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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쓰 Feb 05. 2020

맞벌이 부부, 투쟁의 끝에서 손을 마주 잡다



창업 연습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쓸까 하던 도중 남편이 회사에서 갑자기 상을 연속으로 받아와 집안 분위기에 반전이 있어 잠시 번외편으로 맞벌이 부부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전투적으로 살아온 지난 6여년간의 결혼 생활을..



어느 영화 평론 프로그램에서 말하기를, 82년생 김지영에서 공유를 일반 남자로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는 걸 듣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나쁜 놈으로 만들어도 안되고 또 모든걸 구할 수 있는 비현실적으로 착한 놈도 아니고 '딱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정도로 나쁘면서 착한 남편' 이라니?! 내가 보기엔 거의 비현실적으로 자상하고 와이프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던데, 딱 두마디만 빼고.

'부산에 일년에 서너번 가는데 그걸 왜 못해'와 '애 낳으면 내가 많이 도와줄게'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부부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기에 너무나 넓고 깊은 강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전업주부와 외벌이 가장 사이엔 서로 맡은 역할이 나눠져있어 다툼은 조금 덜하지만 서로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감정적 단절이 있는 듯하고, 시간이 갈수록 공감의 깊이가 떨어지는 듯해보인다. 물론 그래도 맞벌이 부부보다는 훨씬 평화롭고 사이가 좋아보인다.

맞벌이 부부는 육아와 살림에 있어 끝도 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서로 힘든 건 알지만 우선 내가 너무 힘들고 시간이 없다. 보통 여자가 육아와 살림에 더 시간과 신경을 쓰게 되어 여자 입장에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억울할때가 많다.



돌이켜보면 퇴사 후 출산과 육아를 전담하면서 남편 혼자 외벌이를 할 때는 서로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하루종일 갓난 아이와 씨름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이유식 만들며 남편 저녁 준비하며 새로운 종류의 고생을 하는 나를 남편은 토닥여주었고, 나는 남편 월급으로 생활을 하니 얼마를 벌어오든 혼자 일하는 남편에게 불평도 타박도 할 수 없었다. 빠듯한 생활비와 힘든 육아는 그저 혼자 힘들고 혼자 답답해할 수밖에..

 맞벌이를 시작하고 나서는 최근 3년간 남편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시댁 행사에 참여하는 문제, 맞벌이인데 왜 내가 이렇게 육아와 살림에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하는가의 문제, 돈으로 닥달하는 나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남편..



재작년 12월의 어느 목요일쯤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이번주 일요일 혹시 무슨 일 있니?"

같이 식사하시려는 건가 하고 "아무 일 없어요~ ^^" 했는데

"응~ 김장하려구. 도현이랑 도현아빠랑 천천히 와" 하시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거였다. (우리는 김치를 일년에 2포기도 안먹을텐데..)

같이 식사하는 거야 언제든지 좋지만, 김장은 차원이 다른 문제. 자영업이라 토요일까지 주로 일하기 때문에 일요일 하루 온종일 쉬는데, 게다가 허리도 너무 안좋은데, 게다가 그 다음주에 '홈테이블 데코 페어(코엑스에서 열리는 리빙 관련 1년에 가장 큰 전시회)'에 나가기로 되어있어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장에서 나의 역할은 아주 보조적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안가겠다고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화가 난 남편은 혼자 도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김장하러 갔다. 그 후 우리는 일주일 동안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째 지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더니,

"(그 착한) 누나도 정말 화났어. 앞으로 우리한테 급한 일 생겨도 도현이 안봐주겠데!  우리 집에서 그동안 부인(나를 부르는 호칭)을 얼마나 배려해줬는데 너 힘들다고 일년에 한번 하는 김장을 안가?!"

"응? 어머님 아버님 나한테 항상 좋게 말씀해주시고 잘해주시는건 아는데, 특별히 나를 얼마나 배려해주셨는데? 자세히 말해볼래?"

