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ob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교동방울이 Oct 19. 2021

목적을 외면하는 순간 사기꾼이 된다

모든 일은 기대에 대한 보답이어야


"상대방은 뭘 원하는지 목적을 항상 생각한다"
"상식적인 노력과 개인적인 흥분을 구별한다"
"이 때는 이렇게, 저 때는 저렇게... 앞뒤가 안 맞으면 망한다"


사회생활에서 만난 에이스들의 단골멘트다.


내 필드는 미디어다. 잘한다 하는 선배나 후배는 모두 이 말을 했다.

왜 같은 말이 나올까.


결국 사람마음을 사로잡아 먹고 사는 일이 직업이라서다.


내가 거쳤던 매거진과 일간을 하나씩 보자.


매거진은 호흡이 길다. 시의성보단 뒷이야기나 분석이 매력이다. 자연스레 글이 길어진다. 도화지가 넓으니 문장맛을 더할 여지도 크다. 독자들이 찾는 까닭도 '우러나온 감칠 맛'을 원해서다. 대충 "우리는 호흡이 기니까 줄줄줄 써서 양으로 윽박지르자"라고 하면 군내만 나는 똥글이 된다는 게 에이스의 말이다.


매거진이 빠지는 또 다른 함정은 신문이나 방송이 알려주지 않는 어려운 이론이나 역학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이다. 결국 잡학다식을 뽐내는 데 그친다. 에이스는 공짜도 아니고 돈 내고 보는 글에서까지 피로감을 주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건 독자에게 실례라고 했다.


그래서 반문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진 않다고. 깊고 깊은 걸 원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가르침을 원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고.


에이스는 설명했다.


모든 이가 아니라 우리를 찾는 '다수'를 만족시키는 게 글값을 받는 이의 목적이어야 한다고.

쓸모 있는 매력적인 글을 써야 하고, 어렵다면 최소 우리 기사에서 건질 정보 하나는 확실히 선물해야 한다고.


정리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알고 보니 이렇더라' '사실은 그랬다'를 자세히 원하는 사람들을 잡자는 거다. 더 어렵고 심오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그걸 잡자고 중심이 흔들리면 '깊은 정보'와 '글빨에서 나오는 재미'라는 독자의 기대에 어긋난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는 모든 요소를 유려하게 심는 테크닉이 있었고 그래서 에이스였다.


이른바 '땅샷'은 메시지를 주는 이미지 컷으로 쓸 때 좋다고 한다. 이처럼 긴 글을 끊을 때도 쓸모 있다.

일간은 또 어떤가. 시의성이 생명이다. 속보-상보-종합-종2, 심하게는 종3까지 시시각각 상황이 바뀐다. 딱 봐도 지금 뭔 판이 깔렸나를 보여줘야 한다. 이건 어쨌네 저건 어쨌네 하다간 흐름을 놓친다.


그래서 데일리 조직은 일사불란하다. 리더는 A 사안을 조져야 할지 빨아야 할지(저속하지만 생각보다 무척 소통이 빠른 은어다) 목적을 설정한다. 발제가 좋으면 바로 믿고 맡긴다. 부실하면 스트레이트(정보전달)과 박스(해석) 등 어떤 기사를 어떤 사람이 쓸지 리더 판단으로 내려 꽂는다. 둘 다 스트를 쓰고 싶다면 리더까지 올라간 그 짬바로 후배들의 능력치를 5분 만에 분석해 다시 조각한다.


맡은 이들은 서로 내용과 형태가 겹치지 않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혹여 공조가 필요하면 타 부에 손을 내민다. 이를 밀어내는 사람도 있긴 한데 보통 그런 인성은 실력도 별로인 경우가 많다. 과감히 버리고 도움 없이 쓸 방법을 재빨리 판단한다.


아침 8시 보고 시간, '오늘 몇 개를 이런 방식으로 이 정도 레벨로 보여주자'로 목적만 잘 쌓으면 하루가 편했다. '어떻게 하지...', 보고가 어그러지면 어김없이 그날은 폭망했다. 친한 동료였던 이에게 네이버 프리미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나랑 90% 이상 코드가 맞는 그가 말했다. "이거 생각할 시간에 취재를 더해야지. 기사부터 잘해야 구독이 있는거여." 역시 내 스타일이다.


6각형 인재라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이거 저거 할 줄 아는 사람이다.


헌데 자신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목적이 흐려지는 경우가 꽤 많다. 아주 모르는 게 아니니 욕심이 난다. 나만 해도 미디어 글쓰기 외에도 페북 캠페인이나 사진 보정, 워드 서식 같이 행정이나 마케팅에 어울리는 일의 경험이 있다. 큰 그림을 보는 데는 확실히 좋다. 가진 기술에 고명을 더 올릴 수 있다.


그래도 자기 객관화를 하려 노력했었다. 실제로 아는 걸 다 들이부으면 물 많이 넣은 사리곰탕면이 됐다. 보도 내용이 진국이어야 하는데 마케팅을 생각하니 제목빨 트래픽의 노예가 됐다. 사진 보정을 욕심내면 기사 분위기가 상했다. 썩은 표정을 한 피의자의 검버섯을 굳이 지우지 않는 이유다. 유려한 워드 줄 맞추기도 쓸데없다. 중요한 건 10월13일 4시 50분을 10월13월 4시 50뷴으로 안 쓰는 집중력이다.


김치찌개를 먹고 싶은 순간은 칼칼함이 땡길 때다. 모짜렐라 김치찌개 같은 음식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김치찌개는 매운 음식이다. 느끼한 걸 먹으려 찌개집을 진 않으니까.


아무리 엉망인 식당이라도 갈치를 시키면 꽁치를 안 내온다는 믿음이 있다.


"(갈치가 떨어져서 대신 꽁치를 내왔는데) 맛은 별 차이 안 나요. 뭐 옥돔 맛도 조금 나고"


갈치를 시키니 꽁치를 내왔다 치자. 옥돔 맛이 난다고 해 고마울까. 손님은 가시를 발라대며 담백한 갈치 살을 쫍쫍 먹는 게 목적인데. 옥돔 맛도 내려고 낸 게 아니라 옥돔이랑 같이 보관해서 아니었을까.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잘못 틀어제끼면 이렇가 앞뒤가 어긋난다.


길고 뽀얀 갈치를 먹고 싶다(수요자의 목적)

Vs.

비록 꽁치라도 맛은 비슷하니 이걸 갈치로 생각해줘(제공자의 목적)


답은 쉽다.

목적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순간 상대를 기만하는 사기꾼이 된다. 사기꾼이 되기 싫으면 자기가 뭘 하는 사람인지, 내 어깨에 걸린 기대감을 파악하는 자기 객관화가 필수다. 월급이든 수익이든 누군가에게 대가를 받는다면, 최소한 상대방이 원하는 것만이라도 깔끔하게 주는 게 도리다.



+++

에이스들은 모두 솔직했다. 솔직하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먹었고, 패배를 인정했다. 존경하는 선배는 "오늘 우리는 OO신문한테 진 거야"라고 말했다. 알곤 있었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는 숨 쉬듯 쉽게 인정했고 다음날 엄청난 기사로 반까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사내 기자상을 탔다. 니 지원사격 덕분이라며 소고기도 사줬다.


실패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후퇴가 자랑스러우려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옆걸음 말고 앞걸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