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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다원 Oct 13. 2017

10. 1분에 5억리터, 마침내 빅토리아 폭포.  

'11개국 친구들과 떠난 20일간의 아프리카 횡단기 마지막 이야기'

DAY- 19


나미비아 국경을 통과해 5600km를 달려 온

트럭킹의 마지막 종착지인 짐바브웨 국경에서

드디어 입국 심사를 받고 입국 도장을 받았다.

18일동안 지나 왔던 남아프리카의 오프로드를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지만 아직

아프리카에 발을 들이게 한 빅토리아를 보지

못했으니 감동은 나중에 해야한다.


짐바브웨는 나에겐 감동적인 꿈의 나라지만

현실은 심각한 경제력 상실로 인하여 사실상

화폐의 기능과 가치를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로인해 주변국의

모든 화폐가 사용이 가능한 나라이기도 하다.


시내 여행자거리에 도착해 액티비티 예약 업체에

방문했다. 나는 래프팅 풀데이를 120달러에

예약을 했다. (하프데이는 없어졌다고 한다.)

해당 업체에서 래프팅뿐 아니라 헬리콥터,

번지점프, 사자만나기, 코끼리투어등 다양한

액티비티 예약이 가능하다.


이제 드디어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공원으로

이동을 한다. 입장료인 30달러는 트럭킹 기본

액티비티 패키지 포함사항이라 따로 표를

구매하지 않고 입장했다.


꽃보다 청춘을 보고 빅토리아 폭포를 알게 된 후

반드시 두 눈으로 보겠다 던 마음으로 시작한

아프리카 트럭킹의 꽃, 그리고 나의 오래된 꿈이

드디어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다. 


폭포에 가까워 질 수록 굉음도 함께 커졌다.

원주민들이 빅토리아 폭포를 ‘모시-오아-툰야’

‘천둥 치는 연기’ 라고 불렀던 이유를 알것만 같다.


빅토리아 폭포가 드디어 내눈 앞에 펼쳐졌다.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가로지르며

인도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잠베지 강 중류에

위치해 낙차가 무려 108m, 세계에서 가장 긴

빅토리아 폭포를 드디어 만났다.



쌍무지개를 넘어 4개의 무지개를 펼쳐 보이던

폭포는 아름다움과 위대함 그 경계를 허물어

뜨리며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우기에는 분당 5억리터의 물이 쏟아지고 건기인

현재 기간에는 분당 1000만 리터의 물이 쏟아

진다고 한다. 입을 다물 수 없는 장관앞에 생각도

멈춰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휘날리는 물보라를

맞으며 한없이 바라 볼 뿐이었다.


빅토리아 폭포의 유래도 재미있는데 최초에

폭포를 발견한 사람이 데이비드 리빙스턴이라는

영국의 탐험가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

폭포의 이름을 ‘빅토리아 폭포’라고 지었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과연 ‘문재인 폭포’ 라고 지었을까?)


꿈을 지켜내고 그리고 이루었다. 꿈을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살아냈다는 보람과 희열이 솟구쳐 한동

안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숙소로 돌아와 트럭에 있는 모든 짐을 빼내야 했다.

긴 여정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준 트럭에게 큰 일

없이 잘 달려와줘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가이드

림슨과도 마지막 인사를 해야했다. 근처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저녁 식사

를 함께 하지 못한다고 했다. 악수하고 찐하게

껴안은 후 그와 작별했다.


숙소에 체크인 후 식당 ’마마 아프리카’로 이동했다.

식당에 도착한 지 2시간 후 배고파서 짜증이 날때

쯤 되서야 음식이 나왔고 곁들여 먹는 소스는 음식

을 다먹을 때 쯤 가져다 주었다.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할 수 있는 식당으로 저녁 7시30분쯤 들어갔 

던 식당에서 10시30분쯤 나올 수 있었다. 계산하

고 싶을때 계산대에서 자유롭게 계산하는 한국이

너무나 그립다.



DAY-20


조식을 먹고 7시 15분에 정확하게 래프팅투어

업체의 트럭에 탑승했다. 시내의 호텔 3~4곳을 더

들려 다른 여행객들을 픽업한 후래프팅 장소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간이 건강진단표를 작성한 후

사인하여 제출했다.


시내로부터 15분정도 산길을 달려 래프팅 시작지점

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중요한 소지품을 세이프

박스에 넣고 종이에 보관한 물품을 자세히 기입

했다. 그리고 구명조끼와 핼맷을 착용하고 패들을

고르면 래프팅 준비는 끝이난다. 고프로를 가져갔는

데 방수가 되는 케이스를 가져가지 못해 아쉽지만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가방도 자물쇠로 채워

트럭에 넣어두었다.)


야외 강당에서 주의사항과 위험사항에 대한 교육

이 진행 되었다. 물에 빠졌을 시 안전하게 수영하는

방법과 예상되는 위험한 시나리오에 대하여 설명

하였다.


패들을 들고 경사가 엄청난 내리 막길을 내려갔다.