"당숙네서 하는 제사(maybe 큰할아버지 제사)도 오지 말라시고 지난주에 외할아버지 생신도 있었는데 우리 바쁠까봐 오지 말라고 하시고..(어쩌고 저쩌고)"

"아~ 그랬어? 근데, 남편 결혼하고 지금까지 우리 부모님 생신에 부산 한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 명절도 여러번 빼먹었지? 나랑 18년 같이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 제사 때 가본 적 있어? 사촌 동생들 다 오는데 나만 서울 산다고 한번도 못갔어. 그런 행사 중에 단 한번이라도 안갔다고 잔소리 들은적 있어? 비행기표 비싸고 주말이 짧으니까 우리 안와도 애써 섭섭해하지 않으시는거야. 우리집에서 해주는 배려는 배려인 줄도 모르고"

남편은 할 말이 없어졌고 이것으로 김장전투는 나의 KO승으로 끝이 났고 그 이후 나는 김장에서 열외되었다.

명절마다 또 일주일씩 싸웠지만 그 얘기까지 하면 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일단 생략하고..


맞벌이를 하면서도 매일 아침 도현이 유치원 등원과 저녁에 이모님 퇴근 후 육아는 내가 디폴트로 설정되어 있고 장보고 아이 음식 준비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세일즈인 남편은 출퇴근이 칼같이 정해져있는건 아니지만 대부분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와서 항상 "오늘은 몇시에 와?" 물어봐야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자유로운 자영업보다는 회사가 힘들고 빡세니까 어쩔수 없지 하고 있었는데 몇달전, 내 육아와 살림을 당연한듯 무시하며 한편으론 본인이 육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생각을 해서 크게 다툰 이후 '5:5 육아 타임테이블'을 만들어서 2주 정도 실행한 적이 있다. 맞벌이니까 정확하게 5:5로 하자며 아이 식사 당번까지 정해놓으면서.

2주 후에 화해하면서 흐지부지 되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당신이 바쁜거 알아서 나는 일하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아이 보고 밥 준비하니까 그만큼 알아주고, 시간이 되는 최대한 함께 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가지게 되면서 남편은 저녁에 아이 식사와 내 간식 준비를 자주 해놓는다. 주로 내가 시켜서 하는 거지만 싫은 내색을 안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고..



세일즈인 남편은 인센티브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월급을 예상하기가 어렵다. 같은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알지만 월급날이 되면 월급에 따라 내 기분이 아주 크게 왔다 갔다 한다. 세일즈들은 잘 버는 해가 있고 못버는 해가 있는데 올해는 쏘쏘였는데 내가 올해 비약적인 성장으로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남편 월급이 작게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돈 계산에 민감하지 않아서 회사에서 지원되는 유치원비나 기타 복지비 등이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도 몰라서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그런 걸로 잔소리를 종종 했는데 남편은 그 스트레스를 어느 순간 아이에게 푸는 것 같았다. 결국 내 타박과 잔소리가 아이에게 가는 것 같아서 자중해야지 하고 있는 와중에, 한달 전 또 크게 싸웠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왜 내가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육아도 더 많이 해야되고(심지어 둘째도 뱃속에서 내가 키우고 있고) 우리 집에서 반찬 보내주고 우리 부모님이 아이를 이렇게 많이 봐주셔야되냐, 왜 나만 이렇게 손해보고 사냐고 남편에게 할 말 못할말을 전부 쏟아붓고 자존심에 흠집을 내며 끝이 났다. 자주 다퉈왔던 우리였지만 이번 싸움은 더 골이 깊었고 상처가 회복되기 힘들어보였다.  

또 일주일의 시간 끝에 남편은, 자기는 할 수 있는한 최대로 열심히 살고 있고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자기를 궁지로 몰고가는 나로 인해 자괴감이 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다른 일로 나를 자극하니 나도 자제하지 못하고 나쁘게 얘기했다고 사과하며 일단락이 났다.



