하진 않다, ' '독특하다, ' '어려운 케이스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두려움이 앞선다. 천성적으로 넉살이 좋거나 배짱이 있는 성격이 아니고 남의 평가를 많이 의식하는 편이라 나의 그동안의 행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맥락 있어 보이게 스토리텔링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었다.


그러다 어쩌면 내가 나 자신한테 편견을 씌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00군데 정도는 지원해봐야 진짜 '어려운 케이스'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차피 나는 이 길로 틀었으니 돌아갈 곳도 없고, 두려워도 맞서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다. 나 스스로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현재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처럼 다양한 길을 모색하며,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해보고, 아직 자신의 분야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 같아, 최근 이런 나에게 용기와 영감을 준 미국 일러스트레이터를 소개하고 싶다.




Wendy MacNaughton

- 그래픽 저널리스트/작가/일러스트레이터


웬디는 아트스쿨을 나왔지만 그림 자체보단 개념과 아이디어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페인팅을 전공했기에 자연스러운 수순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화가가 되면 자신의 작품은 갤러리에서만 전시될 것이고, 갤러리를 방문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것이 염려되어 화가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진로를 탐색하다 그녀는 대중에게 보이는 전광판에 실리는 광고에 매력을 느꼈다.


아트스쿨을 나온 웬디에게 당시에 광고업계 사람들은 카피라이팅 직무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광고에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단순히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을 할 뿐, 광고의 콘셉트와 기획을 잡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담당한다고 조언해준 것이다. 웬디는 작업물 이면의 메시지와 의도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조언을 따라 글로벌 광고 에이전시의 카피라이터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광고업계에서 카피라이터로 일을 하며 이미지와 텍스트 재료를 가지고 일할 일은 많았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만큼 더 큰 주제에 대한 논의와 기획을 하진 못했고, 결국 갈증을 느낀 그녀는 광고계를 떠나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사회복지에서 다루는 윤리강령과 같은 더 큰 차원의 문제들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웬디는 여러 비영리단체에서 경력을 쌓고 나중엔 비영리 사회적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상대하는 작은 광고 에이전시의 전략기획 디렉터를 맡게 되었다. 그녀가 이제까지 쌓아온 경력이 총집합된 직무였다.


아트스쿨 졸업 후 10년간 그림은 전혀 그리지 않았는데,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함께 타고 있는 승객들을 바라보다 승객들이 마치 피겨 드로잉 모델들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싸구려 볼펜과 업무용 노트북을 꺼내 그 사람들을 러프하게 스케치했고, 글쓰기 본능이 살아 있어 스케치 위에 주석처럼 메모를 했다.


source : tumblr "underground newyork public library"


이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을 그려나갔고, 길에서 그린 사람들의 스케치를 퇴근 후 집에서 수채화로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시간 제약으로 자투리 시간에 빠른 스케치만 할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그녀만의 새로운 그림체로 발전되었고, 어느 날 드디어 자신의 모국어 (native tongue)를 찾은 것 같다고 회상했다.

© Wendy MacNaughton


사회복지의 관심에서 기인했는지, 그녀는 이런 그림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사회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 사물들과 장소였다고 한다. 모든 장소나 사람에게는 다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그녀가 발견한 사람들이나 소재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싶었다. 자칫 편견이 담길 수 있는 타인의 시각으로 필터링된 스토리가 아닌, 작품에 담길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스토리가 표현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웬디는 자신의 그림들이 주인공들과 진정한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을 중시했다.


웬디의 유니크한 그림체와 텍스트들이 시각적으로 조화롭게 배치된 그래픽 저널리즘 매체로 인해 그들의 스토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시점과 표현 수단이 어떤 주제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는 것 같다.



© Wendy MacNaughton


웬디 맥너튼은 그래픽 저널리즘 분야의 선구자로, 지난 20여 년간 11권의 책을 펴냈고 그중 3권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그래픽 저널리즘이나 일러스트레이션 워크숍을 종종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며,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은 더더욱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평소에 보이지 않는 디테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인지적 편향까지 제삼자의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예쁘고 잘 그리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더 잘 보고 듣기 위한 훈련이 될 수도 있다.


© Wendy MacNaughton


그녀의 작업은 주로 만난 사람들의 개인적 스토리를 주로 다루었지만 더 나아가 스토리 이면의 더 깊숙한 사회적 이슈, 알고 있어야 할 통계나 사실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녀가 그런 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 (매체)는 주로 매거진이나 신문에 들어가는 일러스트였지만 미래에는 스토리의 소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버스정류장 광고 전광판이든 영화가 됐건 새로운 형태의 매체도 탐구해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수채화 스케치 스타일의 그림은 핀터레스트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웬디의 그림들은 단순히 표면적 스타일이 아니라 실제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역사를 담고 있었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진다.

© Wendy MacNaughton <Meanwhile in San Francisco>

웬디는 아티스트의 길을 쭉 걸어온 게 아니라 광고 카피라이터, 사회복지사, 디렉터 등 표면적으로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들을 했지만 그녀는 학부시절부터 추구했던 '아이디어'와 '스토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그녀가 한 모든 일에 관통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쌓은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엮여 그녀가 선택한 가장 자신 있는 표현 수단 (언어, 매체)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웬디 맥너튼의 이야기에서 느낀 점은 자신의 길과 미래는 자기 의지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외부적인 요인에 굴복한다면 전례 없는 일에는 도전을 하기 어렵고,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형태가 어찌 되었든 마음에서 원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상태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변화를 일으켜야 하고, 불필요한 것은 제거할 수 있는 판단력도 필요하다. 내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리고 믿음을 가진다면 지금 현재의 상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래에 어떤 일들을 할지 점점 예측하기가 어려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 하는 방식도 바뀌고 도구들도 계속 진화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 종류의 일만 쭉 판다기보다는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불변하는 가치가 무엇 일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연결된 스킬을 쌓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예를 들면 1년에 스킬 하나씩) 깊게 파고들어 그 분야에서 필요한 가치를 조금이라도 창출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거기서 또 다른 유관 분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다 웬디처럼 우연히 자신만의 언어 (표현 수단, 도구)를 발견해 그것과 내가 하나가 된다면 정말 멋진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내 언어를 찾게 될지 모르니 인내심과 열린 마음을 갖고 지내야겠다.



참고한책

Information Design Workbook. Kim Baer. p1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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