쪼리를 신고 경사로와 바위를 넘어 겨우 래프팅

시작지점에 도착했다. 안전요원들이 우리가 탈

보트에 열심히 바람을 넣어 강물에 띄우고 있었다.

우리보트는 가이드 한명과 함께 8명이 한팀이

되었고 다른 보트엔 6명의 여행자와 두명의 가이드

가 탑승했다. 대신 보트 후미에 아주 큰 목조 패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6명이지만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었다. 


보트위에 탑승했다. 우리가 오늘 지날 강물은

건기임에도 불구하고 수심이 11m부터 깊은

곳은 20m에 달하여 유속도 굉장히 빠른 곳이다.

그리고 3시간을 패들링 해야하는 아주 긴 래프팅

코스다. 보트에서 가이드와 오늘 우리가 사용할

용어 및 행동요령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다. 

'GET DOWN'을 외치면 보트에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니 몸을 최대한 낮춰 보트에 밀착시키며

로프를 붙잡아야 한다. 가이드가 'UP'을 외치면

신속하게 일어나 패들링을 하면 된다.  그리고

'FORWARD'를 외치면 정면을 향해 패들링을

하면되고 REFT를 외치면 오른쪽 줄은 앞으로

젓고 왼쪽줄은 뒤로 저어 보트가 왼쪽방향으로

이동한게 한다. (오른쪽은 반대로)


드디어 첫번째 코스에 진입했다. 물살이 부드러운

곳으로 래프팅 시작으론 안성맞춤인 코스였다. 

코스마다 이름이 있어 요령과 물의 속도 그리고

우리가 지나갈 방향을 가이드가 미리 알려준다.

양쪽 맨앞에 가장 힘이 쎈 남자 두명이 앉아

속도와 합을 조절한다.  다함께 같은 속도로

패들링을 해야 3시간동안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무리 없이 완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사람들,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강물을 타고 협곡을 지나는 기분은 생각보다 더

짜릿했다. 멋진 뷰는 래프팅을 선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앉은

상태여서 패들링 하는건 초보자에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허리와 엉덩이가 뻐근거렸다.


유속이 빠른 구간을 지나기전엔 가이드가 ‘빨리!’를

외친다. 힘껏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다가 가이드

의 ‘DOWN’ 을 외치는 동시에 몸을 최대한 신속하

게 엎드려야 보트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지점 6을 지날때 쯤 우리 보트에서 독일인 친구가

보트에서 떨어졌다. 구명조끼 덕분에 금방 물위로

떠올라 건져올려 보트에 다시 태울 수 있었다.

신고 왔던 쪼리가 중심을 잡는데 엄청나게 불편했

다. 가이드가 결국 로프에 일행들의 슬리퍼류의

신발을 전부 묶어서 고정시켜 주었다.


2km를 순항하는 긴코스가 나타나자 잠시 오렌지를

하나씩 먹은 후 다시 노를 저었다. 지점 13을 앞에두

고 가이드가 이야기 했다.


“여기가 유속이 빠른 구간중 마지막인데 난이도를 어떻게 할까?”
“그래! 마지막이니까 제일 유속이 빠른 구간으로가자!”


노를 한곳에 모아 파이팅을 외친 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보트가 먼저 무사히

통과했고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FAST!!” 


가이드의 지령과 함께 8명이 힘차게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GET DOWN!”


높은 물살에 보트가 뒤집어 지고 말았다.

몸을 최대한 낮춰 보트에 가슴을 밀착시켰다.

첫번째 물살을 넘어선 후 두번째 물살을 타고 

넘어가려던 순간 보트가 뒤집어 졌다. 분명

보트위에 엎드려 있던 나는 어느새 물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당연히 물위로 올라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수면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물속에 잠겨있었다. 머리 위로 손을 뻗어보니

무언가 무거운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뿔사 그건 보트였다.

보트밑에 깔린 걸 알아 채고는 보트를 들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보트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숨도 못쉴뿐 아니라 물을 계속

먹고 있는 상태라 굉장히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온힘을 다해 보트를 밀어내면서 옆으로 튀어

올라갔다.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찰나 누가

내손을 덥썩 잡아주었다. 독일인 데니스였다. 

데니스는 내 팔을 떙겨 보트옆으로 끌어주었다.

출발 전 교육받은데로 몸을 최대한 뒤로 눕혀

다리를 위로  치켜올렸다. 바위등에 다리가

쓸리거나 끼게 되면 더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근처 다른 보트에 있던 외국인 친구들이 보트

위로 올려주어 빨리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

했다. 물에 빠지고 물위로 뜨지 않아 당황했던

그 순간이 자꾸 더올라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 상황을 정리하고 보니 가이드 말을 잘

듣고 몸을 최대한 보트에 밀착 시킨 사람들만

보트 밑에 깔렸었다. 넘어가는 걸 보고 뛰어

내리거나 튕겨나간 사람들은 굉장히 멀쩡했었다.


종착점에 보트를 고정시키고 패들에 조끼와

핼맷을 묶어 산을 탔다. 내려온 만큼 걸어서

다시 올라가야 했다. 쪼리를 신고 경사진 산을

타려니 힘이 2배로 들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아프리카 태양은 모든 걸 태워

버리겠다는 듯 강렬했다. 평지에 다다르니

직원들이 닭고기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었고

아이스박스에서 음료와 맥주를 꺼내 나누어

주었다.


