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를 결심했던 순간에는 오직 ‘나 자신’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더는 버티기 어려웠고, 더이상 그곳에서의 시간이 나를 자라고 있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어 강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 서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퇴사가…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될 수도 있을까?”
사실 처음엔 그런 생각 자체가 어색했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한 것도 아니고, 거창한 성공을 이룬 것도 아닌데, 내 결정이 타인에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찌 보면 욕심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저는 조금씩 다른 관점을 갖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에게서만 용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선 사람’, ‘돌아선 사람’, ‘새 길을 고른 사람’**에게서도 용기를 얻는다는 것을요.
특히 비슷한 위치에 있던 동료들, 삶의 속도에 지친 친구들, 그리고 국어 수업을 들으러 오는 어른 학습자들까지 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물어보곤 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만둘 마음을 먹었어요?”, “후회는 안 돼요?”, “그 선택이 정말 가능할까 싶어요.” 이런 질문들 속에는 부러움도 있지만, 사실 더 큰 건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느낍니다. ‘나도 다른 삶을 생각해도 되는 걸까?’ ‘과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이미 마음속에서 수십 번 해 본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얻고 싶어 하는 겁니다.
저는 내가 ‘잘해서’ 용기를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흔들렸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버티다가 지친 사람, 너무 늦었다고 느끼는 사람, 변화가 두려운 사람에게는 완벽한 롤모델보다, 실수도 하고 무서워도 결국 한 걸음 내딛은 사람이 더 가까이 닿습니다.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아주 작은 가능성이 생기는 것—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는 용기의 모양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퇴사는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도 된다”, “멈춰도 괜찮다”, “돌아가도 늦지 않다”고 말해주는 작은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용기는 완벽한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으로 움직인 사람에게서 오는 거니까요.
내 결정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지 않더라도, 아주 작게라도 ‘가능성의 불씨’를 건넬 수 있다면 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제는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다.