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저는 ‘잘 쓴 글’이란 무엇인지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장의 매끄러움, 논리의 정확함, 표현의 적절함 같은 것들요. 하지만 아이들과 글을 쓰고 고치고 읽어주는 시간을 오래 보내다 보니,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완벽함을 향한 욕심이 글쓰기를 어렵고 멀게 만드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글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주어가 빠지기도 하고, 감정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고, 논리가 자연스럽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투박함 속에서 저는 종종 어른의 글보다 더 강하고 선명한 어떤 진심을 발견합니다. “오늘 친구가 나를 안 봐서 속상했다”, “내가 왜 이런 기분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울고 싶었다” 같은 문장들. 맞춤법은 틀렸지만 마음은 정확한 문장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깨닫습니다. 글에서 중요한 건 정교함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다루는 용기라는 것을.
또 하나 중요한 건, 아이가 글을 쓰는 과정 자체입니다. 글을 고쳐 쓰면서 “이 부분을 이렇게 바꾸면 어때요?”라고 묻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을 찾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자신이 쓴 문장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걸 봅니다. 그 성장은 문장이 아무리 완벽해도 억지로 만들어낸 결과물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완벽함보다 중요한 건 자기 방식으로, 자기 속도로 글과 가까워지는 경험입니다.
이제 저는 글쓰기 지도를 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잘 쓰는 건 나중 이야기야. 우선은 네 마음을 네 언어로 써 보는 게 제일 중요해.” 아이들이 이 말을 들으면 안도의 숨을 쉽니다. 틀려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는 순간, 글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글, 어설퍼도 마음이 있는 글. 그걸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이 글쓰기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완벽한 글을 요구하는 대신, 아이들이 글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결국 글은 점수로 평가되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과 연결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니까요. 완벽함은 언젠가 오겠지만,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이 될 수 있다는 걸 아이들과 함께 배워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