다같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죽을 뻔한 그 

상황을 다시 이야기했다. 한국 친구의 액션

카메라에 당시 상황이 생생히 녹화되어 우리

보트가 뒤집히는 과정을 다시 보며 자신들이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 확인했다. 다시 보아도

역시나 아찔한 상황이었다. 



“You are my Angel Denis”


내 손을 잡아 주었던 데니스에게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숙소에 내려 샤워를 하고 쇼핑을 하러 시내로

향했다. 얼마 전 본 여행책에서 짐바브웨는

물물교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케이프타운에서

구매했 던 두꺼운 겨울 점퍼와 바지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보조배터리를 챙겨 나왔다.

따듯한 나라로 가기 때문에 반드시 처분해야

했는데 버리는 것 보다 기념품과 바꿔보기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팔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주위에 이런 걸 팔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뭘 팔고 싶은데?”


첫번째 가게에서 주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녀가 내 물건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특히 두터운 점퍼가 맘에 드는 모양이다.

자신의 가게에서 내가 필요한 물건과 바꾸자고

먼저 제안을 했다. 아쉽게도 그 가게에는 내가

필요한 게 없었지만 물물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아주 큰 수확이었다.


두번째 가게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지갑을 발견

했다. 그리고 전부터 갖고 싶었던 아프리카

티셔츠도 있었다. 눈치를 보다가 말을 꺼냈다.


“나에게 흥미로운 물건이 있는데 한번 볼래?”


그리고 보조배터리를 보여주었다.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아주 흡족해 하던 그녀는 두꺼운

점퍼도 펼쳐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마저도

맘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지갑과 옷을

가지고 싶다고 하니 가죽지갑이 115달러여서

내 물건들이 너무 마음에 들긴 하지만 무리가

있다고 했다. 우선 나의 점퍼와 아프리카옷을

교환한 후 그녀에게 보조배터리 값으로 가게

에서 50달러 만큼 물건을 고르겠다고 하니

40달러로 하자고 한다. 못이기는 척 40달러에

맞춰 지갑과 팔찌 동전지갑을 골랐다. 아주

성공적이고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필요 없는

물건도 처분하고 갖고 싶었던 물건도 갖게

되어서 짐바브웨의 한인 거상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한국 친구들과 시내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피자와

치킨을 주문했다. 아프리카에서 방문한 식당중

가장 신속한 주문과 식사를 시작 할 수 있어

감동이 밀려왔다. 근처에 트럭킹을 함께 했던

일행들 일부가 저녁을 먹고 있다고 해서 잠시

들려 작별 인사를 했다.



내일 떠날 준비를 마친 후 숙소에서 한국 친구들과 

맥주와 컵라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트럭킹

첫날 부터 함께해서 힘든시간, 죽을뻔한 시간까지

고비도 함께 넘기며 정이 많이 들었다. 첫날의

추억부터 하나씩 되내이며 일정을 하나씩 되짚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참으로 열악하고 힘든 여행이었지만 이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20일간 5600km이동하며 4개국을 여행한

아프리카 트럭킹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비록 열악한 환경으로 잠자는

것, 먹는 것, 씻는 것,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리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 뿐만아니라 더 혹독한 상황에

대비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로 떠나야 하는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자연'


우리가 열악한 환경에서 허우적 거리며

고통스러울수록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은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생전 처음’ 이란 말을 남발하게 되는 곳이

아프리카였다.



나는 5년 전 세계여행을 꿈 꿨고, 5년 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 꿈이 그저 꿈으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끊임없이 꿈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1년 전 빅토리아 폭포를 직접 보겠다던

나와의 약속을 2017년에 드디어 지켜낼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과연 꿈꾸는대로

살 수 있을까?' 를 고민한다.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것 같은 아프리카 여행이

겠지만  나에겐 소심하게나마 그렇게 살아낼 수

있다고 증명해 보인 것 같았다.


요즘 시대는 대부분 반복적인 패턴 속에 있는

것들을 안정적이라고 규정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큰 일 이라도 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안전' 하기때문에

그런 삶을 갈망하고는 한다.


'안전'이라는 반복적인 패턴에서 벗어났지만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꿈을 이루며 가슴 뛰는

삶을 살아 가고 있음을 나 하나쯤이지만 행동으로

실천한 것 같아 뿌듯했다.  



남아공 입국부터, 호스텔에서, 길위에서, 관광지

에서, 트럭킹중 만난 현지인들 그리고 트럭 일행들

결코 우연이 아닌 소중한 인연에 기쁘고 특히 한국

친구들 ‘환손, 규태, 유진, 지영’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세계여행중 (17.3.31~)

*네이버뉴스 여행기 연재 (9.22일 종료)

  *유럽 세계여행기 바로가기  

*아프리카 5600km 횡단 완료

*18번째 국가 태국 치앙마이에서

  2달살기중 (~11.16)

* 인스타그램 세계여행 계정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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