그동안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무관심해지고 대화도 단절되었었다. 사실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는게 맞을 것 같다. 평일엔 얼굴 보기가 힘들고 주말엔 항상 도현이와 함께 있으니 도현이 위주로 시간을 보내고 둘이서 속 얘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빚쟁이 같았다. 내가 한번 개인 약속을 잡으면 너도 한번 나가야되고, 내가 두번 나가면 너도 두번 나간다고 하고. 출장가는 날 인천 공항에 데려다달라고 했더니 5만원을 달라고 하고..(3만원으로 타협을 하다가 안되어 결국 내가 나 좋자고 출장가냐 했더니 그래도 출장 가면 애도 안보고 좋지 않냐고 해서 한바탕 싸우다가 공짜로 데려다줬던..)

너무 메마르고 계산적인 사이가 되어있었다.



3주 전인가 남편이 회사에서 상으로 애플워치를 받았다고 해서 "무슨 상?" 물었더니 회사의 새로운 영업 시스템을 제일 잘 활용한 세일즈한테 주는 상이라고 하길래 (딱히 세일이 좋아서 받는 상도 아니고 해서)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어서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라고 했더니 새로운 기계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애플워치를 못쓰는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런데 지난 주 금요일 오후 '까똑 까똑 까똑'하길래 확인해보니 남편이 자기 또 상을 받았다며 사진과 내용을 전하길,



이름하여 ‘sales rep of the year’.

올 한 해 본부에서 칭찬하고 싶은 세일즈를 전원 투표로 한명을 뽑았는데 자기가 뽑혀서 30만원 상품권을 탔다며..

남편을 뽑은 동료들의 코멘트를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다가 눈물이 펑펑 나고 말았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미안하고 짠-한 마음과 고마움이 밀려오며.. 남편한테 항상 백전백승 하려고 기를 썼던 내 행동들과, 잔다르크라도 된 듯 전투적이었던 내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의 핍박과 무관심 속에 회사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동료들에게 인정받느라 고생했겠구나. 응원해주긴 커녕 잔소리만 늘어놓는 우리집 문 밖을 나서며 기운 빠졌을텐데.. 회사에서는 이렇게 잘하는 줄도 모르고 집안에서 하는 어설픈 행동들로 '밖에 나가서 일은 제대로 할까?' 한심하게 봤던 내가 얼마나 우스웠는지..

철도 들기 전에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사는게 힘들고 바빠서 남편의 좋은 점을 못보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남편을 칭찬한 동료들의 코멘트를 보면 '배려' '웃는 얼굴' '함께 일할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팀웍' 등 내가 남편에게 배워야할 점, 나에게 없어서 보완이 되는 좋은 점이 참 많았다. 남들 그만 신경쓰고 니 앞가림이나 잘하라는둥 했었는데 내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내가 항상 옳고 맞는게 아닌데 내 생각만 강요해왔단 생각이 들었다.



이 일로 엄마랑 통화하면서 "(같은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했던 나..) 나였으면 절대 못받았을 것 같은 상인데 ㅋㅋㅋ"라고 했더니 엄마가 자기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며;;;;; 전화기 뒤에서 아빠는 신랑한테 좀 잘하라며 막 소리를 치시고...

남편의 지금 팀장님은 내가 회사 다닐때 나의 팀장님이셨다. 올해 초 남편 팀으로 옮기셔서 남편의 팀장님이 되고난 후 같이 식사를 한번 했는데 팀장님이 나를 보시더니 대뜸

"지희야 니보다 너거 신랑이 훨씬 회사 생활 잘한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회사 생활 못하는 나는 밖에 나와 일하고 회사 생활 잘하는 남편은 회사에서 일하고, 이렇게 리스크도 분산하며 조화롭게 살고 있는데 그간 나는 왜그렇게 괴롭게 살았나 싶다. 서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힘이 될 수 있는 부부 사이가 되도록, 가끔 마음에 파도가 일면 큰 바다로 나갈 수 있게 좀 참아가며 살아야겠다.



이번에 상으로 받은 30만원은 쿨하게 남편 쓰라고 얘기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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