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의 짧은 대화 한 줄이 수업 계획을 바꿔 놓

by 모마

수업 계획이라는 건 보통 전날 밤에 거의 완성됩니다. 어떤 활동을 할지,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떤 글을 함께 읽을지까지 세세하게 정해두죠. 그런데 가끔은 교실 문을 연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그 계획이 완전히 바뀌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이유는 늘 비슷합니다. 아이 한 명의 아주 짧은 말 한 줄.


어느 날 아침, 평소보다 표정이 어두운 아이가 제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글쓰기가 잘 안 될 것 같아요.” 그 말투엔 투정도, 포기도 없고, 그냥 자기 마음의 현황을 솔직하게 적어 낸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려서 저는 준비해온 활동을 그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글을 못 써서가 아니라, ‘지금 이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먼저 돌아봐야겠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계획했던 글쓰기 활동을 접고, 아이들에게 “오늘은 글 잘 쓰는 날 아니어도 돼. 그냥 지금 마음을 그대로 적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얼굴이 밝아졌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또 누군가는 연필을 잡는 손이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놀랍게도, 그날 나온 글들은 어떤 날보다 솔직하고 깊었습니다. “나는 오늘 이유 없이 불안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기분이 무거웠다”, “말하기는 싫고 쓰기는 조금 괜찮다” 같은 문장들이 조용히 교실을 채웠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건넨 그 한 줄의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오늘의 수업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신호였다는 것을. 수업 계획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 자신의 시간표라는 사실. 그 아이의 말이 없었다면, 저는 그냥 준비해 온 수업을 ‘의무적으로’ 진행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 덕분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수업을 할 수 있었고, 그날의 문장들은 오히려 제게 더 큰 배움을 남겼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수업 시간마다 아이들의 말 한 줄을 더 유심히 듣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계획을 흔드는 이유가 되고, 때로는 수업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순간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언제나 옳았습니다. 학생의 말 한 줄이 수업보다 더 수업 같은 순간이 있다는 걸, 저는 그날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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