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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쓰 Feb 05. 2020

퇴사 후 만 5년. 인생의 신의 한 수.

올해 10월이 회사를 퇴사한지 만 5년이 되는 시기였기에 한번쯤 그간의 시간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둘째가 잉태되지 않았으면 하염없이 미루다 흐지부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둘째 덕분에 데드라인이 정해졌다.



2014년 10월의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뱃속에 도현이를 품고 마침내 아무 목표도, 아무 걱정도 없는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퇴직금으로 자동차 할부금을 갚았고, 또 나를 위한 선물로 100만원짜리(회당 10만원 x 10회) 심리 상담을 받았다.

회사를 그만둘 때 남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퇴사를 말렸다.

그렇게 좋은 회사 그만두기 너무 아깝지 않냐고, 경력이 아깝지 않냐고.

제일 아쉬워하는 엄마는 그렇다치고, 가까운 동료나 친한 선배도 너무나 의아해하며, "야 나는 니가 제일 빨리 팀장될 줄 알았다. 어떻게 회사를 그만둘 수가 있냐.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

그때 서른살이었던 나는, 서른살 이후로의 삶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내 방식대로 만들어가고 싶은 생각에 애 낳으면 키워준다고 하시는 시어머님의 만류도 뿌리쳤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육아휴직이 아닌 퇴사를 선택하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



모두가 말릴 때 다시 한번 고민해보지 않았던 무모함이, 힘들게 들어간 연봉도 복지도 좋은 회사를 쿨하게 떠날 수 있었던 용기가, 돌아보면 내 인생의 신의 한 수 였다.  

한참 뒤에 깨달은 것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말렸을때 강행했던 선택은 백발백중 성공했던 것 같다. 특히 심하게 말릴수록 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 회피적인 선택을 하는데 아직 젊기 때문에 잃을 것도 별로 없는 나이에는 위험이 수반되는 좀 고생스런 일을 해도 되는것 같다.

​​

5년이란 시간동안 도전하지 않고 부딪혀보지 않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텐데 다행이도 노력한만큼 많은 운이 따라주어서 5년전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고 그때의 선택에 감사할 수 있다. 지금은 회사 다닐때보다 훨씬 재밌고 자유롭게 일하면서 그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서 삶의 만족도가 몇배는 더 높아졌다. 육아는 언제나 어렵고 부부 관계는 때때로 적대적이고 전투적이지만 적어도 일이 주는 만족감은 누구보다 높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현저히 낮아졌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꿈과 목표를 세우고 또 이루어나간다.



지금에서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만족에 이르기까지는 몇년의 고생스런,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을 지나온 것 같다. '내 인생이 제일 힘든 것 같아.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언제쯤 잘 풀릴 수 있는거야?'하며 참 많이 억울해했었다. 힘든 시간이 언제쯤 끝나고 또 언제쯤 좋아질 수 있을지 알았으면 마음 고생을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될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혹시나 예전의 나처럼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기억을 정리해본다.



퇴사 후 출산과, 산후 우울증과 힘들었던 독박육아,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고, 또 리빙샵을 오픈하고 해외 직수입 및 도매 거래처로서 자리잡기까지.. 새로운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는지,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전업주부에서 시작해서 부업하는 엄마, 전업 워킹맘으로 변화하면서 남편과 아이와 살림은 어떻게 했는지, 주변에서 인정받기까지 고군분투했던 과정을 써본다.  



퇴사 이후 출산 전까지의 서너달은 마냥 좋았다. 신혼의 기쁨과 무직의 자유를 마음껏 즐기며..

그때까지는 출산과 육아가 아름다운 것인줄 알았다. 아무도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임신 계획의 8할은 언니의 책임인데, 내가 결혼할때쯤 5~6개월이던 조카가 그저 천사같이 너무 예뻐서 아이를 낳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조카를 보러가는 나에게 언니는 왜 한번도 기저귀 갈라고 시킨 적이 없는지, 왜 이유식 먹이고 식판 좀 닦으라고 한 적이 없는지.. 육아의 그 많은 힘든 시간 중에  찰나의 달콤함만을 보고 내가 직접 아이를 키우겠다고  나섰던 나를 얼마나 탓했는지 모른다. '어머님이 키워준다고 할때 그냥 맡기고 일할걸' 하는 후회를 백번 천번은 한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뭔가 달라. 그냥 이건 아닌것 같아!' 하는 생각은 출산의 진통과 함께 시작되었다. 누구나 하는 출산이기 때문에, 심지어 무통주사도 안맞고 자연주의 출산을 했던 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출산이라는 것이 이렇게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건 상상하지 못했었다. 도현이 머리 크기가 97%에 육박할 정도로 컸고 몸무게도 많이 나갔기 때문에 무통주사 6번을 맞고도 마지막 세시간은 생으로 진통을 하고 간호사 팔꿈치로 내 명치부터 끌어내려서 겨우 출산을 했다. 고통이 너무 충격적이기도 했고 내 몸에 비해 무리한 출산으로 다른 산모들보다 몸을 회복하는 기간이 몇배는 오래 걸렸다.

조리원 2주, 산후도우미 2주, 엄마의 도움 2주를 끝으로 도현이와 둘이 남겨질때, 엄마에게 '엄마 나 혼자 얘 어떻게 봐. 너무 무서운데'라고 하니 엄마는 '다 하는 거야. 할 수 있어'라고 말씀하시고 돌아섰다.

갓난 아이를 앞에 두고 내가 이 생명을 잘 보듬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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