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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쓰 Feb 05. 2020

자아실현은 개나 줘. 생존을 위해 시작한 맞벌이



도현이를 낳고 6주간은 조리원, 도우미, 엄마의 도움으로 내 몸만 챙기면 되었지만 엄마가 떠난 후 혼자 아이를 보는 일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이었다.

때는 3월 말이라 꽃샘추위가 한참이고 몸은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아 겨우 움직이면서도, 집에서만 꼼짝않고 생활하는게 너무 갑갑하고 힘들었다.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이 갓난아이만 하루종일 먹이고 재우고, 오로지 라디오만이 친구였다. 나는 하루라도 집 밖을 안나가면 큰 일이 날 것 같은, 집순이와는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3층에 살았는데 아이 키우는 데는 정말 지옥같은 곳이었다. 집 근처에 유모차 밀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잠시 콧바람 쐬러 나가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도현이 50일쯤부터 도현이를 안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운전해서 근처 백화점에 가서, 아픈 몸에도 커피 한잔 들이키면 그게 나에게 천국이었다. 빌라는 대부분 그렇듯이 주차가 가장 문제인데 전 세대가 주차를 하려면 이면주차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면주차를 해놓았을때, 먼저 주차되어있던 차가 나가려면 내려가서 내 차를 빼주어야되는데, 주차장 사정이 그런거지 딱히 내가 잘못한게 아님에도 밑에집 아저씨는 차를 이상하게 대놓았느니, 빨리 빼지 않는다느니 갖은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나는 그때마다 갓난아기를 혼자 둘 수 없어, 안고 지하에 내려가서 차를 빼주고 지하부터 3층까지 아이를 안고 올라다녔다. 아이가 크고 무거워질수록 거의 4개층을 오르내리는 일이 숨이 턱턱 막히도록 힘이 들었는데, 그 와중에 내 운전 실력은 깻잎 한장 지나갈 정도로 좁은 찻길과 차들 사이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그 어떤 주차 공간에도 단 한번에 주차할 수 있을 정도로 늘었다.



그 와중에 육아란 나에게 더없이 지루한 것이었다. 아이가 예쁜 것과 육아가 힘든건 다른 얘기였다. 가까운 친척이나 육아도우미라도 있어서 하루 두세시간이라도 온전히 내 시간을 갖거나, 운동이라도 좀 할 수 있었으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 그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하루종일 아이를 보다보면 정신이 이상해질 때가 가끔 생겼다. 온 생명을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작은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워질 때도 있고, 내가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말로 옮기기 힘든 무서운 생각이 들며 한없이 우울해지는 그것이 바로 산후우울증인지 몰랐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상담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해봤었다.



사람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모성애가 저절로 생기는 줄 알지만 내가 깨달은 모성애는 아이를 키우며 같이 커가는 감정이었다. 즉,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아이를 위해 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아이를 낳고 너무나 연약한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조리원에서 모자동실 한시간동안 내 옆에 두는 동안도 이게 배고파서 우는건지 뭐가 불편해서 우는건지, 울음소리가 걸걸한게 목이 이상한게 아닌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전문가나 아이를 먼저 키워본 어른이 내 옆에서 아이의 불편함을 같이 판단해줄 때는 두려움이 덜했지만, 경험없는 초보엄마가 혼자 아이를 키울 때는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너무나 커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은 자리잡기 힘들었다. 오히려 두살, 세살 시간이 지날수록 걷고 말하고 귀여운 짓을 하는 걸 보며 정이 들어서 모성애가 커져가는 걸 느꼈다.  






자아실현은 개나 줘. 사는게 빠듯해 다시 시작한 맞벌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 혼자 돈을 버는 외벌이가 되고도 우리는 한동안 더블인컴의 생활을 줄이지 못했다. 신혼의 철없음이 첫번째 이유였고 체감되지 않는 마이너스 인생이 두번째 이유였으며 경제관념이 없음이 세번째 이유였다.

각자의 생일이나 기념일, 특별한 날에는 항상 호텔 부페에 갔고 평소에도 잦은 외식을 했으며, 시간만 나면 여행을 갔다. 경조사도 빠짐없이 챙겨야하니 겨우 서른살이었던 남편의 월급으로는 매월 마이너스 통장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엘리베이터 없는 이 지옥같은 빌라를, 매달 성범죄자 신상 정보가 빠짐없이 우편함에 꽂혔던 그 동네를 어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우리가 가진 돈은 고작 8500만원. 현실이 이런건줄 제대로 알았다면 절대 회사를 그만 둘 수 없었을텐데.. 아니 이렇게 일찍 서둘러 결혼하지 않았을텐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에 대해 '여성들의 자아실현'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나 고상한 표현이다.

외벌이로도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었다면, 내게 일에 대한 이런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었을 것이다. 청소 아줌마도 가끔 부를수 있고 육아도우미도 하루 몇시간씩 부를 수 있고 때 되면 여행가고 내 옷도 맘편하게 살 수 있다면, 마음이 여유로워서 경제전선으로의 복귀를 차일피일 미루며 ‘아이 잘 키우는게 먼저지’ 라고 했을 터였다.

생존을 위해 시작했지만, 일을 하다보니 점점 자아실현이 가까워지는건 분명하다. 내 자존감이 높아지는건 나만 좋은게 아니라 결국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은 것 같다. 아이가 어린 몇년간은 아이도 힘들고 부부도 힘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능력있는 엄마에 대한 아이의 인정도 생기고, 남편에겐 든든한 경제적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내'가 아닌 '당당하게 나를 위해 투자하고 화사하게 단장할 수 있는 나'에게 만족감이 크다.



'82년생 김지영'이 나오기 한참 전 '고백부부'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장나라를 보면서 얼마나 하염없이 울었는지 모른다. 손목 보호대를 낀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겨우 국에 말은 밥을 떠먹는 모습, 아이 데리고 밖에 나갔는데 꼬질꼬질하고 초라한 옷매무새를 흘기듯 바라보는 젊은 여자의 시선, 남편은 밖에서 남편대로 힘든걸 알지만 각자 힘들어 오해가 쌓여가는 상황. 딱 내 모습인 것 같아서 얼마나 측은했는지..



나는 물론 놀고 있는게 아니라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고 있으면서도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내 자신이 초라해보였다. 왠지 남편한테 빚지고 있는 것 같고 왠지 당당할 수 없어서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듯했다.

 



도현이가 백일이 지나고 데리고 다니기가 수월해지면서 친정 부모님댁 2층에 운영한는 에어비앤비를 관리할 겸 부산에 한달에 한번씩 가게 되었다. 친정 엄마는 언니가 조카를 낳고 나서는 한달에 한번씩 서울에 오셔서 조카를 봐주시고 반찬도 해주셨는데 내가 부모님 노후 대비로 에어비앤비를 셋팅해드리고 나서부터는 항상 손님이 있어서 막상 내가 출산을 하고부터는 서울에 전혀 오시지 못하셨다. 그래서 내가 에어비앤비 관리를 핑계로 부산에 내려가 일주일씩 있으면서 부모님한테 육아 신세도 지고 휴식도 하곤 했었다.

부모님 노후 대비로 에어비앤비를 처음 셋팅해드릴때는 한달에 50만원 수익만 생겨도 좋다(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보니 예약이 너무 잘 들어와서 한달에 백만원이 훌쩍 넘게 들어왔다. 시작한 이후 한 10개월간 수익을 엄마에게 고스란히 보내드렸는데, 도현이를 키우며 내 경제적 무능함에 큰 회의를 느끼던 나는, 어느날 엄마에게 나도 일에 대한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많이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 들이는 노력에 대한 '작은 수수료'라도 받고 싶다고 말하면서, 엄마 앞에서 작아지는 내 자신이 한없이 못나보이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단 돈 20-30만원이라도, 내 가치를 다시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 때 엄마는 "내가 너 이사갈 때 도와주려고 매달 그 돈 다 모아놓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펑펑 울고 말았는데 엄마도 같이 울어버렸다.



이후 두세달이 지나 고이 아껴두었던 내 종잣돈을 투자해 오피스텔을 매입하고 새로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마이너스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 리빙샵을 열며 플러스 인생에 진입하게 되었다. 몇년간의 노력으로 절약과 저축의 가속도가 붙고 중간 중간 작은 투자가 시너지를 내어, 올해 우린 서울에 우리 이름으로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다음 번에는 종잣돈 마련에 대해, 부담없이 쉽게 창업하는 방법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회사를 너무나 때려치고 싶은데 앞길이 막막한 누군가에게, 원래 경력을 살릴 수 없지만 경제 활동을 하고 싶은 전업